中, 디스토피아 ‘우한 폐렴’ 파장…제3의 천안문 사태로 번지나 [국제경제읽기 한상춘]

입력 2020-01-28 09:48


매년 초 스위스 작은 휴양 도시 다보스에서 열리는 세계경제포럼(WEF)이 2020년대 진입을 앞두고 단골 메뉴로 다뤄왔던 유일한 과제가 있다. ‘디스토피아(dystopia)’다. 미국도 '우리 국민, 우리 미래(our people, our future)'라는 버락 오바마 정부 시절에 제시됐던 미래 아젠다에서 날로 심각해지는 디스토피아 문제를 거론해 주목을 끌었다.

디스토피아란 유토피아(utopia)의 반대되는 개념인 반(反)이상향으로, 예측할 수 없는 지구상의 가장 어두운, 특히 극단적으로 어려운 상황을 말한다. 유토피아의 저자 토마스 모어는 인간 현실 세계의 이상향으로 유토피아를 제시했는데, ‘그 어느 곳에도 없는 장소’란 뜻으로 현실에 없는 이상적인 상(像)을 말한다.

디스토피아 사상이 담긴 문학 작품으로 올더스 헉슬리의 <멋진 신세계(1932)>와 조지 오웰의 <동물 농장(1945)>이 꼽힌다. 크게 세 가지 내용으로 구성돼 있다. 하나는 극심한 환경 문제로 지구는 태양이 사라져 어두운 세계가 되고, 다른 하나는 돈으로 모든 것이 해결돼 치안과 시스템이 무너지고, 그리고 대도시와 위생환경이 사람보다 쥐에 익숙하도록 변한다는 것이 골자다. 2020년대 진입을 앞두고 동물 농장이 다시 베스트셀러가 될 만큼 높은 관심을 끄는 것은 당시에 예상이 현실로 닥치고 있기 때문이다.

WEF는 또 다른 10년인 2020년대에 세계 경제에 커다란 영향을 미칠 위험 요인으로 경제·환경·지정학·사회·기술 등 5개 분야에 걸쳐 총 28개의 디스토피아 우선 과제를 선정해 발표했다. 28개 디스포피아 우선 과제를 발생 가능성과 파급력을 기준으로 각각의 순위를 매긴 점이 특징이다. 각국 정책당국자와 기업인 그리고 개인이 쉽게 대응할 수 있도록 배려한 흔적도 역력하다.



발생 가능성이 높은 다섯 가지 디스토피아로 ①국가 간 분쟁 ②극단적 기상이변 ③사이버 테러 ④국가 거버넌스 실패 ⑤높은 구조적 실업을 꼽았다. 발생 때 파급력이 큰 다섯 가지 디스토피이로는 ①수자원 위기 ②급속한 전염병 확산 ③대량 살상무기 ④국가 간 분쟁 ⑤기후변화 대응 실패를 선정했다. 우한 폐렴은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 전염병이다.

베를린 장벽이 붕괴된 지 30주년이 되는 시점에서 국가 간 분쟁 등 지정학적 위험이 최상위권으로 진입하고 있는 점이 주목된다. 글로벌화에 대한 환멸은 △국가 거버넌스 실패 △국가 간 분쟁 △대규모 사이버 테러 공격 △국가 붕괴 위기 △대량 살상무기 등으로 촉발된 국민감정과 함께 각국의 이기주의와 군축 경쟁으로 치닫고 있기 때문이다.

지정학적 위험은 사이버 테러 공격 등 기술적 위험의 대두와 새로운 경제 환경의 영향으로 종전과 다른 양상으로 전개될 가능성을 지적한 점도 눈에 들어온다. 금융위기 이후 선진국과 신흥국 가릴 것 없이 경제성장과 고용창출이 이전만큼 회복되지 않음에 따라 앞으로는 국가주의의 동인이 강화돼 국가 간 혹은 국가 내 갈등을 더 조장시킬 것으로 예상된다.

기술적인 위험의 경우 대규모 사이버 공격은 파급력과 발생 가능성 면에서 해가 지날수록 상위권으로 빠르게 올라가고 있다. 일상생활에서 사물 인터넷(IoT·internet of things) 기술은 혁신을 가져왔지만 동시에 새로운 위험을 발생시키기 때문에 인터넷과 SNS 환경은 해킹, 정보 유출 등 보안해야 할 점이 많다. IOT 등의 기술은 비즈니스 모델과 사업 환경에 큰 혁신을 가져오고 있지만 노동시장의 대규모 파괴 등 잠재적인 시스템 위험도 함께 높아지고 있기 때문이다.

1990년대 이후 교토의정서 등을 통해 각국이 노력해 왔지만 뚜렷한 성과와 대응책 마련이 없어 환경 디스토피아가 날로 높아지는 추세다. 2020년대 들어 파급력이 가장 큰 환경적 디스토피아로 △수자원 위기(2030년이 되면 글로벌 물 수요는 지속가능한 물 공급을 약 40% 초과할 것으로 전망된다. 세계은행(World Bank)에 따르면 경작 관련 물 수요는 이미 총 물 소비의 70%를 차지하고 있다.) △기후변화 대응실패 △생물학적 다양성 손실과 생태계 붕괴 등이 꼽힌다. 식량자원, 수자원, 에너지, 기후변화 등을 미국 국가정보회의(NIC·national intelligence council)에서 2030년 가장 중요한 메가트렌드로 선정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사회적 위험의 경우 경제적·사회적·환경적 발전으로 인해 시스템 상 취약성이 높아지고 있는 점을 우려한 것도 주목된다. 사회 경제적 불평등이 국가 간에는 차이가 좁혀지고 있지만 국가 내에서는 높아지는 것이 사회적인 디스토피아를 더 심화시키는 요인으로 작용해 왔다는 지적이다. 특히 개도국에서는 빠른 기술 변화로 불가피하게 발생할 만성적인 대규모 실업에 대한 대책이 시급하다. 방치할 경우 ‘아랍의 봄(Arab spring)’과 같은 폭등 사태가 재현될 가능성이 높다.

