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P "기생충이 그린 불평등, 한국보다 미국이 훨씬 심각"

입력 2020-02-15 17:57
수정 2020-02-15 18:11


올해 아카데미 시상식을 휩쓴 봉준호 감독의 영화 '기생충'을 관통하는 주제는 한국의 빈부격차다.

그럼에도 미국에서 이 영화가 큰 반향을 불러일으키는 것은 이런 불평등이 한국보다 미국에서 훨씬 더 심각하기 때문이라고 미국의 유력 매체가 진단했다.

워싱턴포스트(WP)는 14일(현지시간) '기생충은 한국의 불평등을 악몽처럼 그린다. 미국에서의 현실은 훨씬 더 나쁘다'라는 제목의 기사에서 이같이 보도했다.

WP는 "이 영화와 거기에 담긴 메시지는 미국 관객에게 강하게 울려퍼졌고, 지난주 (아카데미)작품상 수상은 이 영화의 미국 내 영향력이 커질 것이라는 사실을 의미한다"며 "여기 미국에서의 불평등은 봉 감독의 한국보다 훨씬, 훨씬 더 심각하다"고 분석했다.

신문은 한미 불평등을 비교하기 위해 세계불평등데이터베이스(WID)의 통계를 인용했다. WID에 따르면 한국에서 최상위 1%가 나라 전체 부(富)의 25%를 차지하지만, 하위 50%가 소유한 재산은 2%에도 미치지 못한다.

즉, 한국 인구가 100명이라고 가정하면 파이 100조각 중 가장 부유한 1명이 25조각을 차지하고, 하위 50명이 겨우 2조각을 나눠 갖는다는 의미다.

같은 식으로 비유하면 미국의 경우 최고 부자 1명이 가져가는 파이가 39조각으로 한국보다 더 많다. 특히 하위 50명의 미국인은 단 한 조각의 파이도 가져가지 못한다. 오히려 이들은 파이를 빚진 상태다. 미국인 하위 50%의 채무 총합은 파이 한 조각의 10분의 1에 해당한다.

한국의 불평등도 심각하지만 그래도 하위 50%가 뭔가 가치있는 것을 일부라도 보유한 반면, 미국에서는 같은 계층이 말 그대로 땡전 한 푼 없이 순자산 '마이너스'를 기록 중이라고 WP는 지적했다.

물론 한국과 미국 사이에 공통점도 적지 않다고 신문은 지적했다. 두 나라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으로, 낮은 실업률을 기록 중이며, 2∼3%대의 국내총생산(GDP) 성장률을 매년 보이고 있다. 다른 '부자 나라'들에 비해 사회안전망이 인색하다는 것도 한미 양국이 마찬가지다.

아울러 한국은 미국보다 많은 법인세를 걷고, 상속세와 증여세로 거둬들이는 세입의 GDP 비중이 미국의 4배라고 WP는 지적했다. 이런 세입은 올바르게 쓰인다면 불평등을 바로잡는 데 큰 영향력을 발휘할 수 있다. 미국도 비슷한 수준의 세금을 거둔다면 부의 재분배 수준이 한국과 비슷해질 수 있다는 것이다.

신문은 또 한국의 높은 청년 실업률과 이로 인한 청년층의 좌절감을 소개한 뒤 "견고한 계층사회에 대한 좌절감이 봉 감독 영화의 핵심에 있다"며 "이 영화가 미국에서 환영받는 것은 많은 미국인이 자신도 관련이 있다고 생각한다는 점을 시사한다"고 평했다.

디지털전략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