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관 부딪힌 브렉시트…‘B+EU’ 왜 급부상하나-[국제경제읽기 한상춘]

입력 2019-01-28 09:38
‘B-EU’ 이어 ‘F-EU’까지…새 통합모델 모색


브렉시트안이 영국 의회 표결에서 큰 표 차로 부결됐다. 브렉시트(Brexit)란 ‘Britain(영국)’과 Exit(탈퇴)’의 합성어로 유럽 통합(EU)에서 영국의 탈퇴를 의미한다. 일부 우려대로 하드 브렉시트, 즉 질서 없는 브렉시트가 될 경우 한국을 비롯한 세계 경제와 국제금융시장에 악재가 될 가능성이 높다.

시한은 올해 3월 29일까지다. 벌써부터 시한을 올해 7월까지 연기해야 한다는 시각이 고개를 들고 있으나 한동안 브렉시트 부결 이후 전개 상황을 지켜보면서 세계인이 숨죽인 과도기를 거칠 가능성이 높다. 그만큼 EU는 세계경제와 국제금융질서 형성 과정에서 커다란 획을 그어 왔기 때문이다.



◇ 브렉시트 이후: 영국 경제 2030년까지 6% 위축

유럽 통합은 단일 세계경제 현안 중 역사가 가장 길다. 자유사상가에 의해 ‘하나의 유럽구상’이 처음 나온 20세기 초를 기점으로 한다면 110년, 이 구상이 처음 구체화된 1957년 로마 조약을 기준으로 한다면 60년이 넘는다. 한 마디로 유럽 국민의 피와 땀이 맺히면서 어렵게 마련된 것이 바로 유럽통합이다.

두 가지 경로로 추진돼 왔다. 하나는 회원국수를 늘리는 ‘확대(enlargement)’ 단계로 초기 7개국에서 28개국으로 늘어났다. 다른 하나는 영국은 가담하지 않았지만 회원국 간 관계를 끌어올리는 ‘심화(deepening)’ 단계로 유로화로 상징되는 경제통합(EEU)에 이어 정치통합(EPU), 사회통합(ESU)까지 달성해 간다는 원대한 구상이었다.

하지만 유럽통합헌법에 대한 유로존 회원국의 동의 과정에서 예상치 못했던 주권 문제로 ‘심화’ 단계가 먼저 난관에 부딪쳤다. 오히려 EEU에 잠복됐던 불안요인인 7년 전 발생했던 재정위기가 터지면서 누적돼 왔던 불안요인이 한꺼번에 터졌다. 유럽통합 과정에서 영국의 역할을 감안할 때 브렉시트가 실현되면 ‘확대’ 단계도 커다란 시련이 예상된다.

다른 회원국 탈퇴의 단초가 될 가능성이 높다. 모든 회원국은 경기 침체 속에 난민, 테러 등이 겹치면서 유럽 통합에 신경 쓸 여유가 없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국수주의로 이기주의가 기승을 부리고 있다. 유럽재정위기를 겪으면서 유로존 탈퇴 문제로 한 차례 홍역을 치렀던 ‘PIGS(포르투갈·이탈리아·그리스·스페인)’가 동참할 가능성이 커 보인다.

분리 독립 운동도 거세질 것으로 예상된다. 영국의 스코틀랜드, 스페인의 카탈루나와 바스크, 북부 이탈리아, 네덜란드의 플랑드르, 우크라이나의 러시아와 근접한 동부 등이 가능성이 높은 지역이다. 회원국 탈퇴가 잇따르고 분리 독립 운동마저 일어난다면 유럽 통합은 붕괴되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영국 재무부는 브렉시트 이후 2030년까지 영국 경제가 6% 위축될 수 있다고 추정했다. 가구당 연간 4천 300파운드의 손실을 가져다주는 커다란 규모다. 국제협력개발기구(OECD)는 브렉시트가 가사화되면 영국 국내총생산(GDP)는 잔류했을 때와 비교해 2020년에는 3%, 2030년에는 5% 위축될 것으로 추정했다.



