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암치료 새로운 길 열리나…암세포 전이 막는 '세포자멸 차단벽' 발견

입력 2019-05-07 22:55
수정 2019-05-08 07:27


액티빈(Activins)은 뇌하수체의 FSH(여포자극호르몬) 합성 및 분비 촉진, 생리 주기 조절, 세포 증식·분화·사멸, 대사, 항상성 유지, 면역 반응, 상처 복원, 내분비 등 다양한 생리 작용에 관여하는 단백질 복합체로 A·B·AB 세 종류가 있다.

이 중 액티빈B가 ALK7라는 수용체와 결합하면, 이 수용체의 활성도가 높아지면서 분자·생화학적 '신호전달 경로'에 도미노 효과를 촉발해 세포들의 다양한 변화를 일으킨다. 일본의 한 연구팀은 2012년, ALK7 유전자가 지방의 축적을 촉진한다는 연구결과를 발표하기도 했다.

그런데 암세포에 액티빈B와 ALK7이 동시에 발현하면, 암세포의 새로운 종양 형성과 전이를 차단하는 일종의 '방어벽(barrier)'이 생긴다는 사실을 스위스의 국립 로잔 공과대학(EPFL) 과학자들이 발견했다.

6일(현지시간) 온라인(www.eurekalert.org)에 배포된 보도자료에 따르면 이 대학의 더글라스 하나한 교수팀이 이번 연구를 수행해, 저널 '디벨로프먼털 셀(Developmental Cell)'에 연구보고서를 발표했다.

독일의 생명공학 회사 '머크 세로노(Merck Serono)' 석좌교수로서 자신의 실험실(lab of Douglas Hanahan)을 운영 중인 그는 세계적인 종양학 전문가다. 그러나 실질적인 연구는 이 랩의 이아코포스 미하엘 박사후과정 연구원이 주도했다.

췌장의 신경·내분비계 암과 유방암을 가진 생쥐에 ALK7 신호전달 경로를 실험한 결과, 이 수용체가 액티빈B와 결합해 활성화하면, 암세포는 세포자멸사 과정을 거쳐 죽는 것으로 관찰됐다. 반면 ALK7의 발현을 차단하면 암세포는 간, 폐, 뇌 등 다른 기관으로 활발히 전이했다.

그러나 암세포가 액티빈B와 ALK7을 모두 억제하거나, 둘 중 하나만 억제해도 암세포 '방어벽'은 작동하지 않았다.

하나한 교수는 "세포자멸사가 암 종양의 형성을 차단하는 데 매우 중요한 장벽이고, 암세포는 세포자멸사를 피해야 악성 종양으로 전이할 수 있다는 믿음이 강해졌다"고 말했다.

이번 연구에선 또한 유방암 등 여러 종류의 암 환자가 치료 후 재발하지 않고 생명을 유지하는 데 ALK7가 연관돼 있다는 것도 밝혀졌다. 특히 ALK7의 발현 도가 높아지면 유방암 환자의 재발 시점이 늦춰질 개연성이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미하엘 연구원은 "암세포가 자연의 다양한 '안전 검문소'를 어떻게 극복하는지 알아내는 건, 암 종양의 생리 작용과 질병 발생을 이해하는 중요한 발걸음"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