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면 시간이 너무 길거나 짧으면, 현재 의술로는 치료가 불가능한 폐섬유증(pulmonary fibrosis) 발병 위험이 커진다는 연구 결과가 나왔다.
수면 시간이 하루 11시간 이상이거나 4시간 이하면 '생체시계(body clock)'를 교란해 이 불치병을 유발할 수 있다는 것이다.
주목할 부분은, 너무 적게 자는 사람보다 너무 많이 자는 사람의 폐섬유증 위험이 훨씬 더 크다는 것이다.
그러나 생체시계를 조작하면 폐섬유증을 완화할 수 있다는 것도 동물 실험에서 확인됐다. 이는 생체시계가 폐섬유증의 치료 표적이 될 수 있음을 시사한다.
영국에서는 한해 약 5천 명이 폐섬유증으로 사망한다고 한다. 이는 백혈병 사망자와 비슷한 수치다.
영국 맨체스터대 과학자들이 주도한 이번 연구엔 영국의 옥스퍼드대·뉴캐슬대·유니버시티 칼리지 런던, 캐나다 토론토대 등의 연구진도 참여했다.
관련 논문은 '미국 국립과학원 회보(PNAS)'에 실렸고, 맨체스터대 측은 지난해 12월 30일(현지시간) 온라인(www.eurekalert.org)에 논문 개요를 공개했다.
생체시계는, 하루 24시간을 주기로 수면, 호르몬 분비, 신진대사 등을 제어하는 신체 기능을 비유적으로 표현한 것이다.
정상이라면 폐의 생체시계는, 코와 폐를 연결하는 기도(airways)에 주로 분포한다.
그런데 생쥐 실험 결과, 폐섬유증이 있으면 생체시계의 '진동(oscillations)'이 허파꽈리(alveoli)까지 미치는 것으로 드러났다.
또한 생체시계의 작동 메커니즘을 조작하면 폐 섬유화 과정을 억제할 수 있다는 것도 같은 실험에서 확인됐다.
연구팀은 이어 'UK 바이오뱅크'의 등록자 데이터를 분석해, 과도히 길거나 짧은 수면 시간과 폐섬유증이 연관돼 있다는 걸 밝혀냈다.
이런 사람들의 폐섬유증 발병 위험은, 수면 시간이 정상(하루 7시간)인 사람의 2배(4시간 이하 수면) 또는 3배(11시간 이상 수면)에 달했다.
이보다는 덜 하지만, 깊은 밤까지 잠을 이루지 못하거나 야간 시프트 근무를 하는 사람도 폐섬유증 위험이 높은 것으로 분석됐다.
연구팀은 생체시계에 중요한 작용을 하는 'REVERB α' 단백질이 폐섬유증 발병에 관여할 것으로 추정한다. REVERB α가 폐섬유증을 유발하는 단백질(콜라겐)의 생성에 변화를 유발한다는 것이다.
이런 결과는, 이미 개발된 화합물로 REVERB α 단백질의 기능을 제어할 수 있다는 점에서 과학자들의 관심을 끌었다.
실제로 연구팀은, 폐섬유증이 생긴 생쥐의 폐 조직에 이런 화합물 중 하나를 투여해 콜라겐을 줄이는 데 성공했다.
이번 연구를 주도한 맨체스터대 의대의 존 블레이클리 감염·면역·호흡기 내과 부교수는 "폐섬유증과 수면 지속 시간 사이의 원인과 재현성을 입증하려면 더 많은 연구가 필요하다"라면서 "이 과정을 거치면 수면 시간을 최적화해 폐섬유증 증상을 완화할 수도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