日 초등생 흉기 난동, 10여초 사이에 벌어진 참극

입력 2019-05-29 20:25


등굣길 초등생 등을 대상으로 한 무차별 흉기 난동 사건으로 일본 열도가 충격에 휩싸인 가운데 범인이 불과 10여초 사이에 범행을 저지른 것으로 드러났다.

사건 후 범행 현장에는 희생자들을 추도하는 행렬이 줄을 잇고 있는 가운데, 인터넷과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서는 범인이 한국인이라는 유언비어가 퍼질 기미를 보이고 있다.

29일 NHK에 따르면 전날 오전 7시 45분께 도쿄(東京) 인근 가와사키시 다마(多摩)구 인근 주택가에서 통학버스를 기다리던 초등생 등을 상대로 한 흉기 난동 사건이 발생, 2명이 숨지고 17명이 다쳤다.

NHK는 수사 관계자를 인용해 이와사키 류이치(岩崎隆一·51)가 현장에서 30대 남성에게 흉기를 휘두른 후 불과 10여초 사이에 70m 정도 이동, 통학버스를 기다리던 초등생들에게 범행을 저지른 것으로 나타났다고 보도했다.

범인은 양손에 든 흉기를 어린이들을 향해 마구 휘둘렀고, 범행 직전 편의점 부근에 벗어둔 백팩에도 2개의 흉기를 더 넣어둔 것으로 밝혀졌다.

범인이 범행 당시 "죽여버리겠다"고 외쳤다는 목격자 진술이 언론의 초기 보도를 통해 나오긴 했지만, 경찰은 그가 아무 말 없이 범행을 저질러 초등생들이 위험을 미리 알아차릴 수 없었던 것으로 보고 있다.

요미우리신문에 따르면 범인이 첫 번째 피해자에게 흉기를 휘두른 뒤 스스로 목숨을 끊을 때까지 걸린 시간은 불과 1분도 안 될 정도로 짧았다. 거침없이 흉기를 휘두르고 곧바로 자살까지 감행한 것이다.

경찰 수사가 진행되면서 범인이 장기간 취업을 하지 않은 이른바 '중년의 은둔형외톨이(히키코모리)'일 가능성이 나오고 있다.

범인은 현장에서 4~5㎞ 떨어진 곳에서 80대의 고령인 삼촌, 숙모와 함께 거주했으며 이웃과의 교류는 거의 없던 것으로 알려졌다.

교도통신은 동거하던 삼촌 등이 과거 복지 문제 등으로 나가사키시와 상담을 할 때 그가 장기간 취업을 하지 않아 히키코모리 성향이 있다는 말을 했다고 보도하기도 했다.

경찰은 집에서 현장 인근 가장 가까운 역까지 전철을 타고 이동한 범인이 단시간에 많은 사람에게 피해를 주려 했을 가능성이 있다고 보고 있다.

이 사건으로 숨진 30대 남성은 미얀마어를 구사할 수 있는 외무성 직원 오야마 사토시(小山智史) 씨로, 초등학교에 아이를 등교시키기 위해 현장에 갔다가 변을 당했다.

고노 다로(河野太郞) 외무상은 "정말 유감"이라고 이날 기자들에게 말했다.

이날 아침부터 사건 현장에선 희생자들을 추모하는 행렬이 길게 이어졌다. 꽃다발과 음료수 등이 쌓였고, 두손을 모아 기도하는 사람들이 끊이지 않았다.

피해 학생들이 다니던 학교에서 청소 일을 했다는 한 여성은 사건 현장을 찾아 "할머니라고 부르던 아이들이 생각나 가만히 있을 수 없었다. 남 일 같지 않다"고 말했다.

피해 학생들이 다니는 초등학교는 통학로를 포함해 경비를 강화하기로 하는 한편 오는 31일까지 휴교하기로 했다.

한편 사건 발생 후 인터넷과 SNS상에는 가와사키시에 적지 않은 한국인이 거주한다는 점을 들며 범인이 한국인이라는 유언비어를 퍼트리려는 시도가 나오고 있다.

이와 관련해 언론인 야스다 고이치 씨는 이날 국회에서 열린 헤이트 스피치(hate speech·특정 집단에 대한 공개적 차별·혐오 발언)대책법 입법 3주년 기념 집회에서 "범인이 재일 한국인이라는 유언비어가 인터넷을 돌아다니고 있다"며 "흉악사건과 재해가 일어날 때마다 이런 식의 혐오 글이 반복적으로 나오고 있다"고 비판했다.

같은 날 오후 2시 15분께는 사이타마(埼玉)현 미누마(見沼)구 오와다(大和田)초 노상에서 60대 남성이 흉기를 휘두르며 난동을 부리다 경찰이 쏜 총탄에 맞아 사망하는 사건이 발생했다.

경찰은 공중을 향해 위협 사격을 했지만 이 남성이 계속 흉기를 휘두르자 다리를 겨냥해 발포했으며 이 중 1발이 남성의 복부에 맞았다. 남성은 이후 병원으로 이송됐지만 숨졌다.

가와사키에서 초등생을 대상으로 한 흉기난동 사건이 발생한 지 6시간 만에 유사 사건이 일어나자 불안감은 더욱 확산하는 모양새다.

일본 정부는 당혹감을 감추지 못한 채 어린이들의 등하굣길 안전 조치를 강화하는 등 대책 마련에 나섰다.

문부과학성 담당자는 "통학버스는 아동 보호 대책의 하나였는데, 이번처럼 버스를 기다리던 장소를 덮칠 줄은 상상도 못 했다"고 니혼게이자이신문에 말했다.

문부과학성이 2018년 9월 전국 교육위원회에 보낸 통지에는 "통학버스 등을 등하교 안전대책의 관점에서 이용하는 것도 생각할 수 있다"는 내용이 포함됐다.

이번 사건은 일본에서 통학버스는 안전하다는 통념을 깬 것이다.

일본 정부는 이날 오전 아베 신조(安倍晋三) 총리가 참석한 가운데 관계 각료회의를 열고 대책을 논의했다.

아베 총리는 통학로에서의 아동 안전을 확보하기 위해 등하교 시 아동이 모이는 장소를 재점검하고 경찰 순찰 활동을 중점적으로 실시할 것을 지시했다.

아베 총리는 "아동이 피해를 본 것에 강한 분노를 느낀다"며 "아이들의 안전을 어떻게 해서든 지켜야 한다"고 강조했다.

아베 총리는 이번 사건을 철저히 조사하는 한편 경찰과 학교가 파악한 수상한 인물의 정보 공유 체제도 강화하라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