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찌 이런 일이 일어날 수 있습니까?” 올해 1분기 성장률 발표 이후 어느 한 국민이 머리를 싸잡고 공허한 하늘을 향해 외친 호소다. 금융위기와 같은 특수한 상황이 아닌 데도 올해 1분기 성장률이 작년 4분기대비 -0.3% 역(逆)성장한 것으로 나타났다.
◇ 1분기 한국경제 역성장...설비투자 10%대 급감
1분기 성장률을 총수요 항목별로 나눠보면 세 가지 뚜렷한 특징이 눈에 들어온다. 하나는 모든 항목에 걸쳐 성장 기여도가 떨어진 점이다. 다른 하나는 기업의 설비투자가 -10%대로 급감해 지속 가능한 성장 기반인 잠재 수준이 더 추락할까 우려된다. 정부 지출 기여도가 ‘마이너스’로 전환된 점도 쉽게 이해되지 않는다.
역성장 가능성은 1년 전부터 예견됐다. 작년 2분기 들어 경제지표가 악화되자 김광두 당시 국민경제자문위원회 부의장은 경기침체 가능성을 경고했다. 같은 시점에 국제통화기금(IMF)도 재정을 통한 적극적인 경기부양책을 주문했다. 선제적인 대책만 있었더라면 역성장은 충분히 막을 수 있었기에 더 아쉬운 것이다.
지금은 주중 대사로 나가 있지만 1년 전 경제정책을 실질적으로 총괄했던 장하성 전 정책실장은 당시 "조급하게 굴지 말고 좀 더 기다려 달라“며 ”내년(2019년)부터는 경기가 본격 회복될 것“이라고 신경질적으로 반박했다. 기다려주다가 되돌아온 답이 ’역성장‘이다. 국민이 흥분하면서 분통을 터뜨리는 것도 이 때문이다.
◇ 세계경제 부진 탓?...G2 깜짝성장
더 실망스럽게 하는 것은 1분기 성장률이 안 좋은 것이 작년 4분기 성장률이 높게 나온 것에 따른 ‘기저 효과’와 ‘불리한 대외환경’ 탓으로 돌린 점이다. 심지어는 겨울철 날씨가 이례적으로 따듯해 롱 패딩 등이 안 팔렸다는 점도 들었다. 경제정책 운영 등에 문제가 있었다는 언급은 한 마디도 없었다.
하지만 우리 수출의 40% 정도를 차지하는 중국과 미국 경제는 ‘깜짝 성장’이라는 표현이 어울릴 만큼 좋게 나왔다. 올해 1분기 5%대까지 추락할 것으로 봤던 중국 경제는 6.4%로 작년 4분기 수준을 유지했다. 미국 경제는 3.2%로 작년 4분기 2.6%보다 높게 나와 ‘슈퍼 비둘기’ 기조로 선제 조치를 해놓은 미국 중앙은행(Fed)을 무색케 했다.
G2 경제의 예상 밖 호조는 1분기 역성장이 우리 내부요인에 더 문제에 있었다는 점을 뒷받침해 주는 대목이다. 다음달 10일이면 문재인 정부가 출범한지 2년이 된다. 박근혜 정부 임기 중에 출범한 만큼 많은 기대와 함께 책임과 부담도 컸다. 역대 어느 정부보다 출범 2년에 대한 평가가 궁금했던 것도 이 때문이다.
“Has anything worked?(뭐 된 게 있나요)” 글로벌 투자은행, 국제 신용평가사, 외신 기자 등에게 던진 첫 질문에 돌아온 냉혹한 평가였다. 칭찬 한 마디부터 시작하는 외국인의 관행상 덕담부터 시작할 것이라는 기대가 확 깨졌다. “좀 더 기다려보자”는 한 외신 기자의 말이 그나마 위안으로 삼을 수 있었다.
국정운영목표인 소득주도성장과 혁신성장에 대해 물었다. 혁신성장은 어느 국가든 가야되는 길이기 때문에 출범 초부터 이해됐고 성과도 있다고 답했다. “앞으로 더 기대된다”는 말도 아끼지 않았다. “왜 그렇게 생각하느냐”는 추가 질문에 BTS(방탄소년단)의 성공을 꼽아 많은 생각을 갖게 했다. 소득주도성장은 그 실체를 "아직도 모르겠다"는 시각이 대부분이다.
오히려 2기 경제팀 들어 혁신성장에 무게심이 옮겨지면서 “뒷전에 물러난듯한 느낌을 받는다”고 말했다. 처음 보너스를 주면 근로자가 고맙다고 말하지만 다음에 줄 때는 더 많이 줘야 고맙다고 느끼는 점을 감안할 때 효과 여부를 떠나 재정 부담이 커질 것이라는 지적도 있었다.
