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틀려도 너무 틀린다”…증권사 예측 무용론 왜 나오나 [국제경제읽기 한상춘]

입력 2019-05-27 09:56


지난주 한국경제TV 방송을 보다가 가장 공감한 뉴스 하나가 눈에 확 들어왔다. 증권사의 경기와 기업실적 예측이 빗나가도 너무 빗나간다는 얘기다. 날이 갈수록 미래에 대한 불확실성은 증가한다. ‘불확실성 시대(케네스 갤브레이스)'가 나온 지 40년이 지났지만 ‘초불확실성 시대(배리 아이켄그린)’에 접어들었다.

예측을 하는 가장 큰 목적 중의 하나가 경제 주체를 안내하는 역할이다. 이 목적을 제대로 수행하기 위해서는 추세는 맞아야 하고, 실적치에 대비한 예측 오차율이 크게 벗어나지 말아야 한다. 이런 요건을 충족시키는 전망기관의 예측치는 갈수록 줄어들고 있다. 틀려도 너무 자주 큰 폭으로 틀리다보니깐 ‘예측 무용론’까지 나올 정도다.



한국 증권사의 주가 예측이 시장흐름에 너무 민감한 것이 맹점이다. 다른 금융변수와 마찬가지로 주가도 선제적으로 예측해야 본래의 목적인 시장안정과 안내판 역할을 잘 수행할 수 있다. 지금처럼 시장흐름을 쫓아 사후적 혹은 대증적으로 예측할 경우 오히려 혼란을 초래할 가능성이 높아 비판을 받아왔다.

같은 맥락에서 주가 예측을 그렇게 쉽게 자주 수정할 수 있느냐도 단골 지적사항이다. 직전의 예측이 채 잉크도 마르기 전에 그것도 비교적 큰 폭으로 조정하는 사례가 많아 이것을 어떻게 받아 들여야 할지 당혹스러운 때가 많다. 요즘이 더 심하다. 한국 증권사 내부적으로 주가를 예측하는 기법이나 모델이 있는 것인가 의심스러울 정도다.



주가는 성장률과 같은 실물통계도 아닌데 구체적인 수치를 들어 예측하는 것도 놀랍다. 다른 변수와 달리 주가는 심리적인 요인에 의해 좌우되기 때문에 수치를 들어 예측할 수 없고, 설령 맞았다 하더라도 큰 의미를 부여할 수 없다. 투자전략에 실질적으로 도움될 수 있도록 추세 예측 중심으로 전환돼야 한다.

군집성 주가예측 관행도 한국 증시에서 하루빨리 사라져야 할 악습이다. 군집성 주가예측이란 전년도에 주가 예측을 잘한 사람의 시각으로 다음 연도에 주가 예측이 쏠리는 현상이다. 기관도 마찬가지다. 이런 예측 관행은 예측자가 자신감이 없거나 나중에 책임을 면하기 위해 자주 사용한다.

군집성 예측관행은 주가에만 국한되는 얘기는 아니다. 한국에서 성장률을 전망하는 국내 기관은 30개가 넘지만 아직도 한국은행이 제시한 전망치에 상하 0.5% 범위 안에 몰려있다. 극단적으로 한국에서 성장률을 내놓은 기관은 실질적으로 한국은행 밖에 없다고 국제금융시장에서 자주 지적돼 왔던 것도 이런 이유 때문이다.

불확실한 미래를 예측하는 만큼 다양한 기법들이 있다. 가장 많이 활용되는 ‘시나리오 기법’은 미래에 나타날 가능성이 있는 여러 시나리오를 구상해 각각의 전개 과정을 추정하는 기법이다. 미래의 가상적 상황에 대한 단편적 예측이 아니라 복수의 미래를 예측하고 각각의 시나리오에서 나타날 문제점 등을 예상해 보는 방법이다.

현재와 과거의 역사적 자료 또는 추세에 근거해 앞으로 다가올 미래사회 변화의 모습을 투사하는 방법이 있다. ‘트렌드 분석’이다. 일련의 데이터에 연장선을 긋는 방법으로 추세를 예측할 수 있으며 수학적·통계적인 방법을 활용한다. 경제성장·인구증감·주가 등 가격 변수 등을 예측하는데 많이 활용된다.

