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측 시즌이 돌아왔다. 어제(10월 15일) 발표된 국제통화기금(IMF)의 세계 경제 전망 보고서를 시작으로 연말까지 모든 전망기관과 금융사의 예측서가 쏟아져 나온다. 결과가 나와 봐야 알 수 있겠지만 내년 세계와 한국 경제는 순탄치 않을 점에서는 비슷한 견해가 나올 것으로 예상된다. 그 어느 해보다 ‘테일 리스크’가 많아 보이기 때문이다.
통계학에서 자연·사회·정치·경제 현상은 평균치를 중심으로 대칭을 이루고, 평균치에서 멀어질수록 발생 확률이 낮아지는 종 모양의 정규 분포로 설명한다. 하지만 발생 확률이 적은 현상이 나타나면서 빈도가 정규 분포가 예측하는 것보다 훨씬 커져 꼬리가 두터워질 경우 테일 리스크가 발생한다.
10년 전 금융위기 이후에는 정규 분포 꼬리가 너무 두터워져 평균에 집중되는 확률이 낮아 예측력이 떨어지는 ‘팻 테일 리스크’가 자주 목격돼 왔다. 꼬리 부분이 두텁지 않아야 평균값의 의미가 강해지고 통계학적 예측력이 높아지는데 꼬리가 두터워지면 평균값의 의미가 떨어져 예측이 어려워진다.
예측을 하는 가장 큰 목적 중의 하나가 경제 주체를 안내하는 일이다. 이 목적을 제대로 수행하기 위해서는 추세는 맞아야 하고, 예측 오차(실적치-예측치)도 크지 말아야 한다. 두 요건을 충족시키는 전망기관의 예측치는 갈수록 줄어들고 있는 것은 팻 테일 리스크가 빈번하게 발생하기 때문이다. ‘예측 무용론’까지 나올 정도다.
내년 세계 경제에서 가장 우려되는 팻 테일 리스크는 ‘경제 절대 군주 시대’가 열릴 것인가 여부다. 세계 경제는 ‘뉴 노멀’ 시대에 접어들었다. 이론과 규범이 통하는 ‘노멀’ 시대에 대비되는 개념이다. 이론과 규범이 적용되지 않아 세계 경제의 ‘틀(frame)’이 흐트러지면 포퓰리스트가 판친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세계 경제에 미치는 영향은 ‘짐의 말이 곧 법이다’할 정도다.
경제 절대 군주 시대에 각국 간 관계는 자국 혹은 자신만의 이익을 중시하는 중상주의가 번창한다. 미·중 간 마찰이 본격화되면서 세계화 쇠퇴를 의미하는 ‘슬로벌라이제이션’이란 신조어가 나온 것도 이 때문이다. 슬로벌라이제이션은 올해 다보스 포럼에서 제시됐던 ‘세계화 4.0’과 같은 의미로 세계 경기는 침체된다.
더 우려되는 것은 내년에 세계 경제가 ‘디플레이션’을 넘어 ‘장기 불황’에 빠질 가능성이다. ‘D’ 공포가 빠르게 악화된다는 의미다. 세계 경제는 성장률과 물가 상승률, 그리고 금리가 동시에 마이너스 국면에 빠지는 ‘트리플 M’ 공포가 확산되고 있다. 트리플 M은 1930년대 대공황 이후 처음 나타나는 현상이다.
3차 대전에 대한 우려는 전형적인 ‘롱테일 리스크’에 해당한다. 미·중 간 경제 패권 전쟁이 벌어지고 있는 가운데 각국의 보호주의와 자국통화 평가절하, 극우주의 세력 득세 등으로 지금의 상황이 2차 대전 직전과 흡사하다. 폴 크루그먼 미국 뉴욕 시립대 교수는 “2차 대전 이후 최악의 국면에 접어들었다‘고 진단했다.
46대 대선 정국으로 점철될 내년 미국 경제의 팻 테일 리스크는 ‘트럼프 대통령의 탄핵’과 ‘’제2의 옥토버 서프라이즈’가 발생할지 여부다. 취임 이후 20일에 1차 탄핵설, 100일 만에 2차 탄핵설, 1년 전 3차 탄핵설을 어렵게 넘긴 트럼프 대통령은 이번 4차 탄핵설 만큼은 대선과 맞물려 장기화되면서 상당한 고난이 예상된다.
옥토버 서프라이즈(Octorber Surprise)란 미국 대통령 선거 직전 달인 10월에 발생한 뜻하지 않은 사태로 그때까지 여론조사 등에서 불리한 후보가 당선되는 경우를 말한다. 미·중 간 마찰, 북미 협상, 이민법 등 그 어느 하나 표심을 얻을 만큼 성과를 내지 못한 트럼프 대통령이 과연 어디서 또 한 차례 옥토버 서프라이즈를 만들어 낼지 벌써부터 관심사다.