◇ 청와대 일자리 상황판 어디갔나
또 하나 우선순위를 두고 추진했던 고용창출 과제에 대해서는 “일자리 상황판이 어디에 갔느냐”고 되물었다. “아직도 있다”는 2차 질문에 “출범 초 반짝였던 일자리 상황판의 불빛은 약해지지 않았느냐”는 우회적인 비판에 더 이상 반문할 수 없었다. 청년 실업률 등과 같은 고용지표는 악화되고 있기 때문이다.
가장 논란이 많았던 주 52시간제, 최저임금 인상 등에 대해서는 중장기적으로 가야될 방향은 맞지만 한국 기업의 수용여건 등을 감안하지 않고 밀어 붙이는 1기 경제팀을 아쉬워했다. 2기 경제팀이 뒤늦게 유연성을 부과하려는 노력 등은 다행이라는 평가했지만 얼마나 효과를 볼 수 있을까는 지켜봐야한다는 입장이다.
다른 과제에 대해 더 이상 기대를 갖고 평가해 달라고 말하기가 어려워 “한국 경제가 올바른 방향으로 가기 위해서는 어떤 과제를 해결해야 하느냐”고 부탁했다. 곧바로 되돌아온 답은 작년 말 크리스토프 하이더 주한 유럽상공회의소(ECCK) 사무총장이 지적한 “갈라파고스 함정(세계 흐름과 동떨어진 현상)’에서 벗어나야 한다”고 한목소리를 냈다.
◇ 세계는 '작은 정부'로 가는데 한국은 '큰 정부'
갈라파고스 함정에 빠졌다고 평가받을 사례는 의외로 많다. 정부의 역할이 세계는 ‘작은 정부’을 지향하고 있으나 한국은 갈수록 커지고 있다. 거시경제 목표도 ‘성장’ 대비 ‘소득주도 성장(성장과 분배 간 경계 모호)’, 제조업 정책은 ‘리쇼오링’ 대비 ‘오프쇼오링’, 기업 정책은 ‘우호적’ 대비 ‘비우호적’이다.
규제 정책은 ‘프리 존’ 대비 ‘유니크 존’, 상법 개정은 ‘경영권 보호’ 대비 ‘경영권 노출’, 세제 정책은 ‘세금 감면’ 대비 ‘세금 인상’, 노동 정책은 ‘노사 균등’ 대비 ‘노조 우대’로 대조적이다. 명시적인 것뿐만 아니라 일부 정책결정과 집행권자의 의식과 가치가 이 함정에 빠져 있는 것도 문제다. 현 정부 출범 2년 평가 결과가 올해 1분기에 기록한 ‘역성장’이다.
해외 평가가 다 옳은 것은 아니다. 하지만 새겨들어야 할 대목도 많다. 5년 단임 대통령제에서 마지막 남은 2년 동안 레임덕 현상이 나타난 점을 감안하면 아멘코너를 넘겨 14년 만에 우승한 타이거 우즈처럼 현 정부가 도약할 수 있는 기간은 고작 1년 남짓 남았다. 3년 후에는 “Everything is good(모든 게 좋아요)”라는 평가를 받아야 한다.
더 이상 국정운용이 남북문제에 치중되거나 소득주도성장률 고집해서는 안 된다. ‘경제’ 최우선의 국정운용 원칙을 천명하고 경제정책 목표도 ‘성장’을 확실하게 지향하는 쪽으로 재조정돼야 한다. 가장 시급한 기업정책은 전체 기조를 ‘우호적’으로 전환하면서 세제(법인세 인하), 상법(경영권 보호), 노조(노사 균등), 주 52시간과 최저임금 인상(수용여건 감안) 등을 모두 손봐야 한다.
한국 경제처럼 대외환경 의존도가 높지만 세계 경제를 주도할 수 없는 국가는 최소한 글로벌스탠더드에 맞추는 것이 성장의 기본요건이다. 갈라파고스 함정에서 벗어날 수 있도록 세계 흐름에 적극 동참해야 한다. 특히 경제정책 결정과 운용을 맡고 있는 국회의원과 정책당국자의 인식과 의식 개선이 시급하다. 역성장으로 국민은 피눈물 나는데 ‘빠루’ 놓고 난장판을 벌이는 국회의원을 보며 어떤 생각이 들겠는가?
한상춘/한국경제신문 객원 논설위원 겸 한국경제TV 해설위원(schan@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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