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병언 자녀들 1700억원 내야" 法, 세월호 구상권 첫 인정

입력 2020-01-17 16:51


세월호 참의 수습 과정에서 국가가 지출한 비용 중 70%를 고(故) 유병언 전 세모그룹 회장 일가가 부담해야 한다고 법원이 판단했다.

서울중앙지법 민사합의22부(이동연 부장판사)는 17일 국가가 유 회장 일가 등을 상대로 낸 구상금 청구 소송에서 "유병언 전 회장의 자녀인 유섬나(53)·상나(51)·혁기(47) 씨 남매가 총 1천700억여원을 지급하라"고 판결했다.

세월호 사건의 수습 등 과정에서 세월호 특별법에 따른 손해배상금 등 비용을 지출한 국가는 사고에 책임이 있는 유 전 회장 자녀들과 청해진해운 주주사 등을 상대로 4천213억원을 청구하는 소송을 냈다.

세월호 특별법은 '사고에 원인을 제공한 자'에게 국가가 구상권을 행사할 수 있다고 규정한다. 구상권은 누군가가 부담해야 할 채무를 대신 졌을 때 원래의 채무자에게 돈을 돌려달라고 청구할 수 있는 권리를 뜻한다.

재판부는 유병언 전 회장이 세월호 참사의 '원인제공자'에 해당한다고 판단했다.

우선 유 전 회장이 지분구조를 통해 청해진해운에 영향력을 행사하며 대표이사를 임면했고 세월호의 도입과 증·개축을 승인했다는 점을 근거로 '세월호를 안전하게 운항하는지 감시·감독할 의무'가 있었다고 재판부는 봤다.

청해진해운 임직원들이 장기간 화물을 과적하거나 고박(결박)을 불량하게 하는 등 위법행위를 해 사고가 발생했고, 유 전 회장은 이를 알 수 있었음에도 감시·감독을 소홀히 했다고 재판부는 판단했다.

결과적으로 상법이 정한 '업무집행 지시자', 민법이 정한 '공동 불법행위자'로 유 전 회장이 세월호 참사의 손해배상 책임을 진다고 결론 내렸다.

다만 재판부는 유병언 전 회장이 져야 할 책임의 범위는 일부 제한했다.

수색·구조를 위한 유류비나 조명탄비, 인건비, 피해자 배상금, 장례비, 치료비 등 3천723억원에 대해서만 구상권을 청구할 수 있다고 봤다.

국정조사나 세월호 진상조사 특별위원회 운영 등 국가의 작용에 관련한 비용이나 공무원 수당, 추모사업 관련 비용 등은 구상권의 범위에서 제외했다.

재판부는 "세월호 사고와 관련한 비용 모두를 원인제공자에게 구상하도록 하는 것은 헌법과 법률이 국가에 부여한 국민 생명 보호 의무 등을 모두 전가할 우려가 있다"고 설명했다.

이렇게 인정된 3천723억원 중에서도 유 전 회장이 책임질 부분은 70%인 2천606억원이라고 재판부는 판단했다.

국가의 사무를 맡은 해경의 부실 구조, 한국해운조합 등의 부실 관리 등도 사고의 원인이 됐다는 판단에서다.

재판부는 유병언 전 회장의 책임을 70%로, 국가의 책임을 25%로 정했다. 나머지 5%는 화물 고박 업무를 담당한 회사에 있다고 봤다.

재판부는 이렇게 인정된 2천606억원에 대해 유 전 회장의 상속인인 섬나·상나·혁기 씨 남매가 3분의 1씩 부담해야 한다고 판결했다.

다만 선주배상책임공제계약 등에 따라 먼저 공제된 부분을 제외하도록 해 실제 지급할 금액은 약 1천700억원으로 정해졌다.

국가는 유 전 회장의 장남 유대균(49) 씨에 대해서도 구상금을 청구했지만, 재판부는 대균 씨의 경우 적법하게 상속 포기가 이뤄졌다고 보고 기각했다.

이날 선고는 국가가 세월호 참사와 관련해 책임자들을 상대로 구상금을 청구한 사건 가운데 최초의 승소 사례다.

앞서 국가는 대균 씨에 대해 유 전 회장과 같은 '업무집행 지시자'였다는 취지로도 1천800억원대 구상금을 청구했으나 2017년 패소했다.

그 밖에 세월호 선장과 선원들, 청해진해운을 상대로 낸 소송 등 여러 건의 재판이 진행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