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로운 기술을 연습하고 형성된 기억을 뇌에 오래 남게 하려면 장시간의 휴식이 필요하다는 게 의학계의 정설이었다. 밤에 숙면하는 것도 그런 휴식에 해당한다.
이런 과학자들의 오랜 믿음에 반하는 연구결과가 나왔다. 뇌는 조금 전 연습한 새로운 기술에 관한 기억을 짧은 휴식을 통해 강화하고 축적한다는 것이다.
12일(현지시간) 온라인(www.eurekalert.org)에 배포된 보도자료에 따르면 미국 국립보건원(NIH) 산하 '국립 신경 장애·뇌졸중 연구소(NINDS)'의 선임연구원인 레오나르도 코헨 박사팀은 이런 내용의 연구보고서를 저널 '커런트 바이올러지(Current Biology)'에 발표했다.
코헨 박사는 "새로운 것을 배우려면 반복해서 연습해야 한다고 모든 사람이 생각한다. 그런데 사전에 짧은 휴식을 반복하는 것이 연습 못지않게 학습에 중요하다는 걸 발견했다"고 말했다. 코헨 박사는 수석저자로 이 연구에 참여했다.
실질적으로 연구를 주도한 사람은 '코헨 실험실'의 연구원인 마를레네 뵌스트루프 박사다. 그는 '학습과 기억' 실험에 참여한 피험자들의 뇌파 영상기록을 관찰하다가, 과연 작업 기억이 뇌에 굳어지려면 장시간의 휴식이 필요한지 의문을 갖게 됐다.
뵌스트루프 박사는 건강한 오른손잡이 피험자들에게 왼손 타이핑을 지시하고 고감도 자기 뇌파검사법(magnetoencephalography)으로 뇌파를 관찰했다.
피험자들은 긴 원뿔형 스캐닝 캡을 쓰고 컴퓨터 스크린에 나타나는 숫자를 10초간 최대한 많이 타이핑한 뒤 10초간 휴식하는 과정을 36회 반복했다.
피험자가 숫자를 올바르게 치는 속도는 처음 몇 차례 시도에서 극적으로 향상됐지만 대략 11번째에 이르면 더 좋아지지 않고 수렴하는 경향을 보였다.
여기까지 결과는 예상을 크게 벗어나지 않았지만, 특이한 뇌파 패턴이 관찰됐다. 타이핑할 때보다 중간 휴식 때 뇌파에 훨씬 더 많은 변화가 나타난 것이다.
연구팀이 뇌파검사 결과를 분석해 내린 결론은 두 가지다.
먼저, 피험자의 수행 능력은 타이핑을 칠 때가 아니라 짧은 휴식 시간에 주로 향상된다는 것이다. 결국 하루 동안 좋아진 타이핑 능력은, 매번 중간 휴식 시간에 향상된 수행 능력이 축적된 결과라고 한다.
게다가 하루 연습이 끝났을 때 관찰된 당일의 수행 능력 향상도는, 다음 날 아침 다시 연습을 시작할 때 측정한 것보다 훨씬 컸다. 이는 연습 전에 반복된 짧은 휴식이, 학습에선 연습에 못지않게 중요한 역할을 한다는 걸 시사한다.
두 번째 결론은, 연습으로 형성된 기억도 휴식할 때 뇌에서 강해진다는 것이다. 특히 휴식 도중 수행 능력이 향상되면, 알파파보다 베타파의 파동이 변화를 보였다. 베타파는 주파수 14∼30Hz의 불규칙한 뇌파로, 과제에 집중하거나 흥분할 때 나타난다.
베타파의 변화는 주로, 행동계획의 제어에 관여하는 것으로 알려진 우뇌 전두엽과 두정엽을 연결하는 신경망에서 관찰됐다. 이런 뇌파 패턴은 수행 능력과 연관된 유일한 것으로 휴식 중에만 나타났다.
코헨 박사는 "뇌졸중 환자를 재활 치료할 때뿐 아니라 정상적인 사람이 피아노 치는 걸 배울 때도, 휴식 시간의 간격과 배열을 최적화하는 게 중요하다는 걸 시사한다"라면서 "하지만 다른 형태의 학습과 기억형성에 이번 연구결과를 적용할 수 있는지는 아직 알 수 없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