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 美 경고에도 ‘디지털세’ 도입…다시 주목받는 구글세 [국제경제읽기 한상춘]

입력 2019-07-15 09:48


프랑스가 디지털세를 부과키로 결정했다. 디지털세란 애플, 구글, 아마존 등 모든 디지털 기업에 대해 법인세와 별도로 3%의 세금율 부과하는 것을 말한다. 가장 민감하게 반응하는 국가는 미국이다. 도널드 트럼프 정부는 디지털세를 부과한 프랑스에 대해 중국에 이어 보복관세를 부과하는 문제를 저울질하고 있다.

디지털세의 원천은 구글세다. 4년 전 페루 리마에서 열렸던 주요 20개국(G20) 재무장관 회의에서 구글세 도입의 근거인 ‘국가 간 세원잠식 및 소득이전(BEPS)’에 관한 대응방안이 마련됐다. 구글세 도입은 국제조세제도 역사상 획기적인 일로 각국 조세행정과 재정수지, 산업에 커다란 영향을 미칠 것으로 예상돼 왔다.

구글세는 두 가지 개념으로 구분된다. 하나는 협의의 개념으로 종이 신문 등이 제공한 뉴스 콘텐츠를 활용해 트래킹을 일으킨 포털사이트가 광고 수익을 생길 때 세금형태로 징수하는 저작료 혹은 사용료를 말한다. 대표적인 포털사이트가 구글이기 때문에 불여진 명칭으로 스페인, 한국 등 지금까지 부과된 구글세는 대부분 이 개념에 속한다.



다른 하나는 구글, 애플, 아마존 등과 같은 다국적 정보기술(IT)이 고세율 국가에서 얻은 지적재산권 사용료나 이자 등의 명목으로 저세율 국가의 자회사로 넘겨 조세회피하는 것을 막겠다는 취지에서 부과되는 세금을 말한다. 핵심은 이전가격을 활용한 다국적 IT 기업의 조세회피를 원천봉쇄하는데 있다. BEPS의 대상이 되는 구글세가 이러한 개념이다.

다국적 IT 기업은 국가 간 법인세율 차이를 악용해 세금을 회피해 왔다. 고세율 국가에 있는 해외법인이 거둔 이익을 지적재산권 사용료 등의 명목으로 저세율 국가의 자회사로 넘겨 비용을 공제받는 방식이 주로 활용된다. 하지만 앞으로는 지급 사용료나 수수료의 적정성을 따져 비용공제를 인정해 주지 않기로 합의했다.

간단한 예로 다국적 IT 기업의 상징격인 구글이 세금을 피해가는 과정을 단계별로 살펴보자. 첫 사전준비 단계로 세금이 없는 조세회피지역에 사무실을 차리고, 그곳에서 구글의 자회사인 ‘구글 룩셈부르크’를 설립한다. 구글 룩셈부르크는 전 세계 구글이 벌어들이는 소득이 모이게 될 장소다.

그 다음 소득이전 단계로 구글 본사는 룩셈부르크에 미국을 제외한 해외법인의 지적재산권 등 모든 소득원천을 넘긴다. 확보된 지적재산권 등을 활용해 룩셈부르크는 전 세계 구글 서비스를 제공하는 모든 해외법인으로부터 거액의 로열티를 받는다. 구글 본사 소재국인 미국은 ‘세원잠식(Base Erosion)’을 당하는 대신 자회사가 있는 룩셈부르크는 ’소득이전(Profit Shifting)‘이 발생한다.

최종 조세회피 단계에서는 받은 로열티에 대해 법인세를 내는 게 원칙이지만, 구글 룩셈부르크는 조세회피지역에서 모든 업무를 총괄하므로 비거주자(외국인)로 간주돼 이 국가의 세법을 적용받는다. 대부분의 조세회피지역은 법인세율이 아주 낮거나 아예 부과하지 않기에 세금을 적게 내거나 한 푼도 안낼 수 있다. 구글의 본사가 로열티를 받았다면 미국의 세법의 적용을 받아 법인세율 35%가 부과된다.

세계 3대 조세회피지역은 캐이먼군도, 말레이시아 북동부, 아일랜드가 꼽힌다. 다국적 기업들은 최근 자본통제가 심한 말레이시아 북동부를 떠나 싱가포르와 홍콩 마카오로, 재정위기를 겪은 아일랜드에서 룩셈부르크와 네덜란드로 이전하고 있다. 조세회피지역에 속한 국가는 구글 등과 같은 다국적 기업을 유치해 고용과 소득창출, 기술이전 등을 겨냥해 세금혜택을 부여한다.

