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여름 연이은 BMW 화재 사고로 시작된 자동차관리법 개정안, 이른바 '레몬법'이 자동차 제작사에 과도한 책임을 부과하는 내용을 담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이달 초 국회 국토교통위원회 박순자 의원이 대표 발의한 자동차관리법 일부개정안에는 '지속적인 화재 발생 등과 같은 자동차 결함이 의심되면 국토교통부 명령으로 자동차성능시험대행자가 자동차 제작사에 결함이 아님을 증명하는 자료를 요구할 수 있다'는 내용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또 자동차 제작사에 결함에 대한 적극적인 해명을 요구하는 내용이 담길 예정입니다.
문제는 제작사가 이를 입증하지 못하거나 관련 자료를 제출하지 않을 경우, 자동차가 결함이 있는 것으로 추정한다는 겁니다.
여기에 자동차 제조사는 최대 5배를 넘지 않는 범위에서 손해 배상책임을 진다는 내용도 담겨있습니다.
▲ '무죄추정 원칙' 벗어나
하지만 이러한 조항은 기존 법률체계에 대한 고려가 부족하고, 리콜을 위한 조건의 세밀함도 부족하다는 지적입니다.
형법의 관점에서 피고가 자신의 무죄를 입증하지 못하면 자동으로 유죄로 추정하는 것은 '무죄추정의 원칙'에 벗어난다는 겁니다.
나아가 제조사입장에서는 무엇을 시정해야 할지 모르는 상태에서 처벌을 피하기 위한 리콜에 맞닥뜨릴 위험도 있습니다.
업계에서는 명확한 결함 여부 규명 없이 결함이 있는 것으로 추정하게 되면 제조사와 소비자간 소송만 남발될 수 있다는 지적도 나옵니다.
▲이미 제조물 책임법 시행 중
이미 지난해 3월 강화된 제조물책임법 개정안이 통과돼 이번 개정안과 유사한 내용이 시행 중인 점도 지적 대상입니다.
강화된 제조물책임법은 피해자가 제조물을 정상적으로 사용하는 상태에서 손해가 발생했다는 사실만 증명하면, '해당 제조물의 결함으로 손해가 추정된다'고 명시하고 있습니다.
또 제조업자가 제품의 결함을 알면서도 적절한 조치를 취하지 않아 소비자의 생명과 신체에 중대한 손해가 발생한 경우, 손해의 최대 3배까지 징벌적 배상책임을 부과하는 조항도 있습니다.
이미 일반법인 제조물책임법을 통해 결함에 대한 제조사의 입증책임을 높인 법안이 시행 중임을 감안할 때, 2중 법안이라는 겁니다.
▲ 국제통상 마찰 우려도
또 이번 자동차관리법 개정안은 단지 국내에만 한정되는 문제가 아니라는 점도 한계점입니다.
대부분의 국가에서는 자동차 제조사가 해외에서 리콜이 실시되면 이를 본국에도 신고하도록 하고 리콜 여부 검토에 들어갑니다.
미국의 경우 5일 이내에 도로교통안전국(NHSTA)에 이를 신고해야 하며, 중국에서는 동일 유사 차종까지 질량국에 신고해야 합니다.
따라서 개정 추진 안에 따라 국내에서 리콜을 시행하면, 결함에 대한 명확한 규명도 없이 해외에 이를 신고해야 하는 상황이 발생할 우려가 있습니다.
국내는 물론 해외에서도 리콜과 손해배상 청구가 연쇄적으로 확산하고, 사업운영 차질과 손해를 입는 상황이 발생할 수 있는 겁니다.
입법이 이루어질 경우, 한국시장 점유율이 높은 벤츠와 BMW, GM 등 독일과 미국 브랜드 중심으로 한국에 통상이슈를 제기할 가능성도 있습니다.
▲ 리콜에 대한 명확한 기준부터 잡아야
전문가들은 명확한 리콜 규정 마련이 먼저 이루어지고 처벌 조항이 뒤따라야한다고 말합니다.
이들은 최근 문제가 됐던 일부 자동차업체들의 결함 은폐, 늑장 리콜의 원인은 애매한 현행 리콜 규정 때문이라고 지적합니다.
현행 자동차관리법에 따르면 자동차 리콜은 ①자동차 안전기준에 적합하지 않거나 ②부품 안전기준에 적합하지 않거나 ③안전운행에 지장을 주는 등의 결함이 있는 경우에 제조사가 자발적으로 시행하도록 규정 중입니다.
문제가 되는 3번째 조항, '안전운행에 지장을 주는 등의 결함'은 불명확하기 때문에 제작사들이 자발적 리콜을 결정하기 어렵다는 겁니다.
따라서 제작사가 리콜 여부를 정확하게 판단할 수 있는 수치나 기준이 제시된 법안이 먼저 마련되면, 정확한 판단도 뒤따를 것이라고 전문가들은 내다봤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