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 짤리겠는데?"…기자가 본 '기자 없는 세상'

입력 2020-01-24 06:31
삼성, 인공인간 NEON 선보여
인간과 차이점 찾기 어려워
무궁한 활용도·부작용 동시에
'어?... 나 짤리겠는데?'

전세계 4,500여개 가전·IT기업들이 저마다 기술을 뽐냈던 CES 2020. 그 드넓은 박람회장 한 부스에서 저는 불현듯 실직의 위기감을 느꼈습니다.

부스에 비치된 스크린 속 기자는 저보다 훨씬 자연스럽고 유창하게 뉴스를 전달하고 있었습니다. 문제는 그 기자가 진짜 사람이 아니라 '인공인간'이었다는 점입니다.



(▲ 기자 '네온'의 모습. 인이어를 점검하는 디테일까지 살렸다.)

우리와 닮은, 경험을 통해 학습하는 스크린 속 아바타

삼성리서치아메리카 산하 연구소 스타랩에서 선보인 새로운 기술 '인공인간'은 다소 생소한 단어입니다. 일반적으로 '인공지능'과 '인조인간' 이런 단어가 우리에게 익숙하죠.

'인공지능'이 인간의 학습능력과 추론능력, 지각능력, 자연언어의 이해능력 등을 컴퓨터 프로그램으로 실현한 기술이고, '인조인간'이 전통적으로(만화 같은 곳에서) 인간형 로봇이나 안드로이드들을 일컫는 말이라고 한다면 '인공인간'은 '인공지능'과 '인조인간'의 그 중간 어딘가에 있는 개념으로 보시면 될 것 같습니다.

스스로 학습할 수 있는, 그리고 인간과 구별하기 힘들 정도로 아주아주 유사한 스크린 속 '아바타'가 바로 인공인간 네온입니다.

스타랩은 "네온은 우리와 닮았고, 가상의 존재지만 독립적이며, 감정을 나타내고 경험을 통해 학습할 수 있다. 하지만 AI 비서와 달리 네온은 모든 것을 알지 못하며, 날씨를 알려주거나 음악을 틀어주는 인터넷 인터페이스가 아니다"라고 설명하기도 했죠.



(▲ 다양한 '네온'의 모습. 인종·직업군까지 다양하다.)

'언캐니 밸리' 넘어 실제 인간의 모습·행동까지 유사

사실 기술적인 부분(스스로 학습할 수 있다는)을 차치하고서라면, 우린 이미 유사한 이미지를 본 적이 있습니다.

1998년 혜성처럼 등장했었던 국내 1호 사이버 가수 '아담'입니다. 이 친구는 너무나도 CG이라는 것이 티가 나서 오히려 정감이 가는 그런 친구였습니다.



(▲ 사이버가수 '아담'의 모습. 확실히 CG 티가 난다.)

반면, 먼 후손 격인 네온은 외견뿐만 아니라 행동의 디테일까지 위화감이 없이 진짜 인간이라는 착각이 들 정도입니다.

이 둘 사이에는 '언캐니 밸리'라는 좁힐 수 없는 격차가 존재합니다. '불쾌한 골짜기'라고도 불리는 '언캐니 밸리'는 일본의 한 로봇공학자에 의해 만들어진 개념입니다. 인간이 인간이 아닌 존재를 볼 때, 그것이 인간과 더 많이 닮을수록 호감도가 높아지지만 일정 수준에 다다르면 오히려 불쾌감을 느낀다는 이론입니다. 호감도가 급격하게 떨어졌다가 다시 상승 곡선을 그리죠. 로봇뿐만 아니라 지나치게 인간과 닮은 인형, 3D 애니메이션, 광대, 좀비를 볼 때 불쾌감을 느끼는 것에도 적용되는데요.



(▲ X축이 인간과 유사도, Y축이 친근함이다. 친근함이 급격하게 떨어져 계곡처럼 파인 부분이 '언캐니 밸리'다.)

네온이 인간과 이렇게 유사함에도 불구하고, 불쾌함이 느껴지지 않았다는 것은 이 '언캐니 밸리' 마저 극복했다는 소리가 됩니다. 소피아 같은 AI 로봇이 기존에 가졌던 외양적 한계를 넘었다는 거죠.



(▲ AI 로봇 소피아. 보고 있으면 어딘지 모르게 불편하다.)

미디어 연관 직업 하나둘 사라질지도

다시 돌아와서 ▲학습 능력을 가진, 거기에 ▲인간과 꼭 닮아 불편하지 않은 어떤 존재 '인공인간'. 이들이 실제 생활에서 적극적으로 활용되기 시작한다면, 전달자로서 기자의 역할은 '인공인간'들에게 넘겨줄 가능성이 높습니다. 제아무리 날고 기는 기자라도 실수가 '0'일리는 없으니까요.

'인공인간'들은 감정의 동요로 실수를 하지도 않을 테고, (증강현실 기술 등을 활용한다면) 위험한 장소에도 얼마든지 보낼 수 있을 테니 완벽합니다. 사실 스포츠나 증권 시황 등의 정보 전달 패턴이 있는 뉴스의 경우 '봇(Bot)'들이 이미 많은 정보를 처리하고 있습니다. '인공인간'은 인간 기자들의 더 많은 영역을 침범해 들어오겠죠.

과연 기자라는 직업에만 국한될까요? 아닐 거라고 봅니다. 영상을 주 무대로 하는 상당수의 직업이 영향을 받을 겁니다. '인공인간' 기술이 계속 발달한다면, 언젠가는 아카데미 남우주연상 후보에 인간 배우가 아닌, IT 기업이 노미네이트되는 날이 올지도 모르죠.

활용도 무궁하지만, 아직은 조금 부담스러운 기술

'인공인간'이 가진 활용도를 삼성은 분명히 인지하고 있습니다.

삼성전자는 지난 21일 정기 임원 인사에서 '인공인간' 개발을 담당한 프라나브 미스트리를 전무로 승진시켰습니다. 미스트리는 올해 삼성전자의 최연소 전무이자 유일한 30대 전무로 이름을 올리게 됐죠.



(▲ 삼성전자 최연소 전무에 오른 '프라나브 미스트리'. 네온 개발을 담당했다.)

하지만, 아직까지는 이 '인공인간'을 어떻게 활용할지에 대해서는 고민이 많은 모양새입니다. '인공인간'을 공개한 올해 CES에서도 '네온'의 부스는 삼성전자와 별도로 차려졌습니다. 그것도 꽤 거리를 두고서요.

'가짜뉴스'나 '페이크영상' 등으로 악용될 수 있는 가능성이 조금이라도 있어서, 사회적으로나 법적으로 가이드라인이 정해지지 않은 이상 쉽게 내놓기는 어려운 상황이라 보입니다.

파괴적 신기술 앞에서 인간은?

네온을 보면서, '나보다 잘 생긴 데다 전달력까지 좋은 인공인간 기자'보다 내가 우위에 서 있는 점이 무엇인지 한참을 고민했습니다. 쉽게 찾아낼 수 없더군요.

첨단 기술의 현장에서 우리 삶에 조금씩 스며들고 있는 혁신기술을 보면서, 이들이 인간에게 단순히 편리함만을 제공하는 것이 아니라 노동 같은 아주 근본적인 문제에도 결정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고민 없이 살다 보면 실직하기 십상이겠다는 생각도 들었구요.

저만 고민해야 할 문제는 아닐거라고 봅니다. 우리 사회가, 아니 인류 전체가 직면한 과제겠죠. 그렇지만, 우선 저는 동료 기자들과 앞으로 뭘 먹고살아야 할지 얘기해봐야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