일본 경제는 1990년 이후 ‘잃어버린 20년’ 과정에서 △정책 함정 △유동성 함정 △구조조정 함정 △불확실성 함정 △좀비 함정 등 5대 함정에 빠져 고통을 겪었다. 지난 9월을 기해 아베 신조가 전후 최장의 총리로 등극하는데 성공했지만 일본 국민 사이에서는 ‘지브리의 저주’에 빠질지 모른다는 새로운 우려가 확산되고 있다.
지브리의 저주란 일본의 지브리 스튜디오가 제작한 애니메이션을 방영하면 증시 등 금융시장이 난기류를 보이는 현상이다. 지브리 저주는 금융변수 중 엔·달러 환율 움직임과 상관관계가 높다. 아베 총리의 장기 집권 기반이 마련됐으면 아베노믹스가 탄력을 받을 것이라는 기대로 엔화가 약세가 돼야 한다.
하지만 지난달 이후 일본 금융시장은 다른 양상을 보이고 있다. 트럼프 정부가 더 이상 엔화 약세를 허용할 수 없다는 입장을 밝힘에 따라 아베노믹스를 밀고 나갈 수 없기 때문이다. ‘엔고의 저주’가 걸려있는 일본 경제 특성상 엔저를 인위적으로 유지하지 못한다면 엔화 강세가 재현돼 수출과 경기가 침체된다.
내년에 예상되는 유럽 경제 팻 테일 리스크는 ‘선행의 역설(kind act's paradox)’이다. 선행의 역설이란 좋은 의미로 행동한 것이 도리어 안 좋은 결과를 가져오는 것을 말한다. 이를 테면 기부를 할 때 기부의 순수성을 생각하지 않고 출세 등 다른 측면을 생각하는 것을 전형적인 선행의 역설로 볼 수 있다.
유럽 재정위기 극복의 핵심 역할을 담당했던 독일 경제가 그 후유증으로 지난 2분기 이후 마이너스 국면으로 추락했다. 독일 경제가 침체에 빠진다면 유로랜드 중 비우량 회원국에 속하는 PIIGS(포르투칼, 아일랜드, 이탈리아, 그리스, 스페인) 경제뿐만 아니라 유럽 통합에도 악역향을 미치게 된다.
중국 경제가 당면한 최대 팻 테일 리스크는 ‘제3차 천안문 사태’ 가능성이다. 시진핑 주석이 미국과 협상, 홍콩 사태 등에 대응이 적절치 못했다는 비판이 일고 있다. 구조적 병인 3대 회색 코뿔소 현안도 제 때 해결하지 못함에 따라 ‘바오류(성장률 6%)’ 붕괴가 일보직전이다. 돼지 콜레라 등으로 생활 물가가 급등하면서 인민이 느끼는 경제고통은 치솟고 있다.
제3의 천안문 사태가 일어난다면 자연스럽게 ‘시진핑 주석의 축출 문제’가 거론될 것으로 예상된다. 1976년 1차 천안문 사태 이후 등소평 실각, 1989년 2차 천안문 사태 이후 조자양에서 강택민으로 권력 이양이 발생했기 때문이다. 시진핑 주석의 부정부패 척결 과정에서 밀려난 권력층을 중심으로 시진핑 퇴출 작업이 시작됐다는 소문이 돌고 있다.
내년 한국 경제는 10년 전 리먼브러더스 사태와 1990년대 후반 외환위기와 같은 대형 위기가 발생한 것인가가 최대 관심사다. 지난해 어렵게 도달했던 1인당 소득 3만 달러 시대가 올해 무너질 것으로 예상되는 때에 대형 위기가 발생한다면 한동안 잠복됐던 ‘중진국 함정’ 논쟁이 거세질 것으로 예상된다.
모리스 골드스타인의 위기판단지표, 글로벌 투자은행(IB)의 외채상환계수 등으로 볼 때 아직까지 대형 위기가 발생한 가능성은 낮다. 하지만 외국인과 우리 국민이 현 정부에 대한 기대를 저버리게 되면 자기실현적 기대 가설에 따라 대형 위기가 찾아올 수 있다. 내년에 한국 경제와 관련해 가장 우려되는 팻 테일 리스크다.
이밖에 내년에 예상되는 FTR로는 △비이성적 과열에 따른 미국 주가 20% 폭락 △신흥국에서 외국자금의 대규모 이탈 △항로와 자원 확보를 위한 북극 전쟁, 그리고 △외화조달 실패로 북한의 붕괴 가능성 등이 꼽힌다. 내년은 그 어느 해보다 리스크 관리에 특별히 신경을 써야 한다.
한상춘 / 한국경제TV 해설위원 겸 한국경제신문사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