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확산 사태로 중국에서 최고 지도부를 향한 국민의 불만이 전례 없이 강하게 분출하는 가운데 시진핑 국가주석이 일찌감치 코로나19 대처에 관한 지시를 했다고 '고백'했다.
최고 지도자인 시 주석이 신종 코로나 확산 사태 초기에 제 역할을 하지 않았다는 안팎의 비판이 거세게 나오자 뒤늦게나마 사태 초기부터 적극적으로 대처를 진두지휘했다고 적극적인 '해명'에 나선 모양새다.
15일 발행된 중국공산당 이론지 치우스는 지난 2월 3일 진행된 당 정치국 상무위원회 회의에서 시 주석이 한 연설 전문을 실었다.
이 연설에서 가장 눈에 띄는 대목은 지난 1월 7일 당 정치국 상무위원회가 이미 코로나19 대처를 위한 회의를 개최했다는 사실이 언급된 것이다.
시 주석을 비롯한 중국공산당 핵심 지도부가 코로나19 대처 방안을 논의하려고 당시 회의를 연 것은 지금껏 공개되지 않은 새로운 내용이다.
여기서 시 주석은 "우한의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폐렴 병세 발생 이후, 1월 7일 나는 당 정치국 상무위원회 회의를 주재해 신종코로나바이러스 폐렴 방어·통제 업무에 관한 지시를 했다"고 말했다.
시 주석이 언급한 1월 7일까지만 해도 중국에서는 코로나19에 관한 자세한 정보가 공개되지 않았다. 당시까지만 해도 이 병은 막연히 '원인 불명 폐렴', '우한 폐렴' 등으로 불렸다.
의사 리원량의 폭로를 계기로 '사스'(SARS·중증급성호흡기증후군)와 유사한 원인 모를 폐렴이 확산하고 있다는 사실이 알려졌지만 당시 중국 당국은 사람 간 감염 사실이 확인되지 않았다면서 적극적인 질병 통제보다는 사회 동요 방지에 더욱 주력하는 모습을 보였다.
중국에서 당 최고 지도부인 상무위원들 간의 회의 내용은 간략히 결과만 관영 언론들을 통해 보도될 뿐, 자세한 내부 발언은 외부에 공개되지 않는 것이 보통이다.
따라서 시 주석의 2월 3일 정치국 상무위원회 발언 전문이 관영 매체들을 통해 대대적으로 공개된 데에는 다분히 정치적 의도가 담겨 있다고 전문가들은 지적한다.
정치 분석가인 우창은 홍콩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SCMP)에 "이건 매우 이례적"이라며 "마치 질병 확산 예방을 위해 그가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했다고 방어하고 설득하는 것처럼 들린다"고 지적했다.
그는 이번 연설문 공개가 시 주석이 무거운 국내적, 외교적 압력을 받는 가운데 이뤄졌다는 점에 주목했다.
중국에서는 그간 코로나19 확산 초기 시 주석이 '부재'를 비판하는 목소리도 적지 않았다.
시 주석은 지난달 20일에야 코로나19와 관련해 '고도 중시, 전력 저지' 원칙을 들고나오면서 전면에 나타났다.
그때까지만 해도 사태 축소에 급급하던 중국 정부는 바로 다음 날 인구 1천100만의 도시 우한(武漢)을 전면 봉쇄하는 등 긴급 조치에 들어갔지만 이미 코로나19는 우한을 넘어 중국 전역과 세계로 퍼져나가고 있던 때였다.
덩샤오핑(1904∼1997)의 유산인 집단지도체제를 사실상 허물고 그간 총리가 맡던 중앙재경영도소조 등 온갖 당내 핵심 의사 결정 기구의 장을 꿰차던 시 주석은 이후 신종코로나 대응 영도소조 조장 자리는 리커창 총리에게 '양보'했다.
코로나19 사태 초기 중국인들의 불만과 분노는 무능한 우한시의 관리들에게 집중적으로 쏟아졌다.
하지만 코로나19로 인한 환자 및 사망자 폭증과 '내부 고발자'로 평가받은 의사 리원량의 사망까지 더해지면서 중국인들의 분노는 곧장 당과 최고 지도부를 향하고 있다.
중국 안팎에서는 당국의 축소·은폐, 무능, 관료주의가 결합해 나타난 코로나19 사태가 '중국판 체르노빌'이라는 지적도 나온다.
(사진=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