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 규제에도 불구하고 우리나라 국내총생산(GDP) 대비 가계부채 증가속도가 세계 2위 수준으로 빠르고 가계 빚 부담은 더 커지고 있다.
6일 국제결제은행(BIS)에 따르면 작년 2분기 말 한국의 GDP 대비 가계부채 비율은 96.0%였다.
관련 통계가 있는 43개국 가운데 한국은 7위로 상위권이었다. 1위는 스위스(128.8%), 2위는 호주(121.3%), 3위가 덴마크(117.0%) 순이었다.
가계부채 비율 상승 속도는 한국이 최상위권이다.
GDP 대비 가계부채 비율은 전 분기보다 0.8%포인트 상승해서 중국(1.0%포인트)에 이어 두 번째로 오름폭이 컸다.
1년 전인 2017년 2분기와 비교한 상승 폭은 2.4%포인트로 중국(3.4%포인트), 덴마크(2.9%포인트)에 이어 3위였다.
정부 대출규제 완화로 가계부채가 본격 증가하기 시작한 4년 전과 비교하면 14.0%포인트 상승했다. 중국(15.5%포인트), 노르웨이(14.7%포인트)에 이어 역시 3위를 차지했다.
정부가 2017년 8·2 부동산 대책을 필두로 대출 심사를 강화하는 내용의 가계부채 관리 대책을 쏟아낸 데다 한국은행이 기준금리 인상 카드까지 꺼내 들며 가계부채 증가세는 둔화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다른 나라에 비해서 경제 성장률보다 부채가 불어나는 속도가 더 빠른 것이다.
금융기관 대출금, 신용카드값까지 포함해 가계부채 총량을 보여주는 가계신용은 전년 동기 대비 증가율이 2015년 3분기∼2017년 2분기까지 두 자릿수에 달했다가 작년 1분기에는 8.0%, 2분기에는 7.5%까지 떨어졌다.
그러나 최근 명목 경제 성장률(4∼5%대)에 비해서는 훨씬 빠르다.
가계부채 증가속도가 감속하는 추세지만 가계의 빚 상환 부담은 가중하고 있다.
한국의 가계 부문 총부채원리금상환비율(DSR)은 작년 2분기 말 12.4%로 역대 최고였다.
DSR는 특정 기간에 갚아야 할 원리금이 가처분소득과 견줘 어느 정도인지를 나타내는 수치로, 가계부채의 위험 지표로 해석된다.
DSR가 높을수록 빚 상환 부담이 크다는 뜻이다.
한국의 DSR는 관련 통계가 있는 17개국 중 6위였다.
그러나 전 분기 대비 DSR 상승 폭은 0.2%포인트로 1위였다.
DSR 추이로 보면 한국은 주요국 흐름에 역행하고 있다.
한국을 제외하고 전 분기 대비 DSR가 상승한 곳은 캐나다(0.1%포인트)뿐이다. 나머지는 변함없었거나 하락했다.
시계를 1년으로 확장해도 한국의 DSR 상승 폭(0.5%포인트)은 17개국 중 가장 컸다.
DSR이 상승한 국가는 한국을 포함해 5개국으로 절반이 채 안됐다.
DSR 상승은 가계부채 규모가 커지고 금리가 오르면서 원리금은 불어나는데 소득은 그만큼 늘지 않는다는 의미다.
통계청에 따르면 가계의 월평균 처분가능소득의 전년 동기 대비 증가율은 2015년 3분기 이래로 2%를 넘지 못하고 있다.
작년 2분기에도 1.4%에 그쳤다.
반면 작년 2분기 예금은행의 잔액 기준 가계대출 금리는 연 3.54%로 2015년 2분기(3.63%) 이후 3년 만에 가장 높았다.
정부는 가계부채 증가율을 계속 낮춰서 중장기적으로는 가계부채 증가율을 명목 GDP 성장률 수준으로 맞출 계획이다. 이 경우 GDP 대비 가계부채 비율은 변하지 않게 된다.
가계부채 증가세가 정부 바람대로 둔화할지는 의견이 갈린다.
이창선 LG경제연구원 수석연구위원은 "부동산 가격 상승 기대가 꺾인다면 주택 구입과 관련한 대출 수요가 줄어들면서 가계부채 증가세가 더 주춤해질 수 있다"고 설명했다.
반면 성태윤 연세대 교수는 "가계부채는 경기 상황과 관련이 많은데 경기가 어려워지면 사업·생계가 어려워져 대출 수요가 늘어날 수 있다"며 "가계부채 총량이 늘어나지 않더라도 경기가 나빠지면 가계가 느끼는 실제 부채 상환 부담은 더 커질 것"이라고 말했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