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act-tory는 산업(Factory) 속 사실(Fact)과 이야기(Story)들을 다룹니다. 곱씹는 재미가 있는 취재 후기를 텍스트로 전달드리겠습니다.》
"현대차를 사보고 싶어질 줄이야." 지난 15일 공개된 제네시스 브랜드 첫 SUV, GV80를 처음 주행하고 든 생각입니다.
일산 킨텍스에서 진행된 미디어 시승장에서 처음 만난 제네시스 GV80는 유출된 이미지보다 훨씬 고급스러웠습니다. 보닛부터 트렁크까지 이어지는 볼륨감 있는 외관에 얇고 선명한 네 개의 쿼드램프로 콘셉트카의 모습을 그대로 구현했기 때문인데요. 시승차량을 운전하자 강렬한 색감과 디자인 덕분인지 지나가던 시민들이 사진을 찍기도 했습니다. 제네시스 GV80를 구석구석 살펴봤습니다.
● 물오른 뒷바퀴 플랫폼..SUV 주행에 이런 맛이
GV80는 제네시스가 2015년 브랜드 독립 이후 5년 만에 처음으로 내놓은 준대형급 SUV입니다. 2017년 뉴욕모터쇼에 등장한 후륜 SUV 콘셉트카에 대한 관심이 컸던 차량이지요. 지난해 제네시스 G70이 북미 올해의 차로 선정된 만큼 성능도 기대를 모았습니다.
제네시스 GV80는 현대차가 지난해 가을 공개한 스마트스트림 3.0리터 직렬 디젤엔진에 22인치 휠을 달아 제대로 된 '자세'를 보여줍니다. 제원상 성능은 275마력에 60kg·m토크인데, 앞으로 2.5리터 가솔린, 3.5리터 터보 엔진 모델도 나올 예정입니다. 아무래도 경쟁 차량인 아우디, BMW 등을 의식한 라인업으로 보여집니다.
일산 킨텍스를 출발해 인천 영종도 방향으로 차량을 몰고 밟아본 첫 느낌은 기존의 현대차와 완전히 다르다는 점입니다. 엑셀을 밟는 순간 빠르게 튀어나가던 현대차가 묵직하면서도 안정적인 조향감, 고속 코너에서 뒤뚱거리지 않는 자세로 달려나갑니다. 물론 고속에서는 높은 토크값을 제대로 해내며 치고 나감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그러면서도 실내는 매우 조용했습니다. 이중 접합유리와 함께 세계 최초로 능동형 소음저감기술을 적용해 차량 노면에서 올라오는 타이어 소음, 풍절음이 거의 들리지 않습니다. 마치 애플의 에어팟 프로에도 적용한 '노이즈캔슬링'처럼 주변 소음을 상쇄시켜 탑승한 사람들의 피로를 줄여주죠. 여기에 테슬라를 닮은 듯한 고속도로 주행보조(HDAⅡ) 기능으로 반자율주행을 할 수 있고, AR이 가미된 네비게이션과 헤드업 디스플레이를 통해 차량의 주행 경로, 주변 차량의 흐름까지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트렁크 라인은 두 개의 선을 위아래로 넣어 단단한 느낌을 줍니다. 외관상 좁아보이던 트렁크를 열면 2열 시트를 접어 성인 남성을 눕혀서 태울 수 있을 만큼 넓습니다. (실제 185cm의 취재기자가 들어가고도 여유있을 정도 였습니다.) 아쉬운 점은 깜빡이를 살짝 조절해 차량의 자동 차선변경을 돕는 기능이 탑재됐는데, 현대차 홍보실도 작동방법을 몰라 헷갈려할 만큼 복잡하고 어려운 기능까지 들어가 있습니다.
● 디테일한 '질감'에 감탄…다소 좁은 공간은 아쉬워
루크 동커볼케 부사장, 이상엽 현대차 디자인센터장이 모두 벤틀리 출신이라는 점 때문인지 차량 외관에서 벤틀리 벤테이가의 모습이 곳곳에 드러납니다. 유난히 긴 전면부, 볼록하게 튀어나온 보닛의 형태가 그렇습니다. 하지만 디테일에서 이 차의 성격이 분명히 달라집니다.
클래식하고 동그란 헤드램프 대신 두 줄의 헤드 램프, 전면부 크레스트 그릴을 배치해 보다 미래지향적이고 역동적인 제네시스만의 인상을 만들어냅니다. 선을 최소한 사용하고 밋밋해 보일 법한 면의 질감은 무광의 브런즈윅 혹은 유광의 카디프 그린으로 풍성하게 연출했습니다. 광택 여부에 따라 크롬 장식의 톤도 바꿔 차량의 고급스러운 맛을 더합니다.
실내 디자인은 사선형 디자인 요소가 들어간 다이얼 형태의 기어레버, 손잡이 등에서 시선을 사로잡습니다. 특히 사람 손이 닿는 곳의 질감이 마치 명품 가방을 만지는 듯합니다. 천장은 베이지색 스웨이드로 마감하고, 무릎이 닿는 운전석 도어와 센터페시아 하단은 퀼팅 처리한 가죽, 도어 손잡이 상단은 또한 플라스틱임에도 나무 질감을 구현해 제 값을 합니다. 다만 직렬 디젤 엔진과 후륜 구동을 연결한 탓에 실내 공간을 넓게 내지 못한 점은 아쉬움으로 다가왔습니다.
● 벤츠 포기할 만큼 가치 있을까…국내 반응은 '합격점'
이제 우리가 선택할 일은 딱 하나입니다. '과연 BMW 혹은 벤츠 SUV를 타지 않고 2천만원을 아낄 가치가 있느냐'겠죠. 혹은 펠리세이드·모하비·트래버스를 살 값에 보태서 이 차를 살 가치가 있을까요?
3,000cc 디젤 엔진을 장착했을 때의 최저 시작 가격만을 비교하자면, 아우디 Q7과 볼보 XC90(2,000cc)가 약 8,000만 원 수준에서 시작하고, 벤츠 GLE(2,000cc)가 약 9,000만 원, BMW X5(M퍼포먼스 모델 제외)가 약 1억 원부터 시작합니다. 이 차량들에 옵션까지 더하면 1억 원에 근접한 가격이 된다고 봐야겠네요.
GV80는 시작 가격, 이른바 깡통이 6,580만 원부터 시작합니다. 이대로 탈 수는 없으니 필수 옵션 중 4륜 구동(+350만원)과 3열 시트(+100만원), 선택 옵션 중엔 인기가 높은 옵션들을 모아놓은 '파퓰러 패키지(+630만원)'를 고른다고 치면 약 1,200만 원을 추가해 약 8,000만 원 정도의 가격이 나옵니다. 참고로 GV80의 최고급 풀옵션 가격은 8,900만 원 수준입니다.
시승 예약사이트 접속이 몰리고, 현대차 직원들도 줄서서 구매한다는 GV80는 출시 첫날만 1만 5,000대가 계약됐습니다. 제네시스가 밝힌 GV80 연간 판매목표는 2만4,000대입니다. 이제 국내 시장을 바탕으로 제네시스와 GV80가 북미 시장, 나아가 해외 시장에서 어떤 평가를 받을 지에도 관심이 모아집니다. 제네시스는 올해 G70 모델의 페이스리프트, 준중형급 SUV인 GV70로 라인업을 확장할 예정입니다. 출범 5년, 아직은 명품과 견주기엔 짧아보이는 역사의 제네시스 브랜드가 시장의 인식을 바꾸고 제값하는 명품으로 평가받을지 지켜봐야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