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온 왕이 "中 부흥, 역사의 필연…누구도 못 막아"

입력 2019-12-05 17:25
수정 2019-12-05 17:30


5년 만에 한국을 찾은 왕이(王毅) 중국 외교담당 국무위원 겸 외교부장이 방한 이틀째인 5일에도 미국을 강도 높게 비판했다.

특히 2016년 한중 갈등을 촉발한 주한미군 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THAAD·사드) 배치를 두고 "미국이 중국을 겨냥해서 만든 것"이라면서 미국에 대한 불만을 노골적으로 드러냈다.

왕 부장은 이날 서울 중구 장충동 신라호텔 영빈관에서 열린 우호 오찬회 기조연설에서 "냉전 사고방식은 진작 시대에 뒤떨어졌고 패권주의 행위는 인심을 얻을 수 없다"면서 "중국 부흥은 역사의 필연이며 그 누구도 막을 수 없다"고 말했다.

그는 "온갖 방법을 써서 중국을 먹칠하고 억제하며 발전 전망을 일부러 나쁘게 말하는 사람들이 있다"면서 "그 배후에는 이데올로기 편견과 강권정치 오만도 자리 잡고 있으며 (그러한 시도는) 결국 실패로 끝날 것"이라고 강조했다.

중국에 '먹칠'하고 '패권'을 휘두르는 주체를 직접 언급하지 않았으나 무역협상과 홍콩인권민주주의법안(홍콩인권법안) 제정 등 여러 현안에서 부딪치며 패권 경쟁 중인 미국을 겨냥한 발언으로 읽힌다.

이는 왕 부장이 전날 한중 외교장관회담 모두 발언에서 일방주의와 패권주의가 세계 안정과 평화를 위협하는 최대 요인이라며 자국 우선주의 정책을 펴는 미국을 비판한 것의 연장선에 있다.

왕 부장은 이날 기조연설 후 '한국에서는 한중 관계가 사드 때문에 여전히 좋지 않다는 인식이 있다'는 취재진 질문을 받은 자리에서도 "사드는 미국이 중국을 겨냥해서 만든 것이며 한중관계에 영향을 줬다"고 답하며 미국을 조준했다.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 패권주의에 대한 생각을 묻는 말에는 "(트럼프) 대통령 트위터에서 매일 (패권주의를) 관찰할 수 있다"면서 "그것(트윗)이 매일 공론화되고 있다"라고도 했다.

취재진 물음에 답하는 형식이긴 했지만, 외교장관이 다른 나라 대통령을 직설적으로 평가하는 것은 이례적이다.

'중화 부흥'을 과시하면서 미국을 거침없이 공개 비판한 왕 부장의 언행을 두고 자국 공산당 지도부를 향한 '보여주기'라는 해석도 있다.

왕 부장은 이날 기조연설에서 "중국이 이룩한 발전의 성과는 올바른 발전의 도로를 찾았기 때문에 가능했다. 공산당이 주도하는 중국 특색의 사회주의를 택했기 때문"이라면서 자찬했다.

그러면서 "중국은 시종 한국이 신뢰할 수 있는 장기적인 협력 파트너"라면서 "양국은 이미 이익이 고도로 융합된 이익 공동체가 됐다"고 한중관계를 강조했다.

그는 "이번 방한은 한국 측과 중요한 전략적인 소통을 하기 위함으로, 양국은 지금 새로운 발전 기회를 맞이했다"면서 ▲ 높은 정치적 상호신뢰 구축 ▲ 수준 높은 양자 협력 실현 ▲ 수준 높은 다자협력 등 3가지를 발전 방향으로 제시했다.

이는 한미 관계가 한일 군사정보보호협정(GSOMIA·지소미아) 파문 등으로 삐걱대고 미국의 중거리 미사일 배치 가능성 등 예민한 현안이 있는 상황에서 한국을 좀 더 중국 편으로 끌어들이려는 접근으로 보인다.

왕 부장은 전날 한중외교장관 만찬 마지막에 자장면이 나왔던 점을 언급하면서 "무거운 이야기가 많이 나왔는데 자장면 때문에 분위기가 확 달라졌다. 자장면은 중한 양국 문화가 통하는 것을 보여준다"고 언급하기도 했다.

이날 오찬에는 이수성 전 국무총리와 송영길 더불어민주당 의원, 윤병세 외교부 장관 등 60여명이 참석했다. 행사는 12시 시작될 예정이었으나 왕 부장의 반기문 전 유엔 사무총장 면담으로 40분가량 늦게 시작됐다.

왕이 방한 (사진=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