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처럼 한자리 모일 친지들 "어디사는지 안부 묻기도 부담"

입력 2020-01-24 17:54
서울-외곽 양극화 심화
천정부지 치솟은 서울 집값
'부동산' 온 국민 관심사
"서울 진입 이제는 불가능한가요"
*30대 신혼부부 A씨와의 대화를 기초로 내용을 재구성했습니다.

▲ 30대, 수도권 외곽, A씨

고양시 탄현에 사는 A씨는 매년 명절이면 가족·친지들을 만나기가 꺼려진다. 양 부모님으로 받은 돈과 대출까지 합쳐 마련한 첫 신혼집이 몇 년째 미분양 단지로 남아있기 때문이다. 비슷한 값이면 서울에 어지간한 아파트를 살 수 있었는데 이제는 서울에서 살 수 있는 아파트가 손에 꼽을 수 있는 수준이다. 집값이 올랐다는 가족들 얘기는 A씨에겐 다른 나라 이야기다.

▲ 50대, 서울 송파구, B씨

50대 후반인 B씨는 상황이 조금 다르다. 송파구에 10여년을 산 그는 집 한 채가 거의 전재산인 전형적인 1주택 가구다. 최근 몇 년 동안 "집값이 많이 올랐겠다"며 친지나 주변 친구들로부터 "부럽다"는 얘기를 자주 듣는다. 집을 팔고 다른데로 이사가는 건 생각해본 적도 없었는데 오래산 집값이 오른게 무슨 의미인지 크게 와닿지 않는다. 오히려 새로 부과된 종합부동산세와 높아진 세금 부담이 더 크게 와닿는다.



▲ '안부'가 '실례'로

'어디 사는지'를 묻는 것이 '실례'가 되는 시대가 됐다. 월세인지, 전세인지, 자가인지를 묻는 것은 그렇게 된지 이미 오래다.

몇 년 동안 서울 집값이 가파르게 오르면서 부동산은 전국민적 관심사가 됐다. "2년 사이에 두배가 올랐다", "자고 일어나니 억이 올랐다"는 말이 심심치 않게 들린다. △△구 ○○동에 산다고 말하면 집값이 대강 어느정도 갈지 짐작이 가능하다. '주변이 개발 된다더라', '지하철이 들어온다더라' 살면서 몇 번 가보지 않은 곳들인데도 개발 호재가 눈에 선하다.

가족, 친지들끼리도 마찬가지다. "요즘 어디사니?"는 평범한 안부인사였지만 이제는 그렇지 않다. '얼마가 올랐겠구나', '얼마나 내렸겠구나'가 머릿속으로 금방 계산된다. 어디 사는지를 말해주면 마치 계좌 잔고를 보여주는 기분이다. 그래서 이런 말도 덧붙인다. "입주한지 얼마 안된 새 아파트 단지에요"라고.

▲ 무리하게 대출을 받은 식구… 지금은…

친척들 중에는 이런 가족도 있었다. "전세로 살면서 2년마다 떠도는 건 이제 못하겠다"며 수억 원의 담보대출을 끼고 마포구 아파트를 샀다. 말 그대로 지른거다. 정말 힘들어했다. 한명의 소득은 고스란히 담보대출 이자로 갚았다. '저렇게까지 무리하며 집을 살 필요가 있을까'라고 생각했다.

몇 년이 지난 지금도 상황은 비슷하다. 심지어 아내가 아이를 가져 휴직에 들어가게 되면서 소득은 더 줄었다. 그나마 금리가 내려가면서 이자부담이 낮아진 게 다행이다. 아직 저축은 꿈도 못꾼다고.

하지만 눈에 띄게 오르는 집값을 보면 집 사기를 잘했다고 한다. 하루 종일 주식을 들여다보고 차트를 분석해도 까먹는 날이 더 많은데, 집은 편안히 자고 일어나면 무리없이 올라있으니 말이다. 지금까지 어떤 투자보다도 성공적인, 안정적인 투자라고 본단다.



▲ 서울 진입은 더이상…

A씨는 이번 생에는 서울로 들어가기는 어렵다고 보고 있다. 서울에 집을 사둔 친구들이나 가족들을 보면 부럽지 않을 수가 없단다. 매일같이 20분씩 기다려야 하는 경의중앙선을 타고 서울 도심까지 출퇴근하다보면 그 때 일산에 집을 산게 두고두고 후회가 된다고.

명절이면 전국 각지에 흩어져있던 가족들이 한자리에 모인다. 최대한 자격지심은 안가지려고 한다. 그래도 어디사는지 묻는 질문과, 누가 집으로 얼마를 벌었는지를 들으면 마음이 답답해 질 것 같은 예상은 든다. '대학은 어디 가려고 하니', '결혼은 언제하니', '취업은 했니'가 명절 가족·친지들의 불편한 질문으로 꼽힌다던데, 이제는 '어디 사는지'도 더해야 할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