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 8년 걸린 '파생상품시장' 사후약방문

입력 2019-05-30 17:59
수정 2019-05-31 09:53


"2011년 이전 수준 규제라고 보면 됩니다"

"(국내 파생상품 시장이) 외국인 (투자자)가 주도하는 시장이 된 것에 대해서는 반성합니다. 균형 있게 성장할 수 있도록 하자는 차원입니다."

금융위원회 관계자의 말입니다.

8년 전 지난 2011년 금융당국은 파생시장에 만연한 투기를 잡겠다며 안정화 조치를 내놓습니다.

코스피 200옵션 거래 승수를 10만원에서 50만원으로, 개인 투자자 현금 예탁 비율을 상향 조정하는 등 규제를 강화한 게 주요 골자입니다.

세계 1위였던 파생상품 시장은 곧바로 직격탄을 맞습니다.

국제파생상품협회(FIA) 집계 순위로 보면 한국거래소 파생상품 시장은 2012년 5위, 2013년 12위로 말 그대로 추락합니다.

개인 투자자 일 평균 거래대금은 2011년 17조원에서 지난해 6조1천억원으로 3분의 1 토막으로 줄었고 기관 투자가들의 거래대금도 반 토막 났습니다.

거래 비중은 개인 투자자는 25.6%에서 13.5%로, 기관 투자가는 48.7%에서 36.1%로 급감했습니다.

이런 중에 외국인 투자자의 비중은 25.7%에서 50.4%로 오히려 늘어납니다.

특히 이들 거래에서 금융당국이 투기거래 위주라고 경고 했던 지수상품 투자 비중이 60%를 웃돌아 '외국인 놀이터, 잔치'라는 지적까지 나왔습니다.

상황이 이렇자 8년 만에 금융당국이 노선을 바꿉니다.

'혁신성장 실물경제 지원'을 위해 개인투자자의 증거금, 기본예탁금 완화와 사전 교육, 모의 거래 내실화 등을 담은 '파생상품시장 발전 방안'을 발표합니다.

금융위는 국내 파생상품시장에서 등 돌린 개인 투자자들이 관심을 가질 것으로 내다봤습니다.

하지만 금융투자업계에서는 개인 투자자들이 미국과 인도, 브라질 등 다양한 곳에서 파생상품 거래에 물꼬를 텄는데 국내로 들어올 이유가 없다고 분석합니다.

한 개인 투자자는 "수년 전부터 해외 파생 상품 스터디를 한 경우가 많다"며 "이미 상품 규모와 질 면에서 앞선 해외 시장에서 투자자들이 되돌아오기 쉽지 않을 것"이라고 평가했습니다.

금융당국이 기대를 걸고 있는 기관 투자가들의 참여도 마찬가지입니다.

시장 주도로 상품이 개발될 수 있도록 장내 파생상품 상장 체계를 개선하고 신규 지수에 대한 아이디어 제공자에 배타적 사용권을 부여하는 등의 방안이 유인 요소인데, 기관들이 자발적으로 동참을 해야 한다는 점에서 시장 활성화를 확신하긴 어렵습니다.

과거에 자율적으로 완성됐을지 모르는 '파생상품시장 활성화와 현, 선물 연계'.

이를 꺾어버렸던 금융당국이 8년 만에 바로 세우겠다고 나섰지만 너무 늦은 게 아닐지, 그 전 수준의 대안으로 변해버린 국내 파생상품 시장의 판도를 바꿀 수 있을지 불안한 상황입니다.

최종구 금융위원장은 국내 파생상품시장을 담당하고 있는 부산 한국거래소를 방문해 "파생상품을 통해 혁신성장과 실물경제를 지원할 것"이라고 거듭 강조했지만, 사후약방문 논란은 한동안 이어질 것으로 보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