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이 한국에 대한 경제적 보복 카드를 상당 부분 내보인 상황에서 한국 정부도 쓸 수 있는 '맞불 카드'의 최적 시기를 조율 중인 것으로 나타났다
그동안 우리 정부은 세계무역기구(WTO) 제소나 한국 백색국가에서의 일본 제외 등 상응조치의 큰 틀은 밝혔지만, 구체적인 내용은 확정하지 않은 채 우리의 득실과 시기 등을 저울질해왔다.
11일 정부에 따르면 WTO 제소 준비는 물 밑에서 착실하게 진행하고 있다.
앞서 정부는 지난달 1일 일본이 반도체 소재 3개 품목에 대한 대한국 수출규제 방침을 밝히자마자 WTO 제소 방침을 내놓았다.
통상당국은 일본과의 후쿠시마 수산물 분쟁에서 역전승을 일군 산업부 통상분쟁대응과를 주축으로 일본의 수출규제 조치의 부당성을 뒷받침할 법리를 하나하나 따져가며 전략을 세우고 있다.
한국이 일본의 부당성을 증명할 법적 근거는 많이 있지만, 이 중에서도 '관세 및 무역에 관한 일반 협정'(GATT) 11조가 주된 공격의 근거로 쓰일 전망이다.
일본이 수출규제 이후 30여일만에 1건의 수출허가를 내준 것도 한국이 WTO 제소 시 GATT 1조1항이나 11조 1항 등을 근거로 제시할 수 있다는 점을 고려한 것이라는 해석이 나온다.
일본 입장에서는 해당 조치가 수출 금지가 아니라 '수출관리' 차원이라고 방어벽을 세울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산업부 관계자는 "일본의 WTO 협정 위반은 수출허가 1건으로 무마할 간단한 사안이 아니다"라며 "WTO 제소 과정에 큰 영향을 미치지 않을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WTO 제소를 위한 첫 절차는 양자협의 요청이다.
한국이 제소장 역할을 하는 '양자협의 요청서(request for consultation)'를 상대국인 일본에 내면서 정식으로 제소 절차가 개시된다.
이르면 이달 중순께 양자협의 요청서를 보낼 수 있다는 전망이 나오고 있지만, 산업부는 "아직 정해지지 않았다"며 말을 아꼈다.
두번째 카드인 한국의 백색국가에서 일본을 제외하는 방안은 일단 조금 더 상황을 지켜본 뒤 꺼내 들 것으로 보인다.
한국은 지난 2일 일본이 각의에서 한국을 화이트리스트에서 제외하는 수출무역관리령 개정안을 가결하자 "우리도 일본을 백색국가에서 제외하겠다"고 천명했다.
한국의 백색국가는 전략물자수출입고시 상 '가' 지역에 해당하는 29개국이다. 바세나르체제(WA), 핵공급국그룹(NSG), 오스트레일리아그룹(AG), 미사일기술통제체제(MTCR) 등 4개 국제수출통제체제에 모두 가입한 국가가 대상이다.
북한(제3국 경유 재수출에 한함), 중국 등 나머지 나라는 '나' 지역에 속한다.
수출지역 구분은 최종목적지를 기준으로 하지만, 최종목적지가 '가' 지역이어도 '나' 지역을 경유하는 경우에는 '나' 지역으로 전략물자를 수출한다고 본다.
가 지역은 사용자포괄수출허가를 받아야 하지만, 나 지역은 개별수출 허가를 받아야 한다.
다만 허가 처리 기간은 일본의 90일 이내보다 훨씬 짧은 15일 이내, 유효기간은 일본의 6개월보다 긴 1년이다.
정부는 일본이 들어갈 새로운 전략물자 수출지역 분류로 '다' 지역을 신설할 방침이다.
일각에서는 다 지역에는 수출 처리 기간이나 유효기간을 일본 수준으로 강화된 규정을 적용할 수 있다는 예상이 나온다.
다 지역 신설 등을 위한 전략물자수출입 개정안은 지난 8일 국정현안점검조정회의에서 결정될 것으로 여겨졌으나 일단 연기됐다.
김상조 청와대 정책실장은 지난 9일 라디오 인터뷰에서 "정부가 잠시 검토를 위해 보류한 것"이라며 일부 중단 관측에 선을 그었다.
정부 관계자는 "전략물자수출입고시 개정은 예정대로 진행하되 여러 가지 상황을 보면서 구체적인 절차나 내용은 추후 다시 관계장관회의 등을 열고 다시 논의하기로 했다"고 말했다.
디지털전략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