◇ 브렉시트 이후: 유럽 경제 1%대 추락

영국 이외 유럽 경제도 충격이 클 수밖에 없다. 브렉시트에 따라 올해 유럽 경제성장률이 1%대로 떨어질 것으로 내다보는 예측기관이 대다수다. 유로화 가치도 ‘1유로=1달러’ 등가 수준으로 떨어질 것으로 예상된다. 지난해 12월 양적완화(QE)를 종료한 마리오 드라기 유럽중앙은행(ECB)총재는 재투자는 유지하고 금리인상은 상당기간 지연시킬 뜻을 밝혔다.

탈퇴와 분리 독립은 쉽지 않은 문제다. 1975년 치러졌던 영국의 국민투표에서 브렉시트가 부결됐다. 1995년 캐나다 퀘백과 2014년 스코틀랜드 분리 독립 투표도 여론조사 결과와 달리 반대가 더 많이 나왔다. 미국도 실리콘밸리가 있는 캘리포니아의 분리 요구가 나온 지 오래됐으나 연방 정부 차원에서 검토조차 이뤄지지 않고 있다.



영국 탈퇴 여부와 관계없이 EU 앞날은 ‘현 체제 유지(Muddling Through)’, ‘붕괴(Collapse)’, ‘강화(Bonds of Solidarity)’, ‘질서회복(Resurgence)’ 등 네 가지 시나리오가 예상된다. 유럽재정위기, 브렉시트 등으로 노출된 문제를 회원국이 정치적 명분과 경제적 이익 간 이견을 좁히지 못하면 최악의 상황을 맞을 수 있다.

조셉 바이너(J. Viner) 등의 연구에 따르면 유럽처럼 경제발전단계가 비슷한 국가끼리 결합하면 무역창출 효과가 무역전환 효과보다 커 역내국과 역외국 모두에게 이득이 된다. 통합에 가담하는 것이 좋다는 의미다. 앞으로 유럽통합은 회원국의 현실적인 제약요건을 감안해 새로운 방향이 모색될 것으로 예상된다.

◇ 새 통합모델 ’B-EU(Britain+EU)’ 급부상

의회 표결 이후 영국과 다른 회원국이 차선책으로 ’B-EU(Britain+EU)’ 방안을 검토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B-EU’는 영국을 EU에 잔존시키면서 난민, 테러 등에 대해 자체적인 해결 권한을 갖는 방식이다. 이때 영국은 EU의 구속에 얽매이지 않으면서 자국 현안을 풀어갈 수 있어 ’브렉시트‘보다 더 현실적인 방안이다.

‘B-EU’가 선택된다면 프랑스, 벨기에 등과 같은 테러 피해로 국수주의 움직임이 거센 회원국이 이 방식을 따라갈 가능성이 높다. 특히 ‘B-EU’에 이어 ‘F-EU(France+EU)’까지 적용될 경우 유로존에 이어 EU 차원에서도 ‘이원적인 운용체계'가 공식적으로 검토될 것으로 예상된다. 유럽 통합 앞날에 ’변곡점‘이 될 가능성이 높다.



이원적인 운용체계는 유로화가 도입위기 이전에 운영됐던 ‘유럽조정메커니즘(ERM:European Realignment Mechanism)’과 원리는 동일하다. 독일 등과 경제여건이 좋은 회원국(Good Apples)은 경제수렴조건을 보다 엄격하게 적용하고, 그리스 등과 같은 나쁜 회원국(Bad Apples)은 느슨하게 운영됐다.

유로존의 기본 골격도 보완될 가능성이 높다. EEU 효과를 극대화하려면 통화 통합과 재정 통합을 동시에 달성해야 한다. 주무 부서로는 유럽중앙은행(ECB)과 가칭 ‘유럽재정안정기구(EFSM:European Fiscal Stabilization Mechanism)’, 상징물로는 유로화와 유로본드 간 ‘이원적 매트릭스' 체제를 갖춰 나갈 것으로 예상된다.

‘그래도 지구는 돈다’. 이탈리아 천문학자와 물리학자인 갈릴레오 갈릴레이가 극한 상황에서 끝까지 소신을 굽히지 않고 던진 말 한 마디가 먼 훗날 높게 평가받으면서 '지동설‘이 확고해 졌다. 브렉시트 등으로 유럽통합 앞날이 당장은 어두워 보이지만 그 속에서 움트고 있는 새로운 통합의 싹을 투자자는 읽어야 나중에 좋은 결과를 기대해 볼 수 있다.

한상춘/한국경제신문 객원논설위원 겸 한국경제TV 해설위원(scha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