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위안화 가치는 미·중 무역마찰의 바로미터다. 마찰이 심화되면 ‘절하’, 진전되면 ‘절상’되기 때문이다. 미국과 중국 간 마찰이 새로운 국면으로 진입하고 있다. 가장 우려해 왔던 무역에서 시작된 마찰이 본격적으로 금융과 연계될 움직임이다. 앞으로 미중 간 마찰은 세계 경제에 이어 국제금융시장에서도 커다란 변수가 될 수 있다는 의미다.
올해 하반기 이후 숨 가쁘게 벌어졌던 미중 간 마찰 과정을 살펴보면 직접적인 발단은 중국의 태도다. 트럼프 정부 출범 이후 2년 동안 ‘수세적’ 입장을 보였던 중국이 미국의 기대와는 달리 ‘공세적’으로 변했다. 당황한 미국은 지난 9월 1일부터 잔여분 3,000억 달러(1차 340억 달러 25% 보복관세, 1차 2,000억 달러 두 단계로 나눠 25% 보복관세 부과) 상당의 중국 수출상품에 대해 보복관세를 부과하는 방침을 발표했다.
더 이상 보복관세 부과로 맞대응 할 수 있는 대상이 없었던 중국으로서는 ‘1달러=7위안’, 즉 포치(破七)선 진입을 허용했다. 무려 11년 만에 일이다. 국제금융시장에서는 어떤 경우라도 포치선 진입은 안 될 것으로 봤다. 중국으로서도 실익이 크지 않다. 금융위기 이후 다섯 차례 붕괴될 위험을 맞을 때도 중국 인민은행은 적극적으로 방어했다.
막상 뚫리자 충격이 컸던 국가는 미국이었다. 중국이 위안화 절하로 맞설 경우 지난 2년 동안 주력해온 보복관세 효과가 무력화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재정수지 적자를 메워줄 관세 수입도 줄어들게 된다. 내년 11월에 치러질 대선을 앞두고 치명타를 입게 되는 트럼프 대통령은 곧바로 중국을 환율 조작국으로 지정했다. 역(逆)플라자 합의 이후 사라졌던 ‘환율 조작의 악몽’이 되살아나 중국 이외 다른 교역국에게도 충격을 줬다.
트럼프 대통령이 중국을 환율 조작국으로 지정한 조치는 두 가지 점에서 미국의 전통을 지키지 않는 파격적인 조치로 평가된다. 하나는 예정된 ‘시기’를 지키지 않은 점과, 다른 하나는 정해진 ‘규칙’를 어겼다는 점이다. 정치적 욕망에서 보복성이 강한 트럼프 대통령의 독단적인 조치라는 비판이 나오는 것도 이 때문이다.
미국 재무부는 매년 4월과 10월에 주요 교역국을 상대로 환율 보고서를 발표한다. 올해 상반기 환율 보고서를 당초 예정일보다 한 달 이상 늦어진 5월 말에 발표했던 것도 중국을 환율 조작국으로 지정할 것인가를 놓고 마지막까지 고민했기 때문이다. 중국에 대한 환율 조작국 지정 조치는 이때부터 어느 정도 예견됐다고 볼 수 있다.
‘2015 교역 촉진법’에 따라 새롭게 적용된 BHC(베넷-해치-카퍼) 요건으로 환율 조작국에 해당하는 환율심층 대상국으로 지정되려면 △대미 무역흑자 200억 달러 이상 △국내총생산(GDP)대비 경상수지흑자 3% 이상 △외환시장 개입이 지속적이며 그 비용이 GDP의 2%를 넘는 세 가지 요건을 충족해야 한다. 중국은 첫 번째 요건만 걸려있다. 오히려 환율 조작국으로 지정되기 이전의 중국 지위인 ‘환율관찰 대상국’에서도 빠졌어야 한다.
BHC 요건대로라면 트럼프 대통령은 2016년 대통령 선거 당시 중국을 환율 조작국으로 지정하는 공약은 어떤 경우든 지킬 수 없기 때문에 지정 요건을 완화하는 작업을 검토해왔다. 중국을 환율 조작국으로 지정한 근거는 ‘1988년 종합무역법’이다. 동 법에서는 △대규모 경상수지흑자 △유의미한 대미 무역수지흑자 중 한 가지 요건만 걸려도 환율 조작국으로 지정할 수 있도록 돼 있다. 한 마디로 미국 마음대로 환율 조작국에 지정할 수 있다는 의미다.
