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년 용산참사 당시 망루 농성에 참여했다가 징역형을 선고받았던 40대 남성이 서울 도봉산 자락에서 숨진 채 발견됐다.
24일 서울 도봉경찰서에 따르면 전날 오전 9시30분께 도봉구 도봉산 천축사 부근 숲에서 김모(49)씨가 숨진 채 발견됐다.
경찰은 김씨가 스스로 목숨을 끊은 것으로 보고 정확한 사망 경위를 조사하고 있다. 현장에서 유서는 발견되지 않았다.
용산참사 진상규명위원회에 따르면 김씨는 22일 저녁 가족에게 전화를 걸어 "내가 잘못되어도 자책하지 말라"는 말을 남겼다.
과거 용산4구역에서 식당을 운영했던 김씨는 2009년 1월 재개발을 위한 강제철거를 앞두고 남일당 건물 망루 농성에 참여했다가 특수공무집행방해치사 혐의로 4년형을 선고받았다. 이후 3년 9개월간 복역하다 가석방으로 출소한 뒤로는 배달 일을 하며 홀로 나이 든 어머니를 모시고 살던 것으로 전해졌다.
진상규명위는 "김씨는 2012년 가석방 이후 잠을 잘 자지 못했고, 간혹 우울증 등 트라우마 증세를 보였다. 높은 건물로 배달 일을 갈 때는 뛰어내리고 싶은 충동을 느끼며 괴로워했다"며 "최근 몇 개월 전부터 증세가 나빠져 병원 치료를 받으며 우울증약을 복용했다고 한다"고 전했다.
고인의 가족들은 "용산참사 출소 후 사람이 달라졌고, 속내를 이야기하지 않고 혼자 많이 힘들어 했다"고 말했다고 진상규명위는 전했다.
진상규명위는 "그의 죽음은 스스로 선택한 것이 아니다"라며 "10년이 지나도록 누구 하나 책임지지 않고 철거민들만 죽음의 책임을 온전히 뒤집어쓴 채 살아가도록 떠민 경찰, 검찰, 건설자본과 국가가 그를 죽였다"고 성토했다.
이어 "경찰과 검찰의 과거사 조사에서도 과잉 진압과 편파수사 일부가 드러났지만, '법적 책임을 물을 수 없다', '공소시효가 지났다'는 편파적 법이 그를 죽였다"고 했다.
그러면서 "정부는 검·경 조사위 권고를 이행해 피해자들에게 제대로 사과하고 재발 방지책을 마련해야 한다"며 "국가 차원의 독립된 진상조사 기구를 통해 부족한 진상규명을 추가로 하라"고 촉구했다.
김씨의 빈소는 도봉구 쌍문동의 한 병원에 마련됐다.
용산참사는 2009년 1월 19일 철거민 32명이 재개발 사업 관련 이주대책을 요구하며 서울 용산구 한강로2가 남일당 빌딩 옥상에 망루를 세우고 농성하던 중 경찰 강제진압 과정에서 화재가 발생해 경찰관 1명과 철거민 5명이 숨진 사건이다.
지난달 31일 법무부 산하 검찰 과거사위원회는 용산참사 당시 경찰의 과잉 진압에 대한 검찰 수사가 소극적·편파적이었다는 조사 결과를 발표했다.
그러면서 과거사위는 유족들에게 사전통지 없이 진행된 긴급부검과 수사기록 열람·등사 거부 등에 대해 검찰이 공식적으로 사과할 것을 권고했다.
이와 함께 수사기록 열람·등사에 관한 교육 및 제도 개선, 긴급부검 지휘에 대한 검찰 내부의 구체적 판단 지침 마련, 검사의 구두 지휘에 대한 서면 기록 의무화 등도 권고됐다.
지난해 9월 경찰청 인권침해사건 진상조사위도 당시 경찰 지휘부가 화재 등 위험 발생 가능성을 예상하고도 무리한 작전을 강행해 인명피해가 발생했다는 조사 결과를 내놓았다.
진상조사 결과 당시 경찰은 사이버 수사요원 900명을 동원해 용산참사와 관련한 인터넷 여론을 분석하고, 경찰 비판 글에 반박 글을 올리는가 하면 각종 여론조사에도 적극 참여하도록 지시한 것으로 확인됐다.
조사위는 잘못된 지휘로 순직하거나 다친 경찰특공대원과 사망·부상한 철거민 및 가족에게 사과하고, 경찰이 조직적으로 온·오프라인 여론을 조성하는 활동을 금지하라고 경찰청에 권고했다.
아울러 철거지역 분쟁상황에서 용역 폭력에 대한 예방과 제지 지침 마련, 유족에게 부검 관련 내용을 전달하기 위한 '변사사건 처리규칙' 개정, 민생 관련 현장에서 피해를 입은 경찰관에 대한 치료·회복조치 등도 요구했다.
※ 우울감 등 말하기 어려운 고민이 있거나 주변에 이런 어려움을 겪는 가족·지인이 있을 경우 자살 예방 핫라인 ☎1577-0199, 희망의 전화 ☎129, 생명의 전화 ☎1588-9191, 청소년 전화 ☎1388 등에서 24시간 전문가의 상담을 받을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