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준금리를 0.25%포인트 내린 연 1.5%로 결정했습니다"
지난 18일 기준금리 인하 발표와 함께 한국은행 기자실에는 탄식이 흘렀다. 설마했지만 예상보다 빨랐다. 7월로 금리 인하가 앞당겨지면서 연내 또 내릴 수 있다는 인식이 퍼졌다. 채권금리는 2016년 6월, 사상 최저 연 1.25%로 기준금리를 내렸던 그 때로 빠르게 돌아갔다.
◆ 없다가도 있는 '정책여력'
정책여력이란 금리를 움직일 수 있는 여지를 말한다. 이주열 총재는 지난 6월 25일 간담회에서 정책여력이 많지 않다고 했다. 쉽게 금리를 내릴 수 없다는 말이었다.
*이주열 한국은행 총재 - 6월 25일 기자간담회
"1.75%가 여유가 많다고 볼 수 없는 것이죠. 기축통화국이 아니기 때문에 종합적으로 감안하면 정책 여력이 그렇게 많다고 할 순 없죠…현재 기준금리를 볼 때 통화정책 여력이 없는건 아니지만 여력이 많다 이렇게 얘기할 순 없습니다."
이날 시장은 일순간 얼어붙었다. 채권금리는 급등했고 금리 인하 신중론이 퍼졌다. 하지만 한달도 채 되지 않은 7월 18일 금리를 내렸고 이번에는 정책여력이 남아있다고 했다.
*이주열 한국은행 총재 - 7월 18일 기자간담회
"이 한 번의 금리인하로 기준금리가 당장 실효하한에 근접하게 된 것은 아니기 때문에 현재 한국은행이 어느 정도의 정책여력은 갖고 있다고 볼 수 있습니다…줄어들기는 했지만 경제상황에 따라서 대응할 수 있는 여력을 갖고 있다 이 말씀을 반복해서 드립니다."
예상보다 빠른 금리 인하에다 또 내릴 수도 있다는 말로 해석되면서 연내 추가 금리 인하가 가능하다는 인식을 만들었다. ‘많지는 않지만 있긴 있다’ 비슷한 말이지만 금리를 내리기 전과 후 상황에 따라 다르게 해석될 수 있는 여지를 남겼다. 한 채권시장 관계자는 “이 총재가 말을 바꿨다”고 평가했다.
◆ 때 놓친 금리인상 '부메랑으로'
지금의 정책여력 논란은 한국은행이 자초한 측면이 크다. 지난해 한국은행 안팎에서는 금리 인상 실기(失期)론이 불거졌다. 금리 인상 때를 놓쳤다는 것이다.
작년 초 이주열 총재의 연임이 결정되면서 5월 조기 금리 인상 가능성이 부상했지만 7월과 8월도 넘겨 마지막 금통위였던 11월에서야 금리를 올렸다. 미국이 2017년 이후 7번(2017년 3번, 2018년 4번) 금리를 올리는 동안 한국은행은 2번(2017년 1번, 2018년 1번) 올리는데 그쳤다. 한국은행 관계자는 “올릴 수 있을 때 올리지 못한 것이 부메랑으로 돌아왔다”고 말했다.
금리 인하는 환영받는데 반해 금리 인상은 그렇지 않다. 금리 인상은 용기가 필요하다. 결과론이긴 해도 작년은 금리 인상의 적기였다. 가계부채 폭증이 지속되고 있었고 미국과의 금리 역전 역시 작년 3월부터 시작됐다. 미·중 무역갈등 등 경기 둔화 우려가 있긴 했지만 가계부채와 미국의 금리 인상은 좋은 핑곗거리였다. 금리 인상에 미적거리는 사이 부동산 가격이 폭등하면서 한국은행을 향한 비난이 쏟아졌다. 한-미 기준금리 역전폭도 다시 1%포인트까지 벌어졌다.
◆ 위기지만 쓸 카드가 없다
2008년 금융위기 직전 5.25%였던 기준금리는 불과 반년 만에 2%로 내려왔다. 인하폭도 컸지만 연속적인 인하로 위기에 대응했다. 미·중 무역갈등과 일본 수출 규제까지 더해지면서 한국은행은 올해 성장률 전망치를 2.5%에서 2.2%로 내렸다. 경기 둔화 우려는 커졌지만 통화정책은 한계에 다다랐다.
채권시장 전문가는 “역대 최저 기준금리가 1.25%였던 것을 고려하면 한국은행도 추가 인하에 신중해질 수 밖에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금리를 올려놓은 것이 없으니 내릴 것도 없다. 위기지만 쓸 카드가 많지 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