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서부 파미르 산맥의 2천500년 전 무덤에서 나온 향로에서 대마의 향정신성 화학물질 잔여물이 검출됐다.
대마는 BC 4천년 무렵부터 씨앗으로 기름을 짜고 섬유로 밧줄을 만들기 위해 재배됐지만, 지금처럼 이를 향정신성 물질로 사용한 기록은 불분명했다.
이번 발굴 결과는 대마를 환각성 물질로 이용한 고고학적 증거로는 가장 오래된 것으로 여겨지고 있다.
중국과학원과 외신 등에 따르면 중국과학원대학의 양이민(楊益民) 교수가 이끄는 국제 연구팀은 해발 3천여m 파미르 고원에 있는 지르잔칼 무덤에서 발굴된 장례용 향로에 관한 연구결과를 과학저널 '사이언스 어드밴시스(Science Advances)'에 발표했다.
연구팀은 총 8개의 무덤에서 10개의 목제 향로를 발굴했다. 이 향로 안에는 불에 그을린 흔적이 있는 돌이 담겨 있었으며, 기체 크로마토그래피-질량 분광 분석법을 통해 대마의 향정신성 물질 주성분인 '테트라하이드로칸나비놀(THC·tetrahydrocannabinol)'이 남아있는 것을 확인했다.
THC는 지금처럼 강하지는 않지만 일반 야생 대마 품종보다는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이는 당시 사람들이 이미 환각 효과가 강한 대마 품종을 알고 활용했다는 것을 나타내는 것이다.
연구팀은 고대인들이 장례 의식을 치르면서 향로에 대마초를 피워놓고 환각 상태에서 죽은 사람이나 신과의 대화를 시도했을 것으로 추정했다.
이번 연구결과는 고대 그리스 역사가 헤로도토스가 BC 440년께 카스피해 지역에 사는 사람들이 천막 안에서 뜨거운 돌이 담긴 그릇에서 풀을 태워 연기를 흡입했다고 쓴 기록과도 맞아떨어진다.
연구팀은 지르잔칼이 고대 실크로드 인근에 있는 점으로 볼 때 대마를 향정신성 물질로 이용하는 관행이 무역교역을 통해 확산했을 것으로 분석했다.
이번 연구에 참여한 독일 막스 플랑크 인류역사 과학 연구소 고고학부문 책임자인 니콜 보이빈 박사는 "이번 연구결과는 대마의 향정신성 물질 이용이 중앙아시아 동부 산악지역에서 처음 시작된 뒤 세계 다른 지역으로 확산했을 것이라는 가설을 뒷받침하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양 교수는 "생물지표(biomarker) 분석은 고대인들이 식물을 어떻게 이용하고 문화적 소통을 했는지 자세히 들여다볼 수 있는, 다른 고고학적 방법으로는 할 수 없는 특별한 창을 열어줬다"고 했다.
한편 지르잔칼의 무덤에서는 구멍이 뚫린 두개골과 잘리거나 부러진 흔적이 있는 뼈가 함께 출토돼 확실치는 않지만, 사람을 제물로 바치는 인신공양이 이뤄졌을 수도 있는 것으로 연구팀은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