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년 4월 마지막 주는 세계보건기구(WHO)가 지정한 세계예방접종주간(World Immunization Week)이다. 예방접종은 전 생애에 걸쳐 생명을 위협하는 질병을 막아주는 가장 효과적인 방법이다. WHO가 올해 세계인의 건강을 위협하는 10대 요인 중 하나로 '백신 기피'(Vaccine hesitancy)를 꼽았을 정도다. WHO는 백신이 연간 200만~300만명을 살리고 있으며, 예방접종 범위가 더 넓어지면 연간 150만명의 생명을 추가로 구할 것으로 본다.
이처럼 백신은 삶의 전반에 걸쳐 건강한 삶을 위한 투자지만, 아직도 영유아의 전유물로 인식하는 경우가 적지 않다. 영유아뿐 아니라, 청소년, 성인, 고령자까지 생애주기별 적절한 예방접종을 챙겨 감염병을 막는 게 중요하다.
◇ 0세~만 6세 영유아·소아, 필수예방접종 놓치지 말아야
영유아 시기는 예방접종으로 면역 항체를 형성함으로써 감염병에 대한 방어 능력을 갖춰야 할 때다.
국가에서 지원하는 필수예방접종을 통해 소아마비, 수두, 홍역, 결핵, B형 간염, 파상풍, 백일해, 일본뇌염, 독감(인플루엔자) 등 약 17종의 질환을 예방할 수 있다. 최근 전 세계적으로 유행하는 홍역은 전염성이 매우 높지만 생후 12~15개월에 MMR(홍역·볼거리·풍진) 혼합백신을 1차 접종, 만 4~6세에 2차 접종하면 90% 이상 예방할 수 있다.
영유아 및 소아, 어린이가 접종해야 하는 백신과 접종 이력을 알려주는 질병관리본부의 애플리케이션 '예방접종도우미'를 활용하면 예방접종 시기를 놓치지 않는 데 도움이 된다.
◇ 10대 청소년, 인플루엔자·A형 간염 예방에 힘써야
10대 청소년은 학교에 머무르는 시간이 길고 또래와 자주 어울리기 때문에 집단 감염병에 노출되기 쉽다.
특히 겨울철에서 이듬해 봄까지 유행하는 인플루엔자(독감) 감염에 취약하다. 실제 인플루엔자 의심환자 분율은 13~18세에서 가장 높은 편이다. 이 때문에 독감이 유행하기 전 반드시 백신 접종을 완료해야 한다. 현재 질병관리본부는 생후 6개월~만 12세 어린이에게 인플루엔자 백신을 무료로 접종해주고 있다.
기숙사에서 생활하는 경우는 수막구균성 질환, A형 간염 예방에 힘써야 한다.
수막구균성 뇌수막염 등 수막구균성 질환은 발병률이 비교적 낮지만 감염자의 10~14%는 24~48시간 내 사망에 이를 정도로 치명적이다. 비말(침방울)로 집단 감염으로 확산할 수 있어 집단생활을 하는 청소년의 경우 위험하다. 실제 지난해 환자의 절반 이상이 10~20대로 집계됐다. 백신으로 예방할 수 있으므로 접종력이 없을 경우 접종을 고려해볼 만하다.
오염된 물이나 음식으로 전파될 수 있는 A형 간염 역시 단체 급식을 시작하는 이 시기에 예방접종을 챙기는 게 좋다.
◇ 건강한 성인·임신부도 예방접종 챙겨야
영유아기를 지나 나이가 들어갈수록 예방접종에 무관심해진다. 대개 건강한 성인이라면 예방접종을 하지 않아도 무방하다는 의견도 많다.
그러나 임신부, 영아와 함께 거주하는 성인들은 각각의 상황에 맞춰 반드시 예방접종을 챙겨야 한다. 특히 임신부는 올해부터 인플루엔자 백신 무료접종 지원대상에 포함된다.
또 영아와 거주하는 성인은 백일해 예방을 하는 게 바람직하다. 백일해는 전염성이 높은 데다 부모 또는 조부모를 통해 신생아와 영유아에 전파할 수 있어서다. 어렸을 때 접종을 마쳤더라도 성인이 된 후 예방효과가 감소했을 수 있으므로 추가 접종을 통해 면역력을 유지해야 한다.
해외여행이나 출장을 앞둔 성인이라면 해외 감염병 예방접종도 챙겨야 한다. 일본뇌염은 동남아 여행 전 면역력이 없는 성인에 예방접종이 권고되는 대표적인 해외 감염병이다. 일본뇌염은 국내 보고된 환자의 90% 이상이 40세 이상이어서 이 연령대가 특히 주의해야 한다. 일본뇌염은 대부분 증상이 없지만 감염자 일부에서 급성뇌염으로 진행될 수 있다.
◇ 50대 이상 중·장년층 예방접종은 노후를 위한 투자
50대 이상 중·장년층은 면역력 저하로 인해 다양한 질병에 노출되기 쉽다. 적절한 예방접종은 건강한 노후를 준비하기 위한 일종의 투자다.
인플루엔자, 폐렴구균 등은 고령자라면 반드시 백신을 맞아야 한다. 질병관리본부에서도 만 65세 이상 어르신을 대상으로 인플루엔자와 폐렴구균 예방접종을 무료로 지원하고 있다.
특히 인플루엔자로 인한 사망자의 대다수는 65세 이상이므로 반드시 챙기는 게 좋다. 폐렴 또한 주요 사망원인인 데다 만성질환자의 경우 폐렴 발생률을 높이므로 백신으로 예방해야 한다. 2017년 사망원인 통계에 따르면 폐렴은 국내 사망원인 4위다.
이밖에 '수십 개의 바늘로 찌르는 듯한 느낌'을 동반한다는 대상포진도 중·장년층 발병률이 높은 만큼 합병증 예방을 위해 백신 접종을 고려해볼 만하다. 인플루엔자, 폐렴구균, 대상포진은 '노인 백신 3종 세트'로 불리기도 한다.
최정현 가톨릭대학교 은평성모병원 감염내과 교수는 "예방접종은 과거에는 영유아와 소아에게만 중요하다고 여겨졌지만 최근에는 집단 감염, 해외 감염병 유입, 고령화에 따른 면역력 저하로 전 연령대의 건강을 지키기 위한 중요한 요소가 됐다"며 "질병 감소뿐 아니라 공중보건을 위한 합리적인 선택이므로 적절히 활용해야 할 것"이라고 조언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