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장판 된 국회 본회의…"문희상 내려와" 한국당 격렬 항의

입력 2019-12-23 23:36


패스트트랙(신속처리안건) 선거법 개정안이 전격 상정된 23일 국회 본회의는 시종일관 아수라장이었다.

문희상 국회의장이 오후 7시57분께 개의를 선언한 직후 한국당이 일제히 의장석을 둘러싸고 의사진행에 항의하고 나서며, 본회의는 시작과 동시에 고성과 막말에 얼룩졌다. 법안 처리를 지연하기 위한 무더기 수정안 발의 등 꼼수도 난무했다.

'동물국회'를 막기 위해 도입된 국회선진화법의 취지를 무색하게 하는 무더기 필리버스터 신청과 계속되는 수정안 발의에 국회가 금도를 넘어선 혼돈을 자초했다는 비판이 나온다.

이날 본회의는 시작부터 순탄치 않았다. 당초 예정된 오후 6시를 2시간이나 넘겨 문 의장이 본회의장에 입장할 때부터 한국당 의석에선 "민생법안을 상정하라"는 고성이 터져 나왔다.

첫 안건인 임시국회 회기 안건이 상정되자 본회의장은 순식간에 달아올랐다.

문 의장은 "회기 결정의 건을 상정한다"며 "심재철 등 108인으로부터 무제한 토론(필리버스터) 요구가 제출됐지만, 무제한 토론이 적합하지 않다는 결론에 이르렀다"고 못박았다.

이에 찬반 토론을 신청한 한국당 주호영 의원은 단상에 올라 "본회의 부의 안건에 대해 의장은 반드시 무제한 토론을 실시해야 한다"며 반발했다. 그는 "국회법상 규정이 명백함에도, 의장이 임의로 거부하면 형사책임을 면할 수 없을 것"이라고 경고했다.

그러나 회기 안건에 필리버스터를 허용하지 않는다는 의장 방침에 따라 토론 제한시간 5분이 지나 마이크가 꺼졌고, 한국당 의원 수십명은 일제히 의장석 앞으로 달려가 '아빠 찬스 OUT' 이라고 쓰인 피켓을 들고 "의장 사퇴, 아들 공천, 무제한 토론" 등 구호를 외치며 거세게 항의했다. 지난 10일 본회의에 이어 문 의장 아들이 의정부 지역구를 넘겨받아 출마하려 한다는 비난이 다시 등장한 것이다.

문 의장이 민주당 윤후덕 의원에게 토론 차례를 넘겼으나, 주 의원이 자리를 비키지 않고 버티는 가운데 단상에 오르려는 윤 의원을 한국당 박대출·권성동·김태흠·민경욱 의원 등이 막아서며 몸싸움마저 벌어졌다.

한국당 의원들이 "의장 불법"을 거듭 외치자 문 의장은 이들을 두 손으로 가리키며 "이게 불법이에요"라고 소리쳤다.

민주당 의원들이 별다른 반응 없이 상황을 지켜보던 가운데, 이인영 원내대표가 결국 의장석에 다가갔고, 이에 문 의장은 "토론종결 요청이 들어와 종결한다"고 선언한 후 회기 결정의 건 표결에 돌입했다.

찬성 150인, 반대 4인, 기권 3인으로 안건이 통과되자 민주당 의원들은 박수를 쳤지만 한국당 측에서는 일제히 야유가 터져나왔고, 이주영 의원은 "역사에 죄를 짓는 것"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한국당은 회기 안건에 이은 예산부수법안 상정에도 구호 제창을 이어갔다.

이런 가운데 한국당이 지연전술의 하나로 예산부수법안 대해 제출한 '무더기 수정안'의 전산 입력 과정에 오류가 발생하며 의사진행이 지연되는 이례적인 상황도 벌어졌다.

이날 두번째 안건이었던 예산부수법안인 증권거래세법 개정안에 한국당의 수정안안이 32건 제출됐고, 결국 최초 상정에서 의결까지 28분이나 걸린 것이다.

선거법에 대한 필리버스터가 시작된 오후 9시52분에 이르기까지 약 1시간 55분간 의결된 안건은 4건에 불과하다. 표결 한 번에 평균 29분이 걸린 셈이다.

이날 오후 9시40분께 문 의장이 민주당의 요청을 받아들여 본회의 27번째 안건이었던 공직선거법 개정안을 앞당겨 상정하는 의사일정 변경 동의의 건을 표결에 부치면서 '난장판 국회'는 순식간에 정점으로 치달았다.

한국당 임이자·장제원 의원 등 약 스무명이 일제히 의장석 앞으로 달려가 문 의장에게 삿대질을 하며 거세게 항의했다. 장 의원은 의장석을 손으로 내려치는가 하면, 다른 의원들이 문 의장을 향해서류 뭉치를 집어던지는 모습도 포착됐다.

의사일정 변경이 의결되자 문 의장은 공직선거법 개정안을 전격 상정하고 한국당이 신청한 무제한 토론의 시작을 선언했다.

한국당 의원들이 "날강도", "문희상 내려와" 등의 구호를 외치자 일부 민주당 의원은 "니들이 날강도"라고 맞받아쳤다.

한국당 전희경 의원은 "아들 공천 준다고 나라를 팔아먹나, 국회를 이렇게 만드나"라며 "당신은 역사의 죄인"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10여분간 격렬한 소란이 이어진 끝에 주호영 의원이 "문 의장이 참 가지가지 한다"며 무제한 토론 첫 타자로 나서며 본격적인 필리버스터가 시작됐다.

필리버스터가 시작된 이후에는 상당수 의원들이 본회의장을 빠져나가면서 비교적 차분한 분위기에서 토론이 진행됐다. 의원들은 서로 대화를 나누거나 휴대전화를 보며 시간을 보내기도 했다.

토론 시작 40여분이 지나면서는 잠시 눈을 감은 문 의장을 향해 한국당의 한 의원이 "의장님 졸지 마세요"라고 외치는 장면이 목격되기도 했다. 문 의장은 어이없다는 듯 웃은 뒤 다시 정면을 응시했다.

주 의원이 '유재수 감찰무마 의혹'과 관련해 발언을 하자 일부 민주당 의원이 고함을 치며 항의하는 모습도 나왔다. 일부 의원이 "들을게 있어야 듣지"라고 말하자 주 의원은 "들을 거 없으면 나가세요"라고 맞받아쳤다.

주 의원은 이날 오후 11시30분까지 약 1시간 40분가량 몇 차례 목이 아픈 듯 기침을 한 것 이외에는 힘들어하는 기색없이 토론을 이어가고 있다.

앞서 한국당을 제외한 여야 '4+1'(더불어민주당·바른미래당·정의당·민주평화당+대안신당)의 선거법 및 검찰개혁 법안 합의문 작성이 늦어지면서 본회의 개의도 2시간 가량 지연됐다.

4+1 여야는 의결정족수(148석)을 채우기 위해 지역구에 내려간 각 당 소속 의원들을 긴박하게 여의도로 소환하는 등 분주하게 움직였다.

반면 한국당 의원들은 본회의 개의에 앞서 심 원내대표와 함께 국회의장실을 항의방문하고 면담을 요청하는 등 안간힘을 썼으나, 의사일정 강행을 막아내지는 못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