이자비용 공제 제도도 대폭 강화된다. 해외법인의 자본을 최소화하고 대출이자로 얻은 수익을 빼먹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이자비용을 상각 전 영업이익(EBITA·기업의 현금창출능력)의 10∼30% 이내로 제한키로 했다. 조세회피지역의 자회사나 페이퍼컴퍼니를 세워 우회투자를 통한 조세회피나 절세수단도 차단할 전망이다. 국가 간 조세협약의 허점을 악용해 이자 배당세나 주식 양도세를 최소화하려는 우회투자 관행에 제동을 걸어 ‘제2의 론스타’ 사례를 예방하겠다는 것이 주목적이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는 1990년대부터 조세회피지역에 대한 세금부과방안을 고심해 왔다. 2000년대 들어 다국적 IT 기업을 중심으로 이 지역을 통한 조세회피가 급증함에 따라 주요 20개국(G20)과 공동으로 프로젝트를 수행해 올해 10월 5일 ‘BEPS 대응 관련 최종보고서’를 발표하게 됐다.

상당한 난항이 예상됐던 구글세 도입방안이 빠르게 진전되는 데에는 다국적 기업들의 조세회피 규모가 상상을 추월할 정도로 불어나고 있기 때문이다. OECD는 BEPS로 인한 법인세 수입 감소액이 매년 전 세계 법인세 수입액의 4∼10%에 달하는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작년 기준으로 1,000억∼2,400억달러(원화로 환산하면 116조 5,000억∼279조7,000억 원)에 달하는 엄청난 규모다.

더 우려되는 것은 빠른 시일 안에 적절한 대책이 마련되지 않을 경우 해가 갈수록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날 것이라는 점이다. 내년에는 BEPS로 인한 법인세 수입 감소액이 5,000억 달러를 넘길 것으로 예상된다. 현재 IT 업종을 중심으로 이뤄지는 조세회피기업도 다른 업종으로 확산될 가능성도 크다.

앞으로 각국이 구글세를 본격적으로 도입하면 재정수지 개선에 크게 기여할 것으로 기대된다. 금융위기 이후 경기침체에 다른 세수감소와 경기부양 차원의 대규모 재정지출로 대부분 국가가 막대한 재정적자와 국가채무에 시달리고 있기 때문이다. 일본의 국가채무는 국내총생산(GDP)대비 250%에 달할 정도다.

본격적인 인터넷 시대를 맞은 1990년대 이후 지속적으로 악화돼 왔던 IT와 제조업 간 불균형을 해소하는 데도 효과가 있을 것으로 예상된다. IT업종은 ‘수확체증의 법칙’, 제조업은 ‘수확체감의 법칙’이 적용된다. IT기업에 대해 구글세가 부과되지 않으면 일종의 특혜로 두 업종의 속성 상 불균형은 심해질 수밖에 없다.

수확체증의 법칙이란 IT업종은 네트워크만 깔면 깔수록 생산성 등과 같은 총공급 능력이 확대돼 추가 성장이 가능하다. 이 때문에 ‘고용 창출 없는 성장’과 물가상승을 유발하지 않는 ‘디스인플레이션’과 같은 뉴 노멀 현상이 발생한다. 반면 수확체감의 법칙이란 자원의 희소성 법칙이 적용되는 제조업은 생산하면 할수록 생산성이 떨어지기 때문에 추가 성장을 위해서는 노동 등 생산요소를 늘려야 한다. 제조업의 고용창출계수가 IT보다 높은 것도 이 때문이다.

디지털세는 날로 심각해지는 청년 실업과 이에 따른 신(新)러다이트(IT 파괴) 운동 등 기형적인 IT 급성장에 따른 사회병리현상을 줄이는 데에도 기여할 가능성이 높다. 금융위기 이후 각국이 추진해온 제조업 부활정책(미국의 제조업 ‘리쇼오링’과 ‘리프레쉬’)을 구글세 도입 논의와 동일한 맥락에서 바라보는 것도 이 때문이다. IT 업종의 확산과 투명성으로 인해 감소될 것으로 예상됐던 뇌물 공여가 오히려 증가하는 이른바 ‘부패의 수수께끼’도 풀릴 것으로 기대된다.

세수 부족, 조세회피지역 확대, 부패, 실업 등의 문제에 시달리는 프랑스가 디지털 과세 도입을 승인함에 따라 앞으로 전개될 미국과의 무역 마찰과 다른 국가의 동참 여부에 세계의 이목이 집중될 전망이다.

한상춘 / 한국경제TV 해설위원 겸 한국경제신문사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