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성의 고리와 위성에 있는 물은 지구와 같은 종류인 것으로 나타났다. 다만 토성의 9번째 위성으로 가장 바깥에 있는 '포이베(Phoebe)'의 물은 전혀 달라 태양계 외곽 먼 곳에서 형성된 뒤 토성에 붙잡혀 있는 것으로 밝혀졌다.
미국의 비영리 연구단체인 '행성과학연구소(PSI)' 수석과학자 로저 클라크 박사가 이끄는 연구팀은 다른 행성의 물과 이산화탄소의 동위원소 비율을 측정하는 방법을 통해 토성 고리와 위성의 물이 예상 밖으로 지구의 물과 같다는 사실을 밝혀냈다.
동위원소는 원자 핵의 양성자 수는 같지만 중성자 수에 따라 달라진다. 중성자가 추가되면 원소의 질량이 늘어나고 이런 작은 변화는 행성이나 위성, 달의 형성에도 차이를 가져오게 된다.
물(H2O) 분자의 경우 수소 원자 2개와 산소 원자 1개가 결합해 만들어지는데, 수소 원자에 중성자가 결합하면 중수소(듀테륨ㆍD)가 되고 물 분자의 질량도 약 5%가량 증가하게 된다.
연구팀은 멀리 떨어져 있는 천체의 수소 원자 대비 중수소(D/H) 비율을 측정하는 방식을 이용해 토성과 위성에 발견되는 물의 특성을 분석했다.
현재 태양계 형성 모델은 D/H 비율이 태양계 안쪽보다는 바깥쪽이 훨씬 높은 것으로 설명하고 있다. 일부 모델은 토성의 D/H 비율이 지구보다 10배가량 높을 것으로 예측하기도 한다.
그러나 이번 연구 결과에서는 포이베 위성을 제외한 토성의 고리와 위성은 이 모델에 부합하지 않는 것으로 나타났다.
클라크 박사는 포이베 위성의 경우 D/H 비율이 태양계에 가장 높게 나타났는데, 이는 포이베가 토성보다 훨씬 더 바깥의 태양계 외곽 지역에서 형성됐음을 나타내는 것이라고 밝혔다.
포이베와 토성의 세 번째 위성인 '이아페투스(Iapetus)'의 카본-13과 카본-12(13C/12C) 비율을 조사한 결과에서도 이아페투스는 지구와 비슷하였지만, 포이베는 5배나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현재로서는 명왕성이나 해왕성 궤도 밖 태양계 끝의 카이퍼 벨트에 있는 천체의 얼음 표면에 대한 D/H 비율이나 13C/12C 비율 측정 자료가 없어 포이베 위성의 기원을 확인할 방법은 없다. 다만 태양계 훨씬 바깥에서 형성된 뒤 평형상태가 다른 천체의 인력에 의해서 교란되는 섭동(攝動) 현상에 의해 현재의 궤도로 끌려오게 된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연구팀은 토성 탐사선 카시니호에 탑재된 '가시광 및 적외선 분광기(VIMS)'를 이용해 얼음과 같은 고체의 D/H 비율을 측정했으며, 이 방법을 이용해 태양계 내 다른 천체의 D/H 비율도 측정할 수 있을 것으로 봤다.
특히 미국항공우주국(NASA)이 목성권에 보낼 탐사선 '유로파 클리퍼(Europa Clipper)'를 통해 얼음이 있는 목성의 4대 위성(이오·유로파·가니메데·칼리스토 등 갈릴레이위성)의 D/H 비율을 측정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했다.
토성권의 D/H 비율이 지구와 같다는 것은 태양계 안과 바깥의 물의 원천이 같다는 것을 의미하는데, 목성권 탐사를 통해 이를 확인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이런 사실이 확인된다면 태양계 안과 바깥의 D/H 비율 편차가 크지 않은 새로운 태양계 형성 모델을 개발할 필요가 있다고 연구팀은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