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전에 반전을 거듭해온 북미 간 비핵화 대화가 30일 북미 정상 간 '판문점 번개 상봉'이라는 전대미문의 '역사적 이벤트'로까지 이어졌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한국에 도착하기 몇 시간 전인 29일 오전 주요 20개국(G20) 정상회의가 열리는 일본에서 깜짝 제안을 하고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화답하면서 1953년 정전협정 이후 66년 만에 분단의 상징 판문점에서 북미 정상이 마주 서서 '역사적 악수'를 하는 파격 이벤트가 현실화됐다.
의전과 보안 등의 현실적 벽을 허물며 단 하루라는 짧은 시간 동안 극적 드라마를 방불케 하는 상황이 가능했던 데는 트럼프 대통령과 김 위원장이라는 두 정상의 '캐릭터'와 '케미'(궁합)가 결정적 역할을 했다는 평가가 나온다.
두 정상의 파격은 '하노이 노딜' 이후 꽉 막혀 있던 북미 협상의 새로운 문을 여는 중대 전기를 마련하게 됐다.
즉흥적이고 예측불허의 승부사인 두 정상의 '톱다운 케미'가 없었다면 '리얼리티 TV쇼'를 방불케 하는 파격과 반전의 순간들 자체가 가능하지 못했을 것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트럼프 대통령도 이날 "저희 양자(자신과 김 위원장) 간에는 어떤 좋은 케미스트리(궁합)가 있지 않나, 그래서 이렇게 (판문점 상봉이) 성사되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 든다"고 밝혔다.
실제로 지난해 이후 비핵화 대화 과정에서 고비마다 막힌 부분을 뚫으며 돌파구를 마련한 건 북미 정상의 '톱다운 외교'였다.
지난해 6·12 1차 북미 정상회담이 무산 위기에 처했을 때 벼랑 끝에서 이를 다시 살린 것도 미국 땅을 밟은 김영철 북한 노동당 부위원장 편에 들려온 김 위원장의 친서였다.
김 위원장은 지난 1월 2차 방미길에 오른 김 부위원장을 통해서도 트럼프 대통령에게 친서를 전달했고, 이는 2월 말 2차 하노이 정상회담으로 이어졌다.
'하노이 노딜'로 정상간 담판에만 의존한 톱다운 방식의 한계가 노출되면서 '바텀업'(실무자간 논의를 거쳐 정상이 최종 합의하는 방식) 방식으로 돌아가야 한다는 지적도 미 조야에서 적지 않게 제기됐지만 이번에 다시 '톱다운 소통'이 작동했다.
북미 간 살얼음판 속에서도 두 정상이 이어온 신뢰의 끈이 가시적 모멘텀을 마련한 것은 '싱가포르 1주년'을 앞두고 이달 들어 양측간에 주고받은 친서 외교이다.
김 위원장은 지난 14일 만 73번째 생일을 맞은 트럼프 대통령의 생일축하를 겸한 친서를 보냈고, 트럼프 대통령도 이에 답신으로 화답했다. 문재인 대통령이 언급한 김 위원장 친서의 '아주 흥미로운 대목'과 북측이 소개한 트럼프 대통령 답신의 '흥미로운 내용'에 대한 관심이 증폭된 가운데 3차 북미 정상회담 성사의 기대감도 본격적으로 고개를 들기 시작했다.
거래의 달인을 자처해온 트럼프 대통령은 일본 오사카에서 열린 주요 20개국(G20) 정상회의 일정을 마치고 다음 방문지인 한국을 향하는 당일인 29일 김 위원장에게 'DMZ 번개 회동'을 전격 제안하며 또 한 번 '상상력의 경계'를 허무는 파격적 승부수를 던졌다. 이번에도 그 발신 통로는 트럼프 대통령이 즐겨 찾는 트윗이었다.
이에 김 위원장이 전격 화답하면서 북미 정상의 판문점 상봉이 현실화됐다.
북미 정상이 '분단과 대결'의 상징이었던 판문점에서 손을 맞잡게 된 것은 그야말로 역사적 사건이 아닐 수 없다.
특히 조기 3차 북미 정상회담 개최로 가는 길을 닦으면서 이를 위한 실무협상 재개의 동력을 되살릴 것이라는 관측이 나온다. 트럼프 대통령도 이날 기자회견에서 "오늘 걸음이 옳은 방향으로 나아가길 바란다. 느낌이 좋다"고 기대감을 표했다.
그러면서 "추가정상회담이 열리는 것도 오늘 만남을 통해 구체적으로 알 수 있을 것"이라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