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이 위험에 빠졌다"...아베의 무모한 도박

입력 2019-08-07 08:35
수정 2019-08-07 14:23


일본 정부가 반도체,디스플레이 3개 소재,부품에 이어 한국을 화이트리스트에서 제외했다.

그 배경과 목표를 둘러싼 해석이 분분한데, 정말 다양한 시각에서 일본 정부의 행보를 해석하고 있다.

'아베 정권' 입장에서 상황을 풀어보면 그동안 나온 분석은 180도 달라질 수 있다.

■ 아베의 운명을 건 도박



아베 신조 일본 총리는 제2차 세계대전 이후에 쌓아올린 일본의 경제력과 엔화를 담보로 엄청난 도박을 벌이고 있다.

2012년 집권한 아베 총리는 어느 덧 7년간 총리 자리를 지키며 일본 역사상 최장수 총리에 도전하고 있다. 그런데 그와 그의 지지세력은 별로 얻은 게 없다.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전후질서를 끝내고 '전쟁이 가능한 강한 일본을 만드는 것'이 그들의 목표다. 쉽게 말해 경제적 능력에 비해 크게 떨어졌던 일본의 정치,외교,군사력을 끌어올려 '아시아의 맹주'가 되겠다는 것이다.

하지만 '잃어버린 20년'으로 경제활력이 떨어지고 전후질서를 부인하려는 의도를 간파한 주요국과 주변국의 견제로 원하는 목표를 달성하지 못하고 있다.

■ 한국을 명분으로 정치적 목표 달성

7월 말 참의원 선거에서 헌법개정을 위한 의석수 확보에 실패한 '아베 정권'은 초조하기만 한 상황이다. 일본 유권자들이 자신들의 목표를 압도적으로 지지하지 않자 아베 총리는 한국을 먼저 이용하기로 한 것이다. 내부적 결속을 통해 정치적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외부의 적'을 만드는 것만큼 좋은 방법도 없으니까. 더구나 그 상대가 미묘한 국민감정이 얽힌 한국이라면 더 할 것도 없다.

아베 총리는 한국을 꺾으면서 여러가지를 얻을 지 모르겠다. 그러나 '공짜 점심'은 없기에 여기에는 댓가가 따르는데 그 담보는 바로 일본의 '경제와 엔화'입니다.

■ 아베가 제공한 담보는 '엔화 블록'



일본의 엔화는 미국 달러화, 유로존의 유로화와 함께 세계 3대 기축통화로 분류된다.

한국은행은 일본 엔화가 기축통화이면서도 글로벌 금융시장에서 '안전통화'로 분류되는 이유를 이렇게 분석한다.

(1) 일본 기업의 높은 경쟁력을 바탕으로 한 경상수지 흑자의 지속과 이를 바탕으로 한 세계 1위의 순대외채권국

(2) 일본 경제주체의 국내자산 선호에 따른 대외충격에 강한 국가채무구조

(3) 일본 경제의 낮은 불확실성 및 건전한 국가지배구조

이번에 일본이 한국을 '화이트리스트'에서 제외하고 추가적인 제재와 함께 금융자산을 회수할 수 있다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 물론 우리는 막대한 피해와 함께 상상하기 힘든 불확실성에 빠져들 위기에 처했다.

동시에 일본 스스로도 커다란 위험에 직면했다.

2017 회계연도 기준으로 일본은 우리 돈으로 약 3,240조원의 순대외채권을 보유하고 있다. 중국이 부상하기 직전까지 아시아는 일본의 '안마당'이었습니다. 아시아개발은행(ADB)의 본부는 필리핀 마닐라에 있지만 이를 운영,관리하는 곳은 사실상 일본이다. 한국을 비롯한 아시아 개발도상국은 거의 예외없이 일본의 투자와 자금대출을 받아왔다.

그런데 만약 한국에 대해 실물경제 제재와 함께 금융제재까지 더해지면 아시아 뿐만아니라 전 세계에서 일본의 돈을 빌려쓴 국가들은 불안을 느끼게 된다. '한국 정도의 경제력을 갖춘 나라도 '일본의 말을 듣지 않는다'고 공격당하면 그 누구도 안전하지 않다'는 인식이 확산되는 셈이다. 최근 일본이 아세안(ASEAN) 국가들을 다독거리는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다.

앞서 언급했듯이 일본은 막강한 제조업 경쟁력으로 쌓아올린 자본을 수출하는 세계 3위의 경제대국이다. 전후에 만들어진 이 모델이 흔들릴 수 밖에 없게 됐다. 한국은행이 분석한 (1),(3)이 동시에 신뢰를 잃을 수 있다.

■ 아베의 역설과 한국의 미래

아베 총리는 초조하기만 하다. '중국까지 급부상한 마당에 정치적으로 자신을 지지해 온 세력을 만족시키지 못한다면 최장수 총리가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 아시아의 맹주는 되찾을 수 있겠는가?'

결국 패전의 잿더미에서 쌓아 올린 일본의 경제력과 이를 바탕으로 만들어진 '엔화 블럭'을 걸고라도 도박에 나선 것이다. 한국을 응징함으로써 정치적으로는 승리를 얻을 지 모르겠지만, 경제적으로는 그 신뢰가 뿌리채 흔들릴 수 있다는 점에서 이번 사태로 일본경제는 대다수 일본인들이 눈치채지 못한 채 커다란 위험에 처하게 됐다.

일본 경제가 위험에 처했다는 점을 마냥 반길 수도 없는 것이 한국의 딜레마이다. 아베의 도박이 성공한다면 그것은 곧 한국이 경제적으로 큰 어려움에 이미 직면했다는 뜻이고, 그로 인해 발생할 일본의 경제적 위험이 다시 우리 경제에 '2차 공습'을 가할 수 있기 때문이다. 더불어 전쟁이 가능한 또 다른 초강대국을 이웃나라로 두면서 안보적인 측면에서도 감당하기 힘든 불확실성에 직면하게 된다.

경제를 포함한 우리의 생존 자체가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가장 큰 체계적인 위험(미중 무역갈등 등)에 노출된 가운데 한국만 처한 비체계적 위험(한일 갈등 등)까지 더해지고 있다.

우리 정부는 바로 이 점을 전 세계에 알리고, 일본 정부와 국민들에게도 그 위험성을 전달해야만 한다. 외교와 경제라인을 총동원해서라도 일본이 너무나 큰 도박을 하고 있다고 호소해야만 한다. 그것만이 주요국을 비롯한 세계의 여론을 움직이는 길이며, 아베가 도박을 멈추게 하는 지름길이 될 것이다.

정말 이웃나라 일본이 위험에 빠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