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베 신조(安倍晋三) 일본 총리는 미국 뉴욕 방문 중에 최근 한일 관계 악화의 책임이 한국에 있다는 주장을 기회 있을 때마다 반복했다.
기자회견에서 질문에 답하는 형식을 취하기는 했으나 유엔 총회를 계기로 한 외교 성과 등을 주로 설명하는 자리에서 상당한 시간을 할애해 한국을 비난한 것은 국제 여론을 겨냥해 미리 준비한 대응이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일본 총리관저가 공개한 동영상을 보면 아베 총리는 25일(현지시간) 뉴욕에서 일본 언론 및 외신이 참석한 기자회견을 열었고 한일 관계에 관한 질문에 약 2분 38초에 걸쳐 답변했다.
아베 총리는 한일 관계 악화에 관한 이탈리아 통신사 기자의 질문에 "우선 확실하게 말씀드리고 싶은 것은 수출관리 문제와 한반도 출신 노동자 문제는 완전히 별개의 문제라는 것"이라고 운을 뗐다.
한국인 징용 피해자에게 배상하라는 대법원판결에 대한 보복으로 일본이 대한(對韓)수출 규제를 강화했다는 국제사회의 비판을 불식하려고 했던 것으로 보인다.
아베 총리는 수출 규제 관리 강화가 세계무역기구(WTO) 협정을 포함한 자유무역질서에 완전히 부합한다는 기존 주장을 되풀이하고서 "안전보장상의 문제가 없는 것이 확인되면 수출을 허가해 오고 있으며 주변국을 비롯한 타국과의 무역에 영향을 미치는 것은 없다"고 주장했다.
그는 징용 판결에 관해서는 "한국과의 사이에는 전후 처리의 근본을 정한 일한청구권협정 위반 상태를 한국 측이 방치하는 등 나라와 나라 사이의 신뢰 관계를 해치는 행위가 이어지고 있다"며 한국에 책임을 돌렸다.
이어 "일본은 그런 가운데도 현재의 북동아시아 안전보장환경에 비춰보면 일미한의 안전보장 협력에 영향을 미쳐서는 안 된다는 입장에서 일관되게 대응해 왔다. 즉 일한 양국의 관계, 이것이 안전보장 분야에 영향을 미쳐서는 안 된다는 것이 일본의 일관된 입장"이라고 강변했다.
아베 총리는 "이번에 한국 측으로부터 지소미아의 종료가 일방적으로 통고된 것은 매우 유감"이라며 "어쨌든 한국에 대해 우선 나라와 나라의 약속을 지키도록 요구하고 싶다"고 덧붙였다.
일본 언론의 보도에 따르면 그는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과의 정상회담에서도 한일 관계 현안에 관해 일본의 입장을 설명했다.
그간 일본 정부가 공개적으로 밝힌 내용을 고려하면 최근 한일 관계 악화의 책임이 한국에 있다는 주장을 반복한 것으로 추정된다.
유엔 총회를 계기로 문 대통령과 정상회담은 물론 서서 대화하는 정도의 접촉조차 하지 않은 아베 총리가 굳이 한국 비난에 공을 들인 것에는 국제 여론을 자국에 유리한 방향으로 이끌겠다는 계산이 깔린 것으로 보인다.
문재인 대통령은 이번 유엔 총회에서 일본을 비판하는 행동을 일절 하지 않았다.
청와대의 설명에 따르면 문 대통령은 유엔 총회를 계기로 한 미국 방문 중에 역시 트럼프 대통령과 회담했으나 한일 관계는 의제로 다루지 않았다.
문 대통령은 현지에서 별도의 기자회견을 열지 않았으며 '뉴욕을 떠나며'라는 제목으로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글을 올려 유엔 총회에서 느낀 소회 등을 밝혔다. 문 대통령의 글에 일본을 비판하는 내용은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