그리스·로마 신화의 태양신 아폴로가 미래를 통찰하고 신탁을 했다는 ‘델파이의 신전’에서 유래된 예측방법이 ‘델파이 기법’이다. 여러 전문가를 대상으로 반복적인 설문을 통해 전문가의 의견을 수집·교환함으로써 제시된 의견을 발전시켜 나가는 예측방법을 말한다.

‘직관적 예측’은 주관적 판단에 입각해서 미래를 추측하는 방법이다. 추측은 주관적 판단에 기초해 미래의 변화 모습을 예측하며 그 기초는 예측자의 통찰력, 창조적 지각력, 내면의 숨은 지식 등 직관력으로부터 나온다. 예측의 결과는 예측자 자신의 목표, 가치, 신념, 선입견, 편견, 의도가 무의식적으로 표출되는 경우가 많다.

‘자유토론 기법’은 각 분야의 전문가가 한자리에 모여 자유로운 토론을 주고받는 가운데 미래에 관한 전망을 종합해 내는 기법이다. 주로 연구 초기에 전반적인 상황을 조망하고 연구주제를 구체화하거나 과제를 추출하는 단계에서 널리 사용된다. 정해진 기간 동안 주기적 모임을 통해 미래에 대해 토론하고 대안을 제시해 전략을 수립한다.

하지만 이런 예측기법은 자체적으로 함정을 갖고 있어 미래에 대한 불확실성이 높아질수록 한계가 드러난다. △트렌드 분석에 따른 함정△심리적 편향에 따른 함정 △고정관념 함정 △자기 과신 함정 △기억력 함정 △신중함 함정 △증거확인 함정 등 이른바 ‘루비니-파버의 7대 함정’이다.

초불확실성 시대에 들어간다 하더라도 예측이 틀렸던 것만은 아니다. 한 나라의 경제나 증시는 고도의 복합 시스템이다. 이런 복잡성은 국내 예측기관과 증권사가 의존하는 몇 개의 선행지표로 포착할 수 없다. 현재 미국의 경제 사이클 연구소(ECRI:Economic Cycle Research Institute)의 예측모델이 이 분야에서 세계를 평정할 수 있을 정도로 예측이 정확했던 것은 ‘경제 사이클 큐브’라는 다차원적인 모델 덕분이다.

ECRI의 ‘경제 사이클 큐브’를 소개하면 크게 경제성장과 고용, 인플레로 삼차원을 구성한다. 경제성장은 다시 무역과 국내 경제활동으로, 이중 국내 경제활동은 각 부문별 장단기 선행지수로 구분된다. ECRI에서는 이 모델을 통해 100개 이상의 선행지수를 통합함으로써 보다 정확하고 고객으로부터 신뢰를 받는 예측을 추론해 낸다.



증시 입장에서 재구성하면 경기(경제 사이클 큐브의 3차원인 성장과 고용, 물가 포함)와 기업실적, 유동성이 3차원에 해당된다. 가장 중요한 1차원인 세계 경기는 ‘구조적 장기 침체론’과 같은 비관론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국제통화기금(IMF) 등은 2009년 2분기 이후부터 불안하지만 완만한 회국국면이 지속되고 있는 것으로 보고 있다.

2차원에 해당하는 기업실적은 최근처럼 4차 산업혁명이 주도될 것으로 예상되는 시대에 있어서는 업종별로 차별화 현상이 심해지겠지만 전체적으로는 개선될 가능성이 높다. 트럼프 정부가 경기부양 차원에서 구상하고 감세정책이 본격적으로 추진되면 같은 매출을 올린다하더라도 수익은 증가한다.

3차원인 유동성을 보면 일단 정책금리는 지난 2015년 12월 이후 미국 중앙은행(Fed)가 추진해온 출구전략이 멈춰질 가능성이 높다. 유동성은 △유럽중앙은행(ECB)와 일본은행(BOJ)의 금융완화정책 지속 △금융규제 완화에 따른 레버리지 투자의 부활 △저개발국과 구사회주의권의 자산유동화 진전 등으로 증시 주변자금은 늘어날 가능성이 높다. 올해 하반기 이후 글로벌 증시가 반등할 수 있는 소지다.

최근처럼 경기와 증시 판단이 어려워질수록 각국과 주요 예측기관이 보다 정확하고 신속한 경기판단과 예측방안을 고안해 내기 위해 노력하는 것을 국내 예측기관과 증권사도 참조해야 한다.

한상춘/한국경제신문 객원논설위원 겸 한국경제TV 해설위원(scha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