경제적 불평등과 실업은 사회적 안정을 저해하고 평등과 고용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치는 악순환 고리가 형성돼 사회적 위험에 대한 논의와 해결책 마련을 어렵게 한다. 이 상황에서 사회 구성원은 안정감을 찾기 위해 국가 전체에 속하기 보다는 심리적 소속감과 동료 의식을 동시에 느낄 수 있는 작은 집단, 즉 다양한 커뮤니티에 속하려는 경향이 높아지고 있는 점도 사회적 디스토피아 해결을 복잡하고 어렵게 만든다.

더 우려되는 것은 공공 부문의 과다 부채와 고용 문제로 세계 경제를 더 악화시킬 가능성이 높다는 점이다. 세계적인 실업문제가 2020년대 들어 개선되기보다는 오히려 더 악화될 예상되는 가운데 높은 실업은 임금 수준을 낮게 유지해 저물가 압력을 유발하고, 저물가는 채무자의 채무상환능력을 떨어뜨려 금융시스템 안정에 위협을 줄 수 있기 때문이다.

국가별로는 디스토피아 피해가 가장 우려되는 곳이 중국이다. 2001년 세계무역기구(WTO) 가입 이후 중국 경제가 본격적으로 열리면서 중요한 고비 때마다 디스토피아가 발생해 큰 어려움을 겪어왔다. 사스 사태로 성장률이 2% 포인트 떨어졌던 2003년에는 ‘위기론’이 처음 제시됐다. 2015년에는 메르스 사태로 단일 성장률 목표치 달성이 어려워지자 이듬해부터 시작된 13차 5개년에는 ‘성장률 목표 밴드제’가 도입됐다.

현재 중국 경제는 중대한 기로에 놓여 있다. 작년 성장률이 1990년 이후 29년 만에 가장 낮은 6.1%로 기록했다. 같은 해 4분기에는 6%까지 떨어져 ‘바오류(성장률 6% 유지)’ 붕괴 일보직전까지 몰렸다. 인위적인 재정 부양만 없었더라면 5%대 초반으로 추락했다는 것이 일반적인 시각이다.



더 심각한 것은 작년 하반기 이후 또 하나의 바이러스 전염병인 아프리카 돼지 열병 피해로 물가가 계속해서 오르고 있는 점이다. 작년 11월 소비자물가상승률은 4.5%로 7년 만에 최고치를 기록했다. 시진핑 정부가 세운 물가 목표치 3%를 무려 1.5% 포인트 뛰어넘는 수준이다. 스테그플레이션 국면이다.

성장률(소득)이 떨어지는 속에 물가가 올라간다면 인민이 느끼는 경제 고통은 급등할 수밖에 없다. 경제고통지수를 구성하는 세 가지 항목(경제고통지수=실업률+소비자물가상승률-성장률) 모두 악화되고 있기 때문이다. 경제고통지수도 중국 경제가 개방을 추진한 1990년 이후 가장 높은 수준이다.

중국 최대 명절인 춘절을 앞두고 발생한 우한 폐렴 사태는 지방 경제를 파국으로 몰아갈 가능성이 높다. 러시아 국경부터 무너지기 시작한 지방 경제는 돌이킬 수 없는 국면으로 몰리고 있다. 지방 제조업 경기 부진으로 800개가 넘는 지방은행이 유동성 위기가 발생했다. 재정 수입이 급감하면서 지방 정부도 디폴트(부도) 사태가 속출하고 있다.

지방 인민의 불만은 하늘을 찌를 태세다. 홍콩 시위대 사태로 국제 사화에 가려지긴 했지만 지방 인민의 시위를 잡기 위해 무장 병력까지 동원하고 있다. 그 수위가 날로 높아지면서 도시로 점차 확대되고 있다. 이러다간 ‘제3의 천안문 사태로 번지는 것이 아닐까’는 우려가 나올 정도로 심각하다.

가장 당혹스러운 사람은 시진핑 국가주석이다. 제3의 천안문 사태가 일어난다면 자신의 축출 문제가 거론될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1976년 1차 천안문 사태 이후 등소평 실각, 1989년 2차 천안문 사태 이후 조자양에서 강택민으로 권력 이양이 발생했다. 부정부패 척결 과정에서 밀려난 권력층을 중심으로 시진핑 퇴출 작업이 시작됐다는 소문마저 돌고 있다.

위기감을 느낀 시진핑 주석은 종전과 달리 우한 폐렴 사태에 강력하게 대응하고 있다. 공산당 선언 목표 달성을 앞두고 중국 경제는 나라 안팎으로 현안이 수복이 쌓여있다. 우한 폐렴을 포함해 당면한 현안을 해결하느냐에 따라 중국 경제가 ‘재도약 하느냐‘ 아니면 ’중진국 함정에 빠지느냐’ 여부가 결정될 가능성이 높다. 시진핑 주석의 운명도 마찬가지다.

디스토피아 시대에 있어서는 종전의 규범과 제도보다 정의와 도덕 등과 같은 이른바 행동주의 가치와 기본(back to the principle)이 더 중시될 가능성이 높다. 디스토피아, 그 자체가 불확실성을 내포해 위험이 상수항(함수 y=a+bx에서 'a')이 되는 2020년대에 모든 경제주체가 생존하기 위해서는 위기관리 능력이 최고 덕목으로 떠오를 것으로 예상된다.

한상춘 / 한국경제TV 해설위원 겸 한국경제신문사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