중국이 환율 조작국으로 지정됨에 따라 미국은 첫 번째 제재조치로 ‘위안화 절하’ 대응수단으로 찾아낸 상계관세를 부과할 가능성이 높다. 상계관세란 교역 상대국의 보조금으로부터 피해를 받는 자국 산업을 보호하기 위해 세계무역기구(WTO) 체제에서도 반덤핑 관세와 함께 인정하는 제재수단이다.
최악의 경우 중국이 위안화 대폭 절하 등과 같은 수단으로 적극적으로 대응할 경우 트럼프 대통령은 슈퍼 301조를 동원할 가능성이 높다. 슈퍼 301조란 의회 승인 없이 행정명령으로 100% 보복관세를 때릴 수 있다.
앞으로 중국이 어떤 식으로 나올 것인가는 국제금융시장에 커다란 영향을 초래할 것으로 예상된다. 중국이 위안화 가치를 절하해 대응하고 미국도 달러 약세로 맞대응할 경우 글로벌 환율 전쟁이 일어나는 것은 볼 보듯 뻔하다. 세계 경제도 1930년대에 겪었던 대공황을 재차 겪을 가능성이 높다.
중국은 무역과 환율과의 비연계성을 강조하고 있다. 경기 대응적 요소 등을 감안한 현행 환율제도에서는 전일 경제지표가 부진하면 ‘절하’. 개선되면 ‘절상’해 고시할 뿐이라고 주장한다. 하지만 미국과의 관계가 중국 경제에 커다란 영향을 주고 있어 그 자체가 마찰과 오해의 소지를 안고 있다.
미국의 공분을 더 불러일으키는 것은 중국도 위안화 절하가 불리한 점이 많은데 실제로는 행동에 옮기고 있기 때문이다. 위안화 절하는 경상거래 면에서 수출을 증대시키는 효과가 있지만 자본거래 면에서는 자본유출을 초래해 금융위기 우려가 높아진다. 위안화 국제화 등을 통해 중국의 대외 위상을 높이는 계획에도 차질이 빚을 가능성이 높다.
미국이 ‘위안화 절하’에 가장 명료하게 대응할 수 있는 수단은 ‘달러 약세’다. 하지만 초기에 나타나는 'J-커브 효과' 때문에 대선을 치르기 이전까지 중국과의 무역적자가 오히려 확대돼 자충수가 될 가능성이 높아 쉽게 가져갈 수 있는 카드는 아니다. 글로벌 화폐발행차익(seigniorage)이 줄어들고 달러 자산의 평가손실도 커지는 부담도 있다.
한국 경제 입장에서 또 하나의 관심사는 중국에 이어 어떤 국가가 환율 조작국으로 지정될 것인가 하는 점이다. 후보국을 꼽는다면 고질적인 환율관찰대상국 가운데 이미 지정된 중국과 역학 관계 상 지정이 불가능한 독일 제외한다면 한국과 일본뿐이다. BHC 요건대로라면 경상수지 흑자 요건만 걸려있는 한국이 대(對)미 무역흑자, 경상수지흑자 두 가지 요건이 걸려있는 일본보다 낮다.
하지만 중국을 환율조작국으로 지정할 때부터 적용된 1988년 종합무역법 요건대로라면 사정은 달라진다. 미국과의 관계를 감안하면 한국 정부의 낙관론대로 환율 조작국에서 지정될 가능성을 완전히 배제할 수 없다. 중국도 한 가지 요건만 걸렸다가 지정됐다. 사전에 얼마나 트럼프 정부와 신뢰 관계를 구축해 놓느냐가 중요하다. 일단 상처가 나면 사후적으로 어떤 치료법을 동원한다 하더라도 잘 아물지 않는 것이 뉴노멀 시대에 냉혹한 국제관계 현실이다. 미국과 관계 개선이 필요한 때다.
한상춘 / 한국경제TV 해설위원 겸 한국경제신문사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