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을 국빈방문 중인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엘리자베스 2세 영국 여왕의 몸에 손을 대 왕실 예법을 어겼다는 지적이 제기됐다.
4일(현지시간) 일간 더타임스에 따르면 전날 저녁 런던 버킹엄궁에서 열린 국빈만찬에서 트럼프 대통령은 엘리자베스 2세 여왕의 뒤를 이어 연설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엘리자베스 2세 여왕이 왕위를 이어받기 전 2차 세계대전 기간에 영국 여성 국방군에 들어가 군용 트럭 운전사로 복무했던 것을 상기시키며 "위대한, 위대한 여성"이라고 추켜세웠다.
트럼프 대통령은 "우리의 승리와 그 유산을 기념하면서 우리는 먼 미래로까지 우리를 하나로 만들어 줄 공통의 가치, 즉 자유와 주권, 자결, 법치주의, 권리를 확인한다"며 양국의 "영원한 우정"을 위해 건배를 제의했다.
연설 말미에 건배를 위해 엘리자베스 2세 여왕이 자리에서 일어서자 트럼프 대통령은 왼쪽 팔로 여왕의 등을 살짝 감싸는듯한 동작을 취했다.
더타임스는 통상 이러한 동작은 지지와 애정, 존경을 보여주는 것이지만 트럼프 비판론자들은 왕실예법을 어긴 트럼프를 비난할 수도 있다고 지적했다.
여왕 등 영국 로열패밀리와 만날 때는 악수 외 다른 물리적 접촉이 금지된다는 것이 하나의 불문 예법으로 자리 잡고 있다.
다만 트럼프 대통령의 손이 실제 여왕의 등에 닿았는지는 확실하지 않다고 신문은 전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해 7월 영국 실무방문 당시에도 엘리자베스 2세 여왕과 왕실 의장대를 사열할 때 여왕보다 조금 앞서 걷기 시작해 논란을 불렀다.
영국에서 여왕에 앞서 걷는 것은 왕실 예법에 어긋나는 행위로 간주된다. 여왕의 남편인 필립 공도 공식행사에서 여왕의 두 걸음 뒤를 따른다.
엘리자베스 2세 여왕의 몸에 손을 댔다가 구설에 오른 것은 트럼프 대통령만이 아니다.
트럼프 대통령의 전임자인 버락 오바마 전 미국 대통령의 부인 미셸 오바마 여사도 지난 2009년 버킹엄궁을 찾아 여왕의 어깨에 손을 얹고 한쪽 팔로 껴안았다가 예법을 어겼다는 비판을 받았다.
당시 여왕은 전혀 언짢아하지 않은 채 오른팔로 미셸의 허리를 가볍게 감싸 어색한 분위기를 깼고, 버킹엄궁도 "두 분이 상호 간 친밀함과 존중을 표시한 것"이라며 논란을 일축했다.
지난 2017년 데이비드 존스턴 캐나다 총독은 런던 트래펄가 광장에 있는 캐나다 하우스를 찾은 여왕이 계단을 내려오는 것을 돕던 중 우연히 여왕의 팔꿈치를 잡았다.
당시에도 무례한 행동은 아니었지만 왕실예법을 어겼다는 지적이 제기되자 존스턴 총독은 사과했다.
지난 1992년 여왕이 호주 의회를 방문했을 당시에는 폴 키팅 호주 총리가 여왕을 안내하며 등에 손을 대는 실수를 하면서 비난을 받은 바 있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날 국빈만찬에 앞서 엘리자베스 2세 여왕이 '로열 갤러리'에서 미국과 관련된 수집품 등을 소개하는 자리에서도 곤란한 상황을 연출했다.
지난해 7월 영국을 실무방문했을 당시 트럼프 대통령은 여왕에게 합금 말 조각상을 선물했다.
여왕이 이 조각상을 보여주면서 이것이 무엇인지 알고 있느냐고 묻자 트럼프 대통령은 "아니오"(no)라고 답했다.
곁에 있던 부인 멜라니아 여사가 곧바로 "지난해 여왕에게 드린 것이네요"라고 말하면서 트럼프 대통령은 위기를 벗어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