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콩 '검은 대행진'…행정장관 사퇴 요구 "200만 모여"

입력 2019-06-17 08:43
수십만명 이상의 홍콩 시민들이 16일 '범죄인 인도 법안'(일명 송환법)의 완전 철폐를 요구하며 다시 대규모 집회에 나섰다.

집회를 주도한 재야단체 연합인 민간인권전선은 시위에 참여한 인원이 거의 200만 명에 달한다고 밝혔다.

이는 지난 9일 집회 참여 인원 103만 명(주최 측 추산)의 두 배에 달하는 규모이다.

경찰은 집회 참여 인원이 33만8천 명이라고 밝혔지만, 한 경찰 관계자는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SCMP)에 "이는 당초 행진 경로의 인원만을 헤아린 것으로, 다른 경로로 행진한 시위대를 생각하면 이보다 많다"고 털어놓았다.

주최 측 추산을 따른다면 이는 홍콩에서 벌어진 역대 최대 규모의 시위로, 홍콩인 10명 중 거의 3명이 거리로 나왔다는 얘기다.

지금껏 홍콩에서 벌어진 시위 중 최대 시위는 1989년 중국 본토의 톈안먼(天安門) 민주화 시위를 지지하기 위해 1989년 5월 22일 홍콩에서 벌어진 시위로, 당시 150만 명이 참여한 것으로 추산됐다.



홍콩 시위대

홍콩 정부가 송환법 추진을 '잠정 중단'한다고 발표했지만 이날 시위에 나선 이들은 송환법을 완전히 철폐해야 한다면서 '검은 대행진'을 벌였다.

이날 오후 2시 30분(현지시간)부터 홍콩 빅토리아공원에서는 수십만 명의 홍콩 시민들이 참석한 가운데 송환법 철폐 요구 집회가 열렸다.

간이 지날수록 엄청난 규모로 불어난 집회 참가자들은 빅토리아공원을 출발해 정부 청사가 있는 애드미럴티까지 4㎞ 구간을 행진했다.

검은 옷을 입은 시위대가 수 킬로미터(km) 거리의 도로를 가득 메워 홍콩 도심이 '검은 바다'로 변했다고 홍콩 사우스차이나모닝포트스(SCMP)는 묘사했다.

행진 선두가 애드미럴티의 정부 청사 앞에 도착했을 때도 끝에 선 시위대는 빅토리아공원을 출발하지도 못할 정도로 시위대 규모가 컸다.

1주일 전 시위 때 참가자들은 흰옷을 입었지만, 이날 참가자들은 주최 측의 안내에 따라 검은 옷을 주로 입고 나왔다. 집회 참석자들은 홍콩인들의 저항의 상징물인 '우산'을 펼쳐 들기도 했다.

이날 시위에는 어린이에서부터 노년층까지 남녀노소를 가리지 않은 다양한 홍콩 시민들이 참여했다.

홍콩 빈과일보는 자체 빅데이터 분석 시스템을 통해 사회관계망 서비스의 주요 검색어 사용 빈도를 분석해본 결과 이날 시위 참가 인원이 최소 89만2천명에서 최대 144만2천명에 달하는 것으로 분석됐다고 보도했다.

이날 집회는 캐리 람 홍콩 행정장관이 전날 전격 기자회견을 통해 송환법 추진을 보류한다고 발표한 직후 열리는 것이다.

캐리 람 행정장관은 "법안 심의는 보류될 것이며, 대중의 의견을 듣는 데 있어 시간표를 제시하지는 않을 것"이라고 밝혀 홍콩 정부가 단기간 내에 범죄인 인도 법안을 재추진하지는 않을 것을 시사했다.

홍콩에서는 송환법이 시민들의 거센 저항에 부딪혀 추진 동력을 상실하면서 자연스럽게 폐기될 가능성이 크다는 관측도 나온다.

하지만 이날 다시 홍콩 도심에 다시 모여든 시민들은 홍콩 정부가 언제든 다시 송환법 통과에 나설 수 있다면서 공식적으로 송환법을 폐기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집회 참석자들은 '악법 폐지', '학생과 시민들을 사살하지 말라', '우리를 죽이지 말라' 등 내용이 적힌 영어·중국어 팻말과 플래카드를 손에 들었다.

또 시위대는 캐리 람 행정장관이 물러나야 한다고 외쳤다.

집회에 참석한 은행원 존 차우는 AP통신에 "우리의 요구는 매우 간단하다. 캐리 람이 사무실을 반드시 떠나고 송환법이 철회되고 경찰이 우리 시민들에게 극단적인 폭력을 사용한 것을 사과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이날 시위가 늦은 밤까지 이어진 가운데 캐리 람 행정장관은 오후 8시 30분(현지시간) 낸 성명에서 "정부 업무에 부족함이 있었음을 인정한다"며 "홍콩 사회에 커다란 모순과 분쟁이 나타나게 하고, 많은 시민을 실망시키고 가슴 아프게 한 점에 대해서 사과한다"고 밝혔다.

송환법 반대 운동이 시작되고 나서 캐리 람 행정장관이 이처럼 시민들에게 직접 사과 메시지를 전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그러나 그는 시위대가 요구한 송환법 철회와 자신의 사퇴 요구는 수용하지 않았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