또 다른 10년 진입을 앞두고 각종 예측서가 쏟아져 나오고 있다. ‘희망 반, 기대 반’으로 맞이한 종전의 10년과 달리 2020년대 세계 경제가 순탄치 않아 낙관적으로 보는 예측기관이 없는 점도 색다르다. 2008년 이후 발생했던 금융위기 극복이 완전치 않은 데다 그 어느 10년보다 테일 리스크(tail risk)가 많이 발생할 것으로 예상되기 때문이다.
통계학에서 자연·사회·정치·경제 현상은 평균치를 중심으로 대칭을 이루고, 평균치에서 멀어질수록 발생 확률이 낮아지는 종 모양의 정규 분포로 설명한다. 하지만 발생 확률이 적은 현상이 나타나면서 빈도가 정규 분포가 예측하는 것보다 훨씬 커져 꼬리가 두터워질 경우 테일 리스크가 발생한다.
금융위기 이후에는 정규 분포 꼬리가 너무 두터워져 평균에 집중되는 확률이 낮아 예측력이 떨어지는 팻 테일 리스크(FTR·fat tail risk)가 자주 목격돼 왔다. 꼬리 부분이 두텁지 않아야 평균값의 의미가 강해지고 통계학적 예측력이 높아지는데 꼬리가 두터워지면 평균값의 의미가 떨어져 예측이 어려워진다.
2020년대 들어 세계 경제는 디플레이션을 넘어 장기 불황에 빠질 가능성이 크다. ‘R(경기 침체)’ 공포를 넘어 ‘D(디플레)’ 공포가 빠르게 악화된다는 의미다. 세계 경제는 성장률과 물가 상승률, 그리고 금리가 동시에 마이너스 국면에 빠지는 ‘3M(triple minus) 공포’가 확산되고 있다. 트리플 M은 1930년대 대공황 이후 처음 나타나는 현상이다.
한국의 경우 ‘4V(quadruple vacant) 공포’가 확산되는 것도 주목된다. 4V 공포는 지표 경기보다 일생 생활에서 느끼는 체감경기와 관련된 용어로 빈 손, 빈 집, 빈 상가, 빈 산업단지를 말한다. 빈 집의 경우 전국적으로 200만 채에 육박해 더 이상 대책이 없을 경우 한국도 ’시카고 공포‘가 우려된다. 시카고 공포란 도시발전의 원동력이자 상징이었던 제조업이 쇠락하면서 빈 집이 늘어나고 각종 범죄가 급증하면서 시카고가 유령도시로 변한 현상을 말한다.
3차 대전에 대한 우려는 전형적인 롱테일 리스크(long tail risk)해당한다. 미·중 간 경제 패권 전쟁이 벌어지고 있는 가운데 각국의 보호주의와 이기주의, 각국의 경쟁적인 자국통화 평가절하, 극우주의 세력 득세 등으로 지금의 상황이 2차 대전 직전과 흡사하다고 영국의 사디크 칸 런던 시장은 경고했다.
46대 대선 정국으로 점철될 2020년대 첫 해 미국 경제의 팻 테일 리스크는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탄핵’과 ‘제2의 옥토버 서프라이즈’가 발생할지 여부다. 2017년 취임 이후 20일에 1차 탄핵설, 100일 만에 2차 탄핵설, 1년 전 3차 탄핵설을 어렵게 넘긴 트럼프 대통령은 이번 4차 탄핵설 만큼은 대선과 맞물려 장기화되면서 상당한 고난이 예상된다. 2020년 11월 대통령 선거에 치명적인 영향을 줄 가능성이 높다.
옥토버 서프라이즈(october surprise)란 미국 대통령 선거 직전 달인 10월에 발생한 뜻하지 않은 사태로 그때까지 여론조사 등에서 불리한 후보가 당선되는 경우를 말한다. 미·중 간 마찰, 북·미 협상, 이민법, 헬스케어 법, 단일금융법(일명 도드-프랭크 법) 등 그 어느 하나 표심을 얻을 만큼 성과를 내지 못한 트럼프 대통령이 과연 어디서 또 한 차례 옥터버 서프라이즈를 만들어 낼지 벌써부터 관심사다.
일본 경제는 1990년 이후 ‘잃어버린 20년’ 과정에서 △정책 함정 △유동성 함정 △구조조정 함정 △불확실성 함정 △좀비 함정 등 5대 함정에 빠져 고통을 겪었다. 2019년 9월을 기해 아베 신조가 전후 최장의 총리로 등극하는데 성공했지만 일본 국민 사이에서는 ‘지브리의 저주’에 빠질지 모른다는 새로운 우려가 확산되고 있다.
