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 하원이 15일(현지시간) 열린 승인투표(meaningful vote)에서 브렉시트(Brexit) 합의안을 부결시켰다.
영국 하원의원 634명은 이날 오후 의사당에서 정부가 유럽연합(EU)과 합의한 EU 탈퇴협정 및 '미래관계 정치선언'을 놓고 찬반 투표를 벌였다.
투표 결과 찬성 202표, 반대 432표로 합의안은 230표차로 부결됐다.
영국 의정 사상 정부가 200표가 넘는 표차로 의회에서 패배를 기록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기존에 가장 큰 부결 표차는 1924년 10월 당시 노동당의 램지 맥도널드 총리가 기록한 166표다.
이번 승인투표에서 찬성 202표는 보수당 196표, 노동당 3표, 무소속 3표 등이었다.
반대 432표는 노동당 248표, 보수당 118표, 스코틀랜드국민당(SNP) 35표, 자유민주당 11표, 북아일랜드의 연방주의 정당인 민주연합당(DUP) 10표, 웨
일스민족당 4표, 녹색당 1석, 무소속 5표 등으로 집계됐다.
집권 보수당 의원 중 118표가 테리사 메이 총리의 합의안에 반대표를 던졌지만 제1야당 노동당 의원 중 합의안을 지지한 이는 3명에 그쳤다.
앞서 영국과 EU는 지난해 11월 브렉시트 전환(이행)기간, 분담금 정산, 상대국 국민의 거주권리 등에 관한 내용을 담은 585쪽 분량의 EU 탈퇴협정에 합의한 데 이어, 자유무역지대 구축 등 미래관계 협상의 골자를 담은 26쪽 분량의 '미래관계 정치선언'에도 합의했다.
양측은 지난 11월 25일 벨기에 브뤼셀에서 열린 유럽연합(EU) 특별 정상회의에서 합의안에 공식 서명하고 비준동의 절차에 착수했다.
브렉시트 합의안은 영국과 EU 양측 의회에서 모두 비준동의 절차를 거쳐야 하는데, 특히 영국은 의회의 통제권 강화를 위해 비준동의 이전에 정부가 EU와의 협상 결과에 대해 하원 승인투표를 실시하도록 했다.
당초 승인투표는 지난달 11일 예정됐으나 부결 가능성을 우려한 테리사 메이 총리가 이를 연기했다.
메이 총리는 이후 정치권 설득에 총력을 기울였지만 결국 합의안 부결을 막아내지 못했다.
승인투표 부결 발표 직후 제1야당인 노동당의 제러미 코빈 대표는 정부 불신임안을 제출했다고 밝혔다.
메이 총리는 16일 정부 불신임안에 대해 의원들이 논의할 기회를 갖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공영 BBC 방송은 16일 오후 7시께 정부 불신임안 표결이 진행될 것으로 보인다고 보도했다.
영국 '고정임기 의회법'(Fixed-term Parliaments Act 2011)에 따르면 정부 불신임안이 하원을 통과하고 다시 14일 이내에 새로운 내각에 대한 신임안이 하원에서 의결되지 못하는 경우 조기총선이 열리게 된다.
조기총선은 25 회기일 내에는 열릴 수 없다.
메이 총리는 만약 의회가 정부에 대한 신임을 확인한다면 보수당 내 동료 의원, 보수당과 사실상 연립정부를 구성하고 있는 민주연합당(DUP)은 물론 의회 내 각당 지도부와 함께 합의안 통과를 위해 무엇이 필요한지를 논의하겠다고 말했다.
만약 이같은 논의를 통해 EU와 협상 가능하면서도 의회의 충분한 지지를 얻을 수 있는 방안이 도출되면 이를 EU와 논의하겠다고 설명했다.
아울러 최근 의회에서 가결된 의회 의사일정안(business motion) 개정안을 존중, 이날 승인투표 부결일로부터 3 개회일 이내인 오는 21일까지 이른바 '플랜 B'를 제시하겠다고 했다.
브렉시트 협상 상대방인 EU는 이날 합의안 부결 소식이 전해지자 영국의 EU 잔류를 촉구하는 한편, 최악의 상황에 대한 대비를 강화하겠다는 입장을 나타냈다.
도날트 투스크 EU 정상회의 상임의장은 이날 내놓은 성명에서 "협상이 불가능하고, 아무도 '노 딜'을 원하지 않는다면 궁극적으로 유일한 긍정적인 해법이 무엇인지 말할 용기를 누가 가질 것인가"라고 질문을 던지면서 영국의 EU 잔류를 우회적으로 촉구했다.
반면 EU 행정부 격인 집행위원회의 장클로드 융커 위원장은 "오늘 저녁 투표 결과로 영국이 혼란스럽게 EU를 떠날 위험이 더 커졌다"며 "우리가 원하지 않는 일이 발생한 만큼 EU 집행위는 EU가 (비상상황에) 충분히 대비할 수 있도록 비상대책을 계속 추진할 것"이라고 말했다.
아일랜드 정부는 영국 의회 표결 결과에 대해 유감 입장을 밝혔다.
아일랜드 정부는 "여전히 질서 있는 브렉시트를 위해서는 합의안에 대한 비준이 최선의 방법이라고 믿는다"면서도 "'노 딜' 브렉시트에 대한 대비를 강화해 나갈 것"이라고 강조했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