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 대학병원이 한국행 권유"…간경화 투병 미국인, 한국 의료진이 살렸다

입력 2019-02-25 21:13


간경화를 앓던 미국인 환자가 한국의 병원에서 생체간이식 수술을 받고 두 달 동안의 치료 끝에 건강을 되찾았다.

더욱이 이 환자는 미국 유명 대학병원 의료진의 권고로 한국행 치료를 선택한 것으로 알려져 세계적인 국내 의료기술 수준을 보여줬다는 평가가 나온다.

주인공은 미국 실리콘밸리에서 검색엔진 소프트웨어 엔지니어로 일하던 찰스 카슨(CHARLES CARSON·47)씨.

카슨씨는 2011년 몸이 좋지 않아 병원을 찾았다가 이유를 알 수 없는 간경화와 골수 이형성 증후군을 차례로 진단받았다. 골수 이형성 증후군은 조혈모세포 이상으로 혈소판, 백혈구 등의 혈액세포가 줄어 면역기능 이상, 감염, 출혈을 일으킬 수 있고, 만성 백혈병으로 악화하는 매우 위험한 질환이다.

그는 미국 스탠퍼드 대학병원에서 골수 이형성 증후군 항암치료를 10회 이상 진행했지만 간 기능이 더 나빠져 더는 치료를 진행할 수 없게 되자, 미국 장기이식 네트워크(UNOS)에 뇌사자 간이식 대기자로 이름을 올려둔 상태였다.

그러나 긴 대기 시간이 문제였다. 뇌사자 간이식을 받게 될지 불확실한 가운데 속절없이 시간만 흘러갔고 간 질환으로 인해 골수 이형성 증후군에 대한 항암치료를 이어가지 못해 카슨씨의 상태는 갈수록 나빠졌다.

카슨씨가 건강을 되찾는 유일한 길은 살아있는 사람의 간 일부를 기증받는 생체간이식이었다. 하지만 상대적으로 생체간이식 경험이 적은 미국의 모든 간이식센터에서는 동반된 골수 질환 때문에 수술 후 회복을 장담할 수 없다며 수술을 꺼렸다. 자칫 수술 후 합병증 때문에 환자 상태가 급격히 악화할 것을 두려워한 것이다.

이에 스탠퍼드 대학병원 의료진은 카슨씨에게 "생체간이식은 미국보다 한국이 훨씬 앞서 있다"며 서울아산병원을 추천했다. 카슨씨 스스로도 생체간이식 수술 건수와 생존율 등을 직접 찾아본 뒤 한국행을 결심했다. 스탠퍼드 의료진은 한편으로 서울아산병원 간이식·간담도외과 송기원 교수에게 직접 메일을 보내 환자를 부탁하는 성의를 보였다.

결국 카슨씨는 작년 11월 중순 처음 한국을 찾아 진료를 받은 뒤 12월 19일에 아내(47)의 간을 이식받았다. 의료진은 아내의 복부에 10㎝ 정도의 작은 절개부위만 내어 흉터와 합병증 가능성을 최소화한 뒤 아내의 간 62%를 절제해 카슨씨에게 이식했다.

송기원 교수는 "카슨씨의 경우 간경화에 따른 잦은 복막염으로 유착이 심했고, 간 문맥 혈전과 많은 부행혈관들이 발달해 있어 고도의 집중력과 고난도의 수술 기술을 필요로 했다"고 당시를 떠올렸다.

실제로 통상 10시간 안팎으로 걸리는 다른 생체간이식 수술과 달리 카슨씨의 수술은 18시간이 걸렸으며, 혈소판 16팩과 혈액 20팩 등 엄청난 양의 수혈이 이뤄졌다.

카슨씨는 수술 후에도 위험한 순간들이 종종 찾아와 오랜 기간 중환자실에 머물러야 했지만, 고비를 넘기고 2월 중순부터는 일반병실에서 아내와 함께 지냈다. 그런 그가 25일 미국으로 돌아갔다.

송 교수는 "이제 카슨씨는 스탠퍼드 대학으로 돌아가 골수 이형성 증후군에 대한 항암치료를 다시 받으면서, 골수이식 치료를 계획할 예정"이라며 "우리 의료진을 믿고 치료 과정에 잘 따라준 환자와 그 가족들 덕분에 좋은 결과를 얻을 수 있었다"고 말했다.

이승규 서울아산병원 간이식·간담도외과 석좌교수는 "미국 10대 병원으로 손꼽히는 스탠퍼드 대학병원이 우리나라 의료 수준을 인정해주고 환자를 믿고 맡겼다는 사실이 고무적"이라며 "앞으로도 생체간이식을 받아야 하는 전 세계 환자를 위해 끊임없이 연구하겠다"고 다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