췌장암 투병 사실을 밝힌 후 첫 경기에 나선 유상철 감독이 '부임 후 홈 경기 첫 승'이라는 선물을 받았다.
쾌유를 기원하는 '30초 박수'와 함께 시작한 경기에서 인천은 후반 교체 투입된 문창진, 케힌데의 연속 골에 힘입어 2-0으로 상주에 완승을 거뒀다.
경기 시작 1시간 전쯤 진행되는 사전 인터뷰에서 많은 취재진을 만난 유 감독은 "낯선데…"라며 미소를 지어 보였다.
유 감독은 "팬들도 긴가민가 말씀을 많이 하시고, 정확하지 않은 말들이 오르내리는 게 저나 가족들에게도 힘든 일이었다. 언젠가는 알려질 일 일테니 발표하는 게 좋겠다고 생각했다"며 투병 사실을 밝힌 이유를 설명했다.
이어 "격려의 메시지를 많이 받았다. 걱정을 많이 해주셔서 감동도 받고 힘이 됐다"면서 "기분이 왔다 갔다 하는 상황에서 다잡을 수 있었던 건 그런 메시지들 덕분이다. 정리가 좀 된 것 같다"고 말했다.
그는 "이대로 주저앉으면 안 되겠구나 생각했다. 선수 때도 힘든 시절이 있었고, 경험을 통해 성장해왔으니 지금 이 시간도 그렇게 되지 않을까"라며 "포기하지 않겠다"고 강조했다.
특히 유 감독은 "저야 알려진 사람이라 이렇게 관심을 받지만, 저와 같은 처지인 분들이 계실 것"이라며 "그런 분들에게 희망을 주기 위해서라도 보란 듯 완치해서 자리에 있을 수 있게 최선을 다해보겠다. 좋은 사례도 있으니 회복해서 좋은 모습을 보이겠다"고 다짐했다.
그는 "선수들에게는 단호하게 얘기했다. 감독이 아프다고 해서 열심히 뛰어야 한다는 생각은 '1도' 하지 말라고 했다"면서 "운동장에선 그런 것을 지우고 경기에만 집중하라고, 경기는 경기일 뿐이니 선수로서 좋은 경기 해서 좋은 결과 가져오자고만 했다"고 전했다.
상대인 상주의 김태완 감독도 "스포츠에선 상대를 '리스펙트'하는 게 중요하다. 이런 상황이라고 해서 질 수는 없다"면서 "상대를 존중하며 베스트로 나서서 이기기 위해 노력하는 게 도리"라며 최선의 승부를 약속했다.
경기 후 유 감독은 "만세 삼창을 계속했어야 했는데, 올해 마지막 홈 경기에서 팬들에게 좋은 선물을 안겨서 기쁘다"면서 "전반에 답답하고 루즈한 경기에 변화를 준 것이 잘 맞아떨어진 것 같다"고 승리 소감을 밝혔다.
김태완 상주 감독은 인천의 승리를 축하하며 "유 감독이 2002년 국민에게 희망을 주고 한국 축구를 이끌었던 선수인 만큼 강할 거라고 생각한다. 인천뿐만 아니라 국민에게 반드시 이겨내겠다고 약속해주면 좋겠고, 그럴 거라 믿는다"고 응원했다.
유 감독은 "기사 등을 혼자 볼 땐 코끝이 찡하고, 가슴이 뭉클해지더라"면서 "제가 보답할 수 있는 건 지금처럼 운동장에서 함께 호흡하고 서 있는 모습을 보이는 거라 생각한다. 좋아하고 잘할 수 있는 일을 계속하려면 건강해야 하니까, 잘 이겨내서 다시 운동장에 서게끔 약속드리겠다"고 말했다.
(사진=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