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미애, 윤석열 검찰총장 참모진 '물갈이'…"권한남용" 논란도

입력 2020-01-09 17:44


추미애 법무부 장관이 8일 밤 대검검사급(검사장) 이상 검찰 고위 간부 인사를 전격 단행하면서 법무부와 검찰 사이에 자리 잡았던 인사 관행에 확실히 제동을 걸었다는 분석이 나온다.

9일 법조계에 따르면 추 장관은 취임 5일 만인 8일 윤석열 검찰총장 참모진에 대한 '물갈이' 인사를 단행했다. 윤 총장의 참모진이 모두 교체됐다는 점도 두드러지지만 검찰 인사의 관행을 바꿨다는 평가도 뒤따른다.

보통 검찰 인사는 법무부 장관과 검찰총장이 상의해 세부 방향을 정했다. 법무부 검찰국에서 인사 초안을 만들어 장관과 총장에게 보고한 뒤 검찰인사위원회 심의와 장관 제청, 대통령 재가 등의 절차를 밟아 이뤄졌다.

문재인 정부 초기에는 조국 민정수석과 박상기 법무부 장관, 문무일 검찰총장 등 3명이 검찰 인사의 주요 내용을 협의했다. 지난해 7월 윤 총장 취임 다음 날 바로 단행된 고위 간부 인사 역시 비슷한 방식으로 진행됐다.

과거 정부에서도 검찰 인사를 앞두고 장관과 총장은 서로 대면한 가운데 의견을 교환했다.

장관과 총장 단둘이 만나기도 하고 배석자가 있기도 했다. 두 차례 이상 만나거나 만남의 장소를 외부로 정하는 등 때에 따라 다른 점이 있지만 큰 틀은 유지됐다.

현 정부에서는 법학 교수 출신의 비법조인에 해당하는 박상기·조국 전 법무부 장관이 기용됐지만, 일반적으로 법무부 장관은 검찰 출신 선배가 맡았다. 현 정부 들어 법무부의 탈(脫)검찰화가 가속화하기 전에는 법무부 내 상당수 요직이 검사로 채워졌다.

이런 여건 속에서 검찰의 요청사항이 법무부의 인사에 반영되는 경우가 많았다. 서로 양해해주는 분위기 속에서 인사가 이뤄지다 보니, 조직 쇄신이라는 가치는 뒷전으로 밀리고 법무부와 검찰과 사실상 한 몸처럼 공생한다는 비판이 나오기도 했다.



추 장관은 관례로 자리 잡은 이런 인사 방식을 거부했다. 법무부와 검찰이 구체적인 인사 방안을 놓고 긴밀하게 협의하는 인사 관행을 따르지 않은 것이다.

장관 후보자 시절 국회 인사청문회에서도 추 장관은 인사에 관한 견해를 묻자 "검찰총장과 협의하는 게 아니라 검찰총장의 의견을 듣는 것"이라고 장관의 권한을 강조한 바 있다.

추 장관의 인사 파격은 법무부 장관이 검사의 보직을 제청할 때 검찰총장의 의견을 청취한다는 검찰청법 제34조 제1항을 어떻게 해석하느냐와 맞물려 있다.

이 조항은 노무현 정부 때 강금실 법무부 장관이 관례와 달리 송광수 검찰총장과 의견 조율 없이 인사를 내려다가 내부 반발로 뜻을 접었던 게 발단이 돼 2004년 1월 만들어졌다. 초안 문구는 '협의를 해'였지만 이후 '의견을 들어'로 바뀌었다.

이번 인사에서 추 장관은 윤 총장에게 의견을 개진하라고 했지만 인사안(案)을 보여주지는 않았다. 이 때문에 윤 총장은 의견을 개진하지 않았고 추 장관은 잠시 말미를 줬다가 곧바로 인사를 단행했다.

이를 두고 법조계 일각에서는 추 장관의 직권남용이 아니냐는 비판이 나왔다. 검찰총장의 의견 청취를 사실상 생략한 채 인사를 단행한 것은 위법하게 권한을 남용한 것이라는 주장이다.

검찰총장의 의견을 들어 인사를 단행하라고 권고한 검찰인사위원회의 의견도 무시한 것이 아니냐는 지적도 있다.

반면 법무부는 절차적 문제가 전혀 없다는 입장이다. 추 장관이 의견을 개진하라며 호출까지 했는데도 윤 총장이 응하지 않았던 점에 비춰 위법성이 없다는 결론을 내리고 인사를 단행했다는 것이다.



논란은 정치권으로도 번졌다. 자유한국당은 이번 인사가 여권을 겨냥한 수사를 벌이는 검찰에 인사 보복을 가한 것이라며 추 장관을 형사고발하는 방안을 검토 중이다.

추 장관은 이날 국회 법제사법위원회에 출석해 "법을 위반한 게 아니라 검찰총장이 제 명을 거역한 것"이라며 "검찰인사위 이후에도 의견 개진이 가능하다고, 모든 일정을 취소하고 기다렸는데 제3의 장소에서 인사의 구체적 안을 갖고 오라고 법령에도 있을 수 없는 요구를 했다"고 비판했다.

추 장관은 과거 인사 관례 역시 명확하게 정립된 건 없고 다양한 형태로 이뤄졌다며 장관의 재량권을 강조했다. 인사안과 관련해서는 "(검찰총장이) 대통령의 인사 권한에 대해 한 사람 한 사람 의견을 내겠다는 것은 법령상 근거가 없는 인사권 침해"라고 말하기도 했다.

추 장관의 단호한 태도에 비춰 법무부는 이달 중 예상되는 고검검사급(차장·부장검사) 이하 중간 간부 및 평검사 인사에서도 이번처럼 큰 폭의 인사를 단행할 것이라는 추측이 나온다. 이후 반부패수사부(옛 특별수사부) 등 직접수사부서 폐지 등 검찰개혁안 후속 조치에도 박차를 가할 것이라는 전망도 있다.

특히 법무부는 조국 전 장관 시절 내놓은 검찰개혁안에서 서울중앙지검 반부패수사부 4곳 중 2곳, 공공수사부(옛 공안부) 3곳 중 1곳과 함께 공정거래조사부, 방위사업수사부, 조세범죄조사부, 범죄수익환수부 등 인지 부서를 폐지하겠다는 뜻을 내비친 바 있다.

이 같은 직제개편 구상과 관련해 윤 총장은 "검찰의 부패 대응 역량이 약화하지 않아야 한다"며 법무부의 방안에 우려를 밝힌 바 있어 당분간 각종 검찰개혁안 이행 문제를 두고도 법무부와 검찰 간 긴장 국면이 이어질 것으로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