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 예견된 폭락...소액주주 불만에 이베스트 진심 통할까

입력 2019-04-24 14:35


'선시어외'라는 고사가 있습니다. 지금으로부터 2천년도 훨씬 전인 중국의 춘추전국시대. 중국이 여러 나라로 갈라져 있던 시절, 연나라가 제나라에 국토의 반을 빼앗기고 있을 무렵이었습니다.

이렇게 어려울 때에 연나라의 왕으로 즉위한 소왕이 재상인 곽외에게 어떻게 하면 나라가 잘 되겠는지 묻자 곽외는 이렇게 답했답니다.

"예전에 어느 왕이 천리마를 사 오라고 신하에게 천금을 주고 일을 시켰는데, 석 달 뒤에 신하가 가져온 것은 죽은 천리마의 뼈였습니다. 죽은 천리마를 5백금을 주고 사 온 겁니다. 신하는 왕에게 '세상 사람들이 천리마라면 뼈조차 거금을 주고 사 온다는 것을 알게 되면 사람들이 머지않아 천리마를 궁전 앞으로 자진해 끌고 올 것'이라고 말했고, 과연 그 말대로 1년도 되지 않아 천리마가 세 필이나 모였다고 합니다."

"나라가 잘 되려면 무엇보다 사람이 필요합니다. 진정으로 인재를 원하신다면 눈 앞에 못난 저부터 후대를 해주십시오. 저같은 자도 높은 대접을 받는다는 소문이 퍼지면, 신보다 어진 이가 천리길도 마다 않고 모일 것입니다."

회사가 잘 되려면 내 연봉부터 올려달라는 건데, 고깝게 들으면 건방져 보일 수 있는 이 이야기를 왕은 경청하고 곽외가 말하는 대로 해줬다고 합니다. 그리고 연나라에게도 곽외에도 다행스럽게도 이 일이 다른 나라에 알려지자 천하의 인재들이 모여들었고요. 결국 숙적 제나라를 쳐서 크게 이겼다죠.

최근 증권가를 돌아다니다 보면 이 고사가 떠오르는 곳이 있습니다. 이베스트투자증권입니다.

이베스트투자증권은 소액주주가 가진 주식 수가 너무 적다는 이유로 관리종목 지정을 받습니다. 해결책은 당연히 소액주주를 늘리는 겁니다.

이 회사는 일반 투자자들을 대상으로 주식을 새로 발행하기로 하고 가격도 현재 주가보다 좀 싸게 내놓기로 했습니다. 그래야 흥행이 되니까요. 유상증자를 하기로 한 겁니다.

지난 18일부터 22일까지 3거래일동안의 주가를 기준으로 하고 그 기준가격에다 다시 25% 할인을 한 주당 5,190원이 유상증자 최종 공모가로 확정됐습니다. 이미 사내에 배정된 우선주는 '완판'을 기록했죠. 나머지 1,350만주에 대한 일반 청약은 오는 25일부터 이틀 동안 진행됩니다. 유증 소식이 알려진 뒤 계속 가격이 떨어진 주식에 높은 수준의 할인율까지 더해졌으니, 이번 유상증자는 흥행이 보장된 데다 들어가면 대박이라는 이야기가 시장에서 나옵니다.

그런데 뜻하지 않은 곳에서 불만이 터져나옵니다. 이베스트투자증권이 관리종목으로 지정되기 전부터 회사 가능성을 믿고 투자해 온 기존 소액주주들로부터입니다. 유상증자 발표 이후 기존 주식의 가격이 계속 떨어지면서 손실률이 눈덩이처럼 커진 겁니다. 1년 전 1만1천원대에서 움직였던 이 회사의 주가는 지난 23일 6,540원으로 마감했습니다.

기존 개인투자자들의 불만은 김원규 신임 이베스트 사장으로 향합니다. 자사주 매각과 같은 다른 방법도 있었을 텐데, 기존 주주의 손해를 뻔히 알고 있으면서 유상증자를 강행한 것이 신임 사장 탓이라는 겁니다. 실제 유상증자 결정 이후 이베스트투자증권은 미처 생각지 못했던 기존 소액주주 항의에 진땀을 빼고 있다고 합니다.

