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앵커> 재건축 사업 기간을 줄이기 위해 신탁방식 재건축을 고민하는 분들은 주의하셔야 할 것 같습니다.
신탁사와 주민들 사이를 연결하는 기구인 이른바 '정비사업위원회'가 법망을 피해 허술하게 운영되면서 피해를 호소하는 주민들이 생겨나고 있습니다.
이근형 기자의 보도입니다.
<기자>
서울 신길10구역 남서울 아파트의 재건축 시공사 선정비용 내역입니다.
조합원 설명회 두 번에 지출한 비용이 무려 1억원에 달합니다.
총회 사회자에게 300만원의 고가를 지급하는가 하면, 시가 1만원도 안되는 키보드와 마우스를 개당 6만원도 넘는 가격으로 구매한 기록도 있습니다.
모두 재건축 신탁업체와 조합원 사이를 연결해주는 ‘정비사업위원회’가 집행한 내역입니다.
[인터뷰] 신길10구역 재건축 조합원 A씨
“총회비용이 4,500만원 들었고 해군호텔 비용이 1억이 들었어요. 그런데 저희가 총회 열어보니 500만원이면 됐거든요. 예를들면 스티커 저희가 1천장을 주문했을 때 8만원이었는데 위원장은 800장 주문하는데 40만원이었어요”
주민들의 민원이 잇따르고 있지만 해당 자치단체는 큰 일이 아니라는 입장입니다.
정비사업위원회의 역할이 적고, 주민 의사를 반영해 대부분 결정이 이뤄지고 있다는 겁니다.
[인터뷰] 영등포구 관계자
“돈을 지불하거나 계약을 하거나 뭔가 사업을 하는건 전부 신탁사가 하는거지 중간대표기구가 뭘 하는건 없어요. 재건축 사업을 하는데 주민의견을 전혀 무시하고 사업시행자 혼자 엉뚱한 사업을 할 수는 없잖습니까”
하지만 주민들은 정비사업위원회의 비용지출과 권한이 적지 않다고 지적합니다.
매달 인건비 등의 명목으로 2천만원이 넘는 돈을 받아가는 데다, 각종 협력업체 선정이나 설계안 변경에 있어 최종 승인권한을 갖고 있다 보니 사업을 고의로 지연시키는 일도 어렵지 않다는 설명입니다.
[인터뷰] 신길10구역 재건축 조합원 B씨
“총회를 열게되면 안건이 필요하잖아요. 안건에 대해 위원장하고 위원회 사람들이 20명 되는데 그분들끼리 결정해서 안건을 올리는 거에요. 저희가 아무리 얘기해봐도 자기들이 싫다면 안되는 거죠”
신탁업체 역시 주민 의견이 제대로 반영되지 못했다는 점을 문제로 지적했습니다.
[인터뷰] 한국토지신탁 관계자
“기본적으로 소통을 제대로 못했던 게 문제가 된 거고요. 수렴하는 역할을 잘만 했었으면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을텐데…”
재건축 사업의 크고 작은 의사결정을 담당하는 정비사업위원회.
조합의 돈으로 퇴직연금과 보너스까지 받고 있는 조직이지만, 위원회 설립과 운영에 대한 법적인 근거는 어디에도 없었습니다.
재건축 사업을 규정하는 도시 및 주거환경정비법을 보면, 주민과 신탁사의 중간조직에 대한 어떠한 조항도 담겨있지 않습니다.
이렇다보니 자치단체의 통제를 받지 않아도 되고, 예산이 투명하게 공개되는 'e조합시스템'에서도 빗겨나 있는 겁니다.
사태가 불거지자 해당 정비사업위원장은 사의를 밝히면서도 관련 의혹들은 부인했습니다.
[인터뷰] 신길10구역 정비사업위원장
“신탁사에서 모든걸 결정 다 해서 ‘이렇게 결정됐습니다. 통과시켜주세요.’ 그러면 정비사업 위원회 열어서 통과시켜주는 거밖에 없어요.경리장부에 제가 관여할 이유도 없고 저희들도 월급쟁이고.. 나머지는 경리가 알아서 다 하는데 내가 뭐…”
조합원들은 이미 위원회 간부가 사의를 표하고 시간을 끌다 사의를 다시 번복한 전례가 있다며 소송을 준비하고 있다고 밝혔습니다.
한국경제TV 이근형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