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해 보는데 보험 깬다'..중도 해약금 사상 최대치

입력 2018-12-26 08:18
경기 침체의 영향으로 보험을 담보로 빚을 내거나 중도 해약하는 사람이 늘고 있다. 손해를 보면서까지 보험을 깬다는 건 그만큼 가계 형편이 어려워졌다는 방증이다.

26일 금융당국 및 생명보험협회에 따르면 9월 말 기준 25개 생보사에서 가입자에게 내어준 돈은 20조3천878억원이었다. 보험을 깬 해지 환급금(19조1천18억원)과 보험료를 내지 못해 발생한 효력상실지급금(1조2천860억원)을 포함한 수치다.

지난해 같은 기간과 비교해 2조7513억원이나 늘었다. 이 추세대로라면 올해 보험 해약으로 지급하는 돈이 25조원을 넘어서 보험사들이 통계를 내기 시작한 이후 사상 최대치를 기록할 것으로 예상된다.

생보사의 경우 2000년대 초반 연간 해지 환급금이 12조~13조 원대였다가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당시 17조 원대로 크게 늘었다. 이후 다시 줄어들었다 몇 년 전부터 급격히 불어나는 추세다.

보험은 만기까지 계약을 유지하지 않고 중간에 깨면 가입자가 무조건 손해를 보는 구조다. 그런데도 해약이 늘어나고 있는 것은 당장 필요한 생활비 부담에 허덕이는 가계가 많아졌다는 의미로 해석된다.

금융감독원 관계자는 "마지막 보루인 보험에까지 손을 댄다는 것은 저축할 여력이 없어졌다는 것을 넘어 경기 적신호로 해석할 수 있다"면서 "해약 원인을 정확하게 규정할 순 없지만, 경기 침체가 영향이 있다고 볼 수 있다"고 말했다.

보험의 속성상 중도해약 시 은행 예·적금이나 펀드 등 타 금융자산을 해약했을 때보다 소비자가 떠안아야하는 부담이 훨씬 크다. 이자는 물론 원금 손실을 보는 경우도 허다하다.

원금까지 손해를 보면서 보험을 해지하는 이유는 가계소득보다 늘어난 빚 부담이 가장 큰 요인이다. 가계대출 비중이 높다 보니 금리 상승이 대출이자 부담을 늘리고 가계경제를 악화시킨 것으로 분석된다.

여기에 정부의 대출규제 강화로 은행 등 금융회사에서 돈 빌리기가 어려워지면서 당장 생활비가 없어 미래를 위한 자금을 허무는 상황까지 벌어지는 것이다.

생보협회 관계자는 "생명보험 계약은 사람의 일생을 담보하는 장기금융상품으로 중도 해지 시 소비자 피해가 발생하지만, 최근 금리 상승 등의 어려움으로 생명보험 계약의 중도 해지가 계속 증가하는 추세"라고 말했다.

보험금을 담보로 돈을 빌리는 약관대출도 증가하고 있다.

9월 말 기준 생보사의 약관대출 잔액은 46조290억원으로 전년동기(43조3천320억원) 대비 2조6천970억원 증가했다.

약관대출의 대출한도는 보통 해약환급금의 70~80% 선인데, 심사가 까다롭지 않고 총부채원리금상환비율(DSR) 규제도 받지 않아 최근 더욱 활성화되는 분위기다.

다만 보험 계약 당시 약속한 수익률에 가산 금리가 적용됨에 따라 연 10%대에 가까운 높은 금리가 적용된다.

보험사 관계자는 "보험해약이나 약관대출의 경우 생활비 등 급전이 필요해 이뤄지는 게 대부분으로 향후 국내외 시장 금리가 상승할 것으로 예상되면서 보험해약은 더욱 증가할 것으로 우려된다"며 "중도에 해지할 때 해약환급금이 없거나 납입보험료에 비교해 크게 적을 수 있어, 되도록 한 번 가입한 보험은 끝까지 유지하는 게 좋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