왜 월가에서 한국의 코로나19 확진자 통계와 경제에 주목하나 [국제경제읽기 한상춘]

입력 2020-02-24 13:33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신종 코로나)이 세계보건기구(WHO)에 정식 통보된 지 한 달이 지나면서 각국 대응에 대한 평가가 나오고 있다. 충격적인 것은 한국이 방역 후진국인 북한(초기 대응)과 발병 진원지인 중국(경제 대책)보다 못하다는 평가가 나오고 있는 점이다. 쉽게 이해되지 않지만 한국 정부에 몇 가지 시사점을 던져준다.

텍스트 마이닝 기법으로 신종 코로나 발생 이후 각국의 대응 과정을 평가해 보면 한국은 두 가지 뚜렷한 특징이 눈에 띤다. 하나는 신종 코로나에 대한 정책당국의 대응 어조가 기복(초기 ‘미온적’, 나중에 ‘초강경’)이 심하고, 다른 하나는 각종 매체가 가장 어둡게 보도한다는 점이다.

신종 코로나와 같은 디스토피아 문제는 초기 대응이 생명이다. 사전에 예상해 대응 체제를 마련하지 못한 디스토피아는 발병 초기에 전염과 확산을 막는 것이 국민 보건과 경제에 미치는 충격을 최소화할 수 있기 때문이다. 가장 경계해야 할 것은 국민 보건 문제를 정치적으로 악용하지 말아야 한다는 점이다.

초기 대응 면에서 북한의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이례적으로 좋은 평가를 받는 것도 이 때문이다. 신종 코로나 발생 직후 김 위원장은 중국과의 국경무역 차단, 비자 발급 제한 등을 통해 상품과 사람의 이동을 통제시켰다. ‘부도설’과 ‘쿠데타설’이 나돌 정도로 외화난과 인민의 고통이 심한 북한 경제로 봐서는 쉽지 않은 선택이다.

중국과 관계, 4월 총선 등을 의식해 초기 대응에 미흡했다는 평가가 나오고 있는 한국과 비교해 보면 단기적으로는 북한의 피해가 클 수 있다. 하지만 초기 대응 실패로 신종 코로나가 확산되는 과정에서 경제 활동이 마비되고 피해액이 눈덩이처럼 불어나는 한국과는 비교할 수 없는 적은 규모다.

디스토피아가 경제에 미치는 경로를 보면 유동성 위기, 시스템 위기, 그리고 실물경제 위기 순으로 전염된다. 첫 단계인 유동성 위기를 풀기 위해서는 헬리콥터 벤 식으로 돈을 풀어야 한다. 춘절 이후 중국 인민은행 대처가 좋은 평가를 받는 것도 이 대목이다. ‘중국판 양적완화’라 부른 만큼 한꺼번에 1조 7천억 위안(원화로 228조원)을 풀었다.

다음 단계인 실물 경제에 미치는 영향을 차단하기 위해 금융과의 연결고리인 대출 금리, 지급준비율 등도 함께 내리는 조치를 발표했다. 중국처럼 통제권이 강한 경제에서는 통화정책 전달경로(transmission mechanism·통화량 변경→금리 변화→총수요 증감→실물경기 조절) 상 금리 변화에 따른 총수요 반응이 ‘탄력적(elastic)’이기 때문이다.

현재 중국 경제는 중대한 기로에 놓여 있다. 작년 4분기 성장률이 6%까지 떨어져 ‘바오류(성장률 6% 유지)’ 붕괴 직전까지 몰렸다. 같은 해 11월 소비자물가상승률은 4.5%로 정부의 물가 목표치 3%를 1.5% 포인트나 뛰어넘는 수준이다. 스테그플레이션 국면이다. 어떤 수단을 동원해서라도 신종 코로나 피해액을 줄여야 할 상황이다.



그 어느 국가보다 중국 경제에 대한 의존도가 높아 신종 코로나 피해가 가장 우려되는 한국은 아직까지 양적완화, 추경 편성 등과 같은 ‘유수 정책(pumping up policy)’은 발표하지 않고 있다. 신종 코로나 방역비나 피해 기업에 대한 지원 등과 같은 미세 조정(fine tuning) 정책만 발표하는 정도다.

신종 코로나와 같은 외부 충격을 완충시킬 수 있을 만큼 우리 경제가 견실하다면 현 정부의 대응 방식이 맞다. 하지만 우리 경제는 모든 분야에 걸쳐 여유가 없는 상황이다. 작년 성장률이 간신히 2%를 턱걸이했다. 신종 코로나 피해로 올해 1분기 성장률이 1%대로 추락할 것으로 보는 시각이 지배적이다.

주목해야 할 것은 월가에서 한국의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확진자와 사망자 통계에 관심을 보이기 시작했다는 점이다. 순수 한국 문제에 관심을 보인 것은 1997년 외환위기 이후 처음 있는 일이다. 관심도를 본다면 당시보다 더 높다. 한국 경제 앞날에 대한 관심도 높아지고 있다.

두 가지 이유에서다. 하나는 중국의 늑장 발표와 잦은 확진자 판정기준 변경으로 코로나 통계에 대한 국제적인 신뢰가 땅에 떨어졌다. 그 대신 각종 질병관련 통계 선진국 대우를 받고 있는 한국의 확진자와 사망자가 늘어남에 따라 코로나19의 현 주소와 향후 추이를 가늠해 볼 수 있기 때문이다.

