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 홍콩 인권법 통과…中, 홍콩 달러 페그제 차단으로 맞대응하나 [국제경제읽기 한상춘]

입력 2019-11-25 09:01


홍콩 사태가 새로운 국면으로 치닫고 있다. 홍콩 시위의 직접적인 발단이 됐던 중국으로의 범죄자 인도 협약, 즉 ‘송환법’에 정면으로 배치되는 인권법이 미국 상원에서 통과됐기 때문이다. 1997년 영국에서 중국으로 다시 반환됐지만 서구화 물결이 몸 속 깊숙이 물든 체질에서 송환법 그 자체는 구속이기 때문에 반발할 수밖에 없다. 인권법 통과는 결과적으로 미국이 홍콩 시위대에 손을 들어준 셈이다.

‘중계 무역’, ‘아시아 금융 중심지’로 대변되는 홍콩 경제 특성상 모든 것이 자유롭게 이동되지 못하면 ‘싱가포르 쇼크’에 걸린다. 싱가포르 쇼크란 상품과 돈이 자유롭게 이동되면 성장률이 잠재수준 이상으로 뛰어올라 ‘인플레이션 갭’이 발생하지만 그 반대의 경우에는 곧바로 ‘디플레이션 갭’으로 전환되는 현상을 말한다. 전형적인 ‘천수답 부유(浮游) 경제’에 해당한다.

홍콩 경제는 지난 2분기 이후 성장률이 마이너스 국면으로 떨어지면서 지난 3분기에는 -0.4%를 기록했다.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최저수준이다. 최대 성장 동력인 수출이 급감하고 있다. 투자 감소율은 두 자리대로 급락해 앞으로가 더 문제다. 글로벌 투자은행(IB)은 올해 성장률이 잘해야 플러스 성장률을 유지할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경제가 받쳐주지 못하면 홍콩은 곧바로 ‘엑시트(HK+Exit)’ 문제가 봉착한다. 올 들어 유입자금대비 유출자금 비율(E/I Ratio)을 보면 지난 2월부터 높아지기 시작하면서 홍콩 시위가 결렬해진 최근 들어서는 3배까지 치솟았다. 홍콩 금융시장에 100달러가 들어오면 300달러가 빠져나갔다는 의미다. 종전에 볼 수 없었던 이례적으로 빠른 속도다.

홍콩은 1983년부터 달러당 7.8홍콩 달러(밴드 폭 7.75∼7.85)를 유지하는 페그제를 채택했다. 페그제 상단과 하단이 뚫리면 홍콩 중앙은행격인 HKMA가 보유 홍콩 달러를 팔고 사는 방법으로 유지해 오고 있다. 페그제 채택 이후 1987년 블랙 먼데이, 2001년 9.11 테러, 2009년 리먼 브러더스 사태 등 숱한 충격에도 잘 버터 홍콩이 중국 반환 이후 빠르게 쇠락할 것이라는 당초 예상을 뛰어 넘고 오히려 국제금융 중심지로 한 단계 부상되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페그제 유지 여부의 최대 관건은 풍부한 외환사정과 순조로운 자금유입이다. 홍콩의 외환보유액은 우리와 비슷한 4천 400억 달러 내외로 추정된다. 본원통화의 두 배에 해당하기 때문에 E/I 비율이 1배가 넘지 않으면 페그제는 유지된다. 하지만 E/I 비율이 최근처럼 2.6배가 넘으면 사정은 달라진다. 홍콩 은행 예금이 1조 7천억 달러(13조 3천억 홍콩 달러)로 국내총생산(GDP)대비 470%에 달해 보유 외화로 페그제를 유지할 수 없게 된다.

1990년대 초 유럽통화위기, 1997년 아시아 통화위기 등에서 경험했듯이 페그제가 위협당하면 홍콩 달러 약세를 겨냥한 환투기 세력으로부터 공격당할 가능성이 높다. 홍콩처럼 천수답 부유 경제가 무서운 것은 페그제가 무너지면 자체적으로는 ‘자금 이탈과 실물경기 침체 간 악순환 고리(vicious cycle)’ 고리가 쉽게 형성될 수 있다는 점이다.

대외적으로도 홍콩이 아시아를 비롯한 국제금융시장에서 차지하는 위상을 감안하면 전염 효과가 의외로 크게 나타날 가능성이 높다. 자금 이탈로 홍콩 증시와 부동산 시장이 무너지면 ‘마진 콜(margin call·증거금 부족)’이 발생해 ‘디레버리지(deleverage·기존 투자 회수)’ 과정에서 투자 원천국의 자산시장과 경기에 연쇄 파동이 예상되기 때문이다.

