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당한 공권력에 의해 억울한 옥살이를 했다가 재심을 통해 명예를 되찾은 제주4·3 생존 수형인들이 71년만에 국가로부터 형사보상금을 받게 됐다.
제주지법 형사2부(정봉기 부장판사)는 21일 불법 군사재판 재심을 통해 공소기각 판결을 받은 임창의(99·여)씨 등 제주4·3 생존 수형인 17명과 별세한 현창용(88)씨에게 총 53억 4천만원을 지급하는 내용의 형사보상 결정을 내렸다.
구금 일수에 따라 1인당 최저 약 8천만원, 최고 약 14억7천만원이다.
법원은 2019년 최저임금법상 일급 최저금액이 6만6천800원임을 고려해 보상금액을 법에서 정한 최고액인 구금일 1일당 33만4천원으로 정했다.
무죄 또는 공소기각 확정판결을 받은 피고인에게 지급하는 형사보상금은 구금 종류·기간, 구금 기간에 입은 재산상 손실과 정신적 고통, 신체 손상 등을 두루 고려해 산정한다.
형사보상금은 형사보상 및 명예회복에 관한 법률에 따라 무죄가 확정된 해의 최저임금법상 일급 최저금액 이상을 지급해야 하고 최대 5배까지 줄 수 있다.
재판부는 "4·3 사건의 역사적 의의와 형사보상법의 취지 등을 고려해 대부분 청구한 금액을 거의 그대로 인용했다"고 밝혔다.
애초 지난 2월 22일 이들 18명이 청구한 형사보상금 규모는 총 53억5천748만4천원으로 이번에 법원이 결정한 금액과 비슷하다.
형사보상을 받게 된 할아버지, 할머니들과 그의 가족들, 소송을 도왔던 양동윤 제주4·3 도민연대 대표 등은 22일 제주시 신산공원 4·3해원방사탑에 모여 간단한 의식을 치르고, 법원의 결정에 대한 입장을 밝힐 예정이다.
4·3해원방사탑은 4·3 50주년인 1998년 4월 4·3 희생자들의 원혼을 달래고 진상규명과 명예회복 등을 염원하며 제주도 전역에서 모아 온 돌멩이 하나하나를 쌓아 올려 세운 탑이다.
법원의 이번 결정으로 '제주4·3사건 진상규명과 희생자 명예회복 및 보상 등에 관한 특별법' 개정안 역시 파행을 거듭하는 국회가 정상화되는 대로 처리될 수 있을 지 주목된다.
제주4·3은 1947년 3·1절 발포사건을 기점으로 1954년 9월 21일 한라산 통행금지령이 해제될 때까지 7년 7개월간 제주에서 발생한 무력충돌과 군경의 진압과정에서 수많은 양민이 희생된 사건이다.
이 기간 적게는 1만4천명, 많게는 3만명이 희생당한 것으로 추정된다.
이중에서도 4·3 수형인은 당시 불법 군사재판으로 영문도 모른 채 서대문형무소와 대구·전주·인천 형무소 등 전국 각지로 끌려가 수감된 이들을 말한다.
임씨 등 18명은 1948∼1949년 내란죄 등 누명을 쓰고 징역 1년에서 최대 20년 형을 선고받아 복역했다.
이들은 지난 1월 17일 열린 선고공판에서 공소기각 판결을 받았다.
공소기각이란 형사소송에서 법원이 소송 절차에 문제가 있다고 판단했을 경우 실체적 심리를 하지 않고 소송을 종결시키는 것으로, 4·3 당시 이뤄진 군사재판이 별다른 근거 없이 불법적으로 이뤄져 재판 자체가 '무효'임을 뜻한다.
이 판결로 재심을 청구한 생존 수형인들이 명예를 인정받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