주주 불만에 대한 이베스트투자증권의 논리는 명료합니다. 회사가 내놓을 수 있는 어떤 해결책보다 유상증자가 회사와 주주의 미래를 위한 '정답'이라는 겁니다. 소액주주 지분을 높일 수 있는 방법으로는 자사주 매각이나 소각, 대주주 감자, 유상증자 정도가 꼽힙니다. 회사의 입장에서 각 방안들을 살펴보겠습니다.

자사주 매각이나 소각을 통해 높일 수 있는 소액주주 지분 비중은 0.36% 정도입니다. 이 숫자가 더해지더라도 기존 소액주주 비중이 2.58%인 것을 감안하면 관리종목 해소 기준인 소액주주 비중 10%에는 미치지 못합니다.

대주주 감자를 통해 관리종목 지정을 피하려면 2,500만주 정도를 소각해야 합니다. 그렇게 되면 현재 주가 기준(23일 종가 기준)으로 봐도 1,600억원 넘는 돈이 공중분해 되는 거죠.

유상증자를 하게 되면 눈앞의 주가 하락은 어쩔 수 없지만 일반 투자자들이 갖게 되는 주식이 늘어나니 수급이 좋아지고, 그만큼 회사가 투자할 수 있는 돈도 늘어나 실적이 개선될 테니 장기적으로는 회사로서도 주주로서도 윈윈이라고 판단했다는 게 내부 관계자의 설명입니다.

사실 소액주주 지분 기준 미달 이슈는 전임 사장 시절부터 이베스트의 골칫거리였습니다. 관련법이 바뀐 게 2017년이었으니까요. 다만 지난해 10월까지는 매각 이슈가 있었기 때문에, 해결책을 내놓기 어려운 상황이었다는 거죠. 유야무야 했던 소액주주 지분율 제고 문제를 유상증자라는 방식으로 해결한 건 올해 3월 취임한 김원규 사장이 맞습니다. 주식의 대부분을 보유하고 있는 대주주에게 '당장은 지분가치가 희석되겠지만, 유상증자를 통해 들어오는 자본을 온전히 재투자해서 장기적으로는 주주 가치를 높일 수 있다'는 논리로 이들의 마음을 움직였다는 겁니다.

그런데 이미 주가하락을 예견했던 상황에서, 신임 사장이 대주주에게 발휘했던 리더십을 소액주주들의 불만을 잠재우는 일에도 쓸 여지는 없었을까요. 회사의 논리를 주주가 항의한 뒤에야 답변으로 내놓기 전에 먼저 나서서 기존 투자자들을 충분히 이해시키는 방법을 고려해 볼 수는 없었을까요. 이 회사는 주주를 소중히 생각한다는 시그널을 보낼 수 있는 기회와 방법이 정말 없었을까요.

애초에 유상증자라는 카드가 나온 것도 소액주주가 너무 적었기 때문이니 말입니다. 만약 그랬다면 어땠을까요. 김원규 사장으로서는 미담거리를 하나 놓친 셈입니다.

수는 적지만 기존 소액주주는 회사의 주주일 뿐 아니라 이베스트투자증권에게는 손님입니다. 이베스트투자증권이라는 종목에 투자한 사람들은 주식 거래도 이 회사를 통해 할 가능성이 높겠죠. 그래서 기존 주주 불만은 고객 불만이라는 리스크로 이어질 수도 있어 보입니다. 포털에 이베스트를 검색하면 연관검색어로 '이베스트 탈퇴'가 뜨는 것이 허투루 보이지 않는 요즘입니다.

춘추전국시대, 연나라는 보잘것 없었던 작은 인재를 곁에 있다는 이유로 후하게 대우해 더 빛나는 인재를 모았고 끝내는 뜻을 이뤘습니다.

자기자본 1조원, 발상의 전환을 강조하며 신임 사장 취임과 함께 큰 목표를 세운 이베스트투자증권의 유상증자가 계획대로 장기적인 주주가치 제고로 이어질지 지켜볼 일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