페그제를 유지하지 못할 경우 누가 ‘안전판(safty valve)’ 역할을 담당할 것인가 하는 점이다. 국제통화기금(IMF)는 재원 부족에 시달려 회원국의 구제금융 요청을 다 들어주지 못하고 있다. 자체 적자 국채 발행을 검토할 정도다. 회원국 금융시장도 구제금융과 같은 사후적 방안보다 지배구조 개선과 같은 사전적 방안으로 안정을 기할 것을 권고하고 있다.

중국은 ‘웨강아오 대만구(大灣區·Great Bay Area)’ 개발에서 홍콩을 제외시켰다. 선전·상하이를 홍콩을 대체할 국제금융 중심지로 키워 중국 중심의 팍스 시니카 야망을 달성해 나간다는 전략이다. 오히려 이 같은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서는 페그제가 조기에 붕괴돼 미국과의 단절되기를 더 바랄 수 있다.



미국은 페그제가 붕괴되면 홍콩과 자유롭게 교역할 수 없게 되고 홍콩 금융시장에서 누리는 특혜도 포기해야 한다. 도널드 트럼프 정부 출범 이후 중국 등 사회주의 국가를 중심으로 거세게 불고 있는 탈(脫)달러화 움직임도 빨라질 것으로 예상된다. 하지만 특정국의 페그제 유지만을 위해 기축 통화인 달러 유동성을 공급하는 것은 사실상 어렵다.

군사적 충돌뿐만 아니라 경제적으로 홍콩 시위를 오래 끌면 페그제 붕괴를 바라는 중국과 어떻게 하든 유지해야 하는 미국 사이의 마찰이 더 심해질 수 밖에 없다. 트럼프 정부 출범 이후 지난 2년 동안 끌어온 양국 간 마찰은 좀처럼 해결될 기미가 보이고 있지 않다. 합의는 더 이상 기대할 수 없는 루비콘 강을 건넜다는 시각이 나올 정도다.

지난 8월 트럼프 정부의 3차 보복관세(1차 340억 달러, 2차 2천억 달러) 부과를 앞두고 시진핑 정부가 위안화 약세로 맞서면서 넘지 말아야 할 달러당 7위안, 즉 포치(破七), 즉 ‘1달러=7위안’대 진입을 용인했다. 곧바로 트럼프 대통령은 중국을 환율 조작국으로 지정했다. 보복 문제를 두고 지난달 15일에 발표될 올해 하반기 환율 보고서를 한 달 이상 미뤄놓고 있다.

중국이 환율조작국으로 지정됨에 따라 트럼프 대통령은 의회 승인 없이 행정명령으로 100% 보복관세를 매길 수 있다. 대중 무역적자 축소와 함께 2020 대선의 최대 약점인 재정적자를 관세 수입으로 메울 수 있어 매력적인 카드다. 하지만 ‘극단적 이기주의’라는 국제적인 비난은 피할 수 없다.



앞으로 중국이 어떤 식으로 나올 것인가는 국제금융시장과 세계 경제에 커다란 영향을 줄 것으로 예상된다. 중국이 위안화 가치를 대폭 절하하고 미국도 달레 약세로 맞대응할 경우 글로벌 환율전쟁이 일어나고, 세계 경제는 1930년대에 겪었던 대공황의 악몽이 되살아날 가능성이 높다. 홍콩 문제의 본질이자 위험성이다.

한국은 홍콩에 대한 수출액이 중국·미국·베트남에 이어 네 번째로 큰 국가다. 최대 수출국인 중국에 대한 수출액도 약 70% 이상이 홍콩을 통해 이뤄지고 있다. 미중 마찰이 날로 격화되는 속에 전체 수출에서 양국이 차지하는 비중이 40%에 달한다. 홍콩 문제와 미중 간 마찰이 장기간 지속될 경우 우리 수출과 경기에 직격탄을 맞을 가능성이 높다.

홍콩을 통한 자금 조달 규모는 아시아 국가 중 가장 많다. 홍콩 H지수를 기초로 한 ELS(주가연계증권) 잔액은 42조 원에 달한다. 전체 ELS 잔액의 67%에 달하는 것으로 홍콩 H지수가 ‘8,000’ 밑으로 떨어지면 원금손실구간인 ‘녹인(knock in)’에 들어간다. 제2의 독일 국채 금리연계 상품인 DLS 사태를 방지하기 위해서는 선제적인 대책이 필요한 때다.

한상춘 / 한국경제TV 해설위원 겸 한국경제신문사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