지브리의 저주란 일본의 지브리 스튜디오가 제작한 애니메이션을 방영하면 증시 등 금융시장이 난기류를 보이는 현상이다. 지브리 저주는 금융변수 중 엔·달러 환율 움직임과 상관관계가 높다. 아베 총리의 장기 집권 기반이 마련됐으면 아베노믹스가 탄력을 받을 것이라는 기대로 엔화가 약세가 돼야 한다. 하지만 일본 금융시장은 다른 양상을 보이고 있다. 트럼프 정부가 엔화 약세를 허용할 수 없다는 입장을 밝힘에 따라 아베노믹스를 더 이상 밀고 나갈 수 없기 때문이다. ‘엔고의 저주’가 걸려있는 일본 경제 특성 상 엔저를 인위적으로 유지하지 못한다면 엔화 강세가 재현돼 경기가 침체된다.
2020년대 유럽 경제 팻 테일 리스크는 ‘선행의 역설(kind act's paradox)’이다. 선행의 역설이란 좋은 의미로 행동한 것이 도리어 안 좋은 결과를 가져오는 것을 말한다. 이를테면 기부를 할 때 기부의 순수성을 생각하지 않고 출세 등 다른 측면을 생각하는 것을 전형적인 선행의 역설로 볼 수 있다.
2010년 이후 발생했던 유럽 재정위기 극복의 핵심 역할을 담당했던 독일 경제가 그 후유증으로 2019년 2분기부터 마이너스 국면으로 추락했다. 독일 경제가 침체에 빠진다면 유로 랜드 중 비우량 회원국에 속하는 PIIGS(포르투칼, 아일랜드, 이탈리아, 그리스, 스페인) 경제뿐만 아니라 유럽 통합에도 악역향을 미칠 것으로 예상된다.
중국 경제가 당면한 최대 팻 테일 리스크는 ‘제3차 천안문 사태’ 가능성이다. 시진핑 주석이 미국과 협상, 홍콩 시위대 사태 등에 대응이 적절치 못했다는 비판이 일고 있다. 구조병인 3대 회색 코뿔소(그림자 금융, 과다 부채, 부동산 거품) 현안도 제 때 해결하지 못함에 따라 ‘바오류(성장률 6%)’ 붕괴가 일보직전이다. 돼지 콜레라 열병 등으로 생활 물가가 급등하면서 인민이 느끼는 경제고통은 치솟고 있다.
제3의 천안문 사태가 일어난다면 자연스럽게 ‘시진핑 주석의 축출 문제’가 거론될 가능성이 높다. 1976년 1차 천안문 사태 이후 덩샤오핑 실각, 1989년 2차 천안문 사태 이후 자오쯔양에서 장쩌민으로 권력 이양이 발생했기 때문이다. 시진핑 주석의 부정부패 척결 과정에서 밀려난 권력층을 중심으로 시진핑 퇴출 작업이 시작됐다는 소문이 돌고 있다.
2020년대 들어 한국 경제는 10년 전 리먼 브러더스 사태와 1990년대 후반 외환위기와 같은 대형 위기가 발생한 것인가 여부가 최대 관심사될 것으로 예상된다. 2018년 어렵게 도달했던 1인당 소득 3만 달러 시대가 2020년대 진입을 앞두고 무너질 것으로 예상되는 때에 대형 위기가 발생한다면 한동안 잠복됐던 중진국 함정 논쟁이 거세질 가능성이 높다.
모리스 골드스타인의 위기판단 지표, 글로벌 투자은행(IB)의 외채상환 계수 등으로 볼 때 아직까지 대형 위기가 발생한 가능성은 낮다. 하지만 외국인과 우리 국민이 현 정부에 대한 기대를 저버리게 되면 자기실현적 기대 가설에 따라 대형 위기가 찾아올 수 있다. 2020년대 한국 경제와 관련해 가장 우려되는 팻 테일 리스크다.
이밖에 2020년대 예상되는 팻 테일 리스크로는 △비이성적 과열에 따른 미국 주가 20% 폭락 △신흥국에서 외국자금의 대규모 이탈 △항로와 자원 확보를 위한 북극 전쟁, 그리고 △외화조달 실패로 북한의 붕괴 가능성 등이 꼽힌다. 그 어느 10년보다 팻 테일 리스크 관리에 특별히 신경을 써야 한다.
한상춘 / 한국경제신문 논설위원 겸 한국경제TV 해설위원(scha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