다른 하나는 코로나19와 같은 국민 보건 문제를 대외 관계, 정치적 이유 등으로 초기 대응을 실패하고 그 이후 상황을 엄격하게 통제하지 못할 경우 어떤 결과를 가져오는가를 한국이 단적으로 보여줬기 때문이다. 같은 이유로 중국의 시진핑 국가주석과 일본의 아베 신조 총리는 각국 축출설과 조기 하야설에 몰리고 있다. 문재인 대통령도 편치는 않다.

한국의 코로나 확진자와 사망자가 늘어남에 따라 위험자산과 안전자산을 놓고 오락가락했던 투자자 성향도 후자 쪽으로 기울어지고 있다. 안전자산 상징 격인 국제 금값은 온스당 1,620달러를 돌파했다. 2013년 2월 이후 최고수준이다. 미국 국채 수익률(30년물 기준) 가격도 사상 최고 수준에 근접하고 있다.

달러 가치도 상승 추세다. 주요 6개 통화에 대한 달러 가치를 알 수 있는 잣대인 달러인덱스는 100에 근접하고 있다. 원·달러 환율도 미·중 간 통상마찰과 한국에 대한 일본의 수출 통제가 최고조에 달했던 작년 10월 초 이후 다시 1,200원선이 뚫렸다. 코로나 사태가 조기에 진정되지 않을 경우 1,250원선까지 오를 것이라는 예상도 나오고 있다.

반면 올 들어 ‘의외다’할 정도로 빠르게 상승했던 세계 주가도 지난주를 고비로 꺾이기 시작했다. 미국 증시는 역사적인 ‘다우존스지수 3만-나스닥지수 1만 시대’ 진입이 늦춰졌다. 미국 이외 다른 국가 증시의 경우 중국에 대한 경제 의존도가 높을수록 주가 하락폭이 커지고 있다. 지금부터 주가 움직임이 더 주목된다.

눈여겨봐야 할 것은 발병 진원지인 중국보다 한국의 주가가 더 떨어지고 있는 점이다. 가장 큰 이유는 중국은 유동성 공급, 감세, 금리 인하 등 초강력 대책을 연일 발표하고 있지만 한국은 문 대통령이 언급한 이후 관련 부처 수장이 말끝마다 ‘모든’을 외치고 있지만 정작 비상사태에 준하는 조치는 아직까지 나오고 있지 않기 때문이다.

코로나 사태가 장기화될 경우 더 우려되는 것은 ‘세계가치사슬(global value chain)에 어떤 영향을 미칠 것인가’ 하는 점이다. 세계가치사슬이란 ‘기업 간 무역’과 ‘기업 내 무역’으로 대변되는 국제 분업 체계를 말한다. 금융위기 이후 세계교역증가율과 세계가치사슬 간 상관 계수는 ‘0.85’에 달할 만큼 높게 나온다.

도널드 트럼프 정부 출범 이후 보호주의가 기승을 부리면서 세계 교역 탄성치(세계 교역 증가율÷세계 경제 성장률)은 갈수록 떨어지는 추세다. 3년 전 ‘2배’에 육박했던 세계 교역 탄성치가 작년 하반기 들어서는 ‘1배’ 내외로 떨어졌다. 세계 교역 탄성치가 ‘1배’ 밑으로 떨어지면 세계 경기는 침체 국면에 들어간다. 미·중 간 무역마찰에 이어 코로나 사태가 장기화될 경우 세계가치사슬은 더 빨리 무너질 가능성이 높다.

세계가치사슬이 무너지면 대외교역 의존도가 높은 국가일수록 성장률이 더 떨어진다. 중국과 한국 경제는 올해 1분기 성장률이 마이너스 수준으로 추락할 수 있다는 극단적인 비관론까지 들고 있다. 올해 연간 성장률도 두 국가에서 상징성이 높은 각각 6%, 2% 달성은 물 건너갔다는 시각이 지배적이다.



비상사태다. 유동성 공급, 금리 인하, 추가경정예산 편성 등과 같은 비상대책을 더 이상 늦추면 안 된다. 정책은 ‘타이밍’이 생명이다. ‘이것저것 생각하다’ 초기 대응에 실패해 이 지경까지 왔는데 또 대책을 놓고 언제까지 말만 할 것인가? 일단 비상대책을 추진해 놓고 코로나 사태가 진정되면 출구전략을 모색하는 것이 상황에 맞는 정책방향이다.

방역관련 모든 사람이 애를 쓴다. 고마움을 표한다. 이제부터는 우리 국민의 저력을 보여줘야 할 때다. 보건과 경제에 미치는 충격을 최소화하기 위해 국민 스스로가 신종 코로나 확산을 막아야 한다. 방역 관련 기본 수칙을 철저하게 준수하는 동시에 이럴 때 일수록 남을 배려하는 ‘프로보노 퍼블리코(pro bono publico·공공선을 위하여)’ 정신을 발휘해야 할 때다.

한상춘 / 한국경제신문 논설위원 겸 한국경제TV 해설위원(scha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