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러부채 만기가 돌아온다…다음 금융위기 어디서 발생하나 [국제경제읽기 한상춘]

입력 2018-09-03 09:47
수정 2018-09-07 09:44


글로벌 금융위기가 발생한지 10년이 됐다. 1980년대 후반 선진국 주식시장(블랙 먼데이), 1990년대 후반 신흥국 통화시장(아시아 외환위기), 2000년대 후반 선진국 주택시장(서브 파라임 모기지 사태)에서 금융위기가 발생한 점을 감안하면 2010년대 후반 금융위기 후보지로 신흥국 상품시장이 지목돼 왔다.

지난 3월 이후 베네수엘라, 아르헨티나 등 중남미 국가에 이어 이란, 터키 등 중동 국가에서 잇달아 외자이탈에 시달리면서 금융위기 조짐이 좀처럼 누그러지지 않고 있다. 이달 들어 아르헨티나가 국제통화기금(IMF)에 긴급 구제금융을 신청하는 등 오히려 악화되는 분위기다. 모두 상품가격에 민감한 신흥국이라는 점이다.







◇ 계속되는 신흥국 위기...달러부채 만기 도래

가장 큰 이유는 지난 10년간 늘어난 달러 부채 만기가 돌아오는 시기에 미국 중앙은행(Fed)의 금리인상과 맞물리면서 원리금 상환부담이 급증하고 있기 때문이다. 금리차와 환차익을 겨냥해 움직이는 캐리 자금도 네거티브 트레이드 여건이 형성돼 달러계 자금을 중심으로 외자이탈이 가세되고 있다.

신흥국의 미숙한 정책 대응도 문제다. 외자이탈을 수반한 달러 부채 상환에 가장 적절한 대응책은 외환보유 확충과 외자조달 능력을 키우는 일이다. 지난 3월 이후 금융위기 조짐이 발생하거나 발생한 대부분 신흥국은 금리인상으로 대처해 오고 있다. 아르헨티나는 정책(기준)금리를 60%까지 올렸다.

근본적인 해결방안을 외면한 대증적인 금리인상은 실물경기 침체와 추가 외자이탈 간 ‘악순환 고리(vicious cycle)’를 형성시킨다. 20년 전 태국, 한국을 비롯해 아시아 국가가 겪었던 외환위기의 직접적인 원인이다. 일부 신흥국은 이런 악순환 고리가 형성되고 있다. 앞으로 예의주시해서 지켜봐야 할 대목이다.



◇ 외자이탈 막기 위한 금리인상..악순환 불러

국제금융협회(IIF)에 따르면 신흥국은 올해 안에 2,000억 달러, 내년부터 2025년까지 매년 4,000억 달러 이상 달러 부채 만기가 돌아온다. 지난 3월, 6월 회의에서 두 차례 금리를 올린 Fed는 9월과 12월 회의에서 추가적으로 금리를 올린 것으로 예상된다. 신흥국 외화사정이 더 악화될 수 있다는 의미다.1990년대 중반 이후 ‘대발산(Great Divergence)의 악몽’이 되살아나는 것도 이 때문이다. '대발산'이 일어났던 1994년 이후 상황을 보면 독일 분데스방크(유럽중앙은행이 창립 전)는 금리를 5%에서 4.5%로 내렸다. 같은 시점에 Fed는 3.75%에서 4.25%로 인상한 이후 1년도 못되는 짧은 기간 안에 6%까지 올렸다.

미국 경제도 견실했다. 빌 클린턴 정부 출범 이후 수확체증의 법칙이 적용되는 인터넷을 비롯한 정보기술(IT)이 주력산업으로 부상하면서 ‘신경제 신화’를 낳았다. 그 결과 ‘외자 유입→자산가격 상승→부(富)의 효과→추가 성장’ 간 선순환 고리가 형성되면서 달러 강세 시대가 전개됐다.

신흥국은 대규모 자금이탈에 시달렸다. 1994년 중남미 외채위기, 1997년 아시아 외환위기, 1998년 러시아 국가채무 불이행 사태까지 이어지는 신흥국 위기가 발생했다. 이를 ‘그린스펀 쇼크’라고도 부른다. 미국과 다른 국가 간 금리차가 벌어지고 감세와 리쇼오링 정책으로 미국 경제가 성장세를 구가하는 지금 상황과 묘하게 겹치지 않는가.



◇ 금융위기 후보국은 남미 국가, 이란, 터키 등...한국은 안전할까

지난 7월 말을 기준으로 IMF의 모리스 골드스타인 지표와 골드만삭스 등 글로벌 투자은행이 활용하는 외환상환계수로 신흥국 금융위기 가능성을 점검해보면 아르헨티나, 베네수엘라, 터키, 파키스탄, 이란, 남아프리카 공화국 등이 높게 나온다. 브라질, 인도네시아, 멕시코, 필리핀, 스리랑카, 방글라데시 등은 그 다음 위험국이다.

금융위기 발생 고위험국으로 분류되는 중남미 국가는 외채위기로 학습효과가 있는데다 미국과의 관계(베네수엘라 제외)도 비교적 괜찮다. 하지만 이란, 터키 등 미국의 경제제재를 받거나 협조하지 않는 국가와, 중국에 편향적이거나 일대일로 계획에 과도하게 참여하는 파키스탄, 스리랑카 등 이슬람 국가는 IMF의 구제금융 수혈이 쉽지 않을 가능성이 높다. IMF의 최대 의결권을 미국이 갖고 있기 때문이다.

여름 휴가철이 끝나자마자 대내외 금융시장에 최대 관심사로 떠오르고 있는 ‘차기 금융위기는 어느 국가에서 발생할 것인가’는 이런 각도에서 따져보면 어느 정도 감을 잡을 수 있다. UN의 수출통제품목인 북한의 석탄수입이 공식화되면서 미국과의 관계가 흐트러지고 있는 한국은 과연 어느 위치에 있는가를 곰곰이 따져봐야 할 때다.





한상춘 한국경제TV 해설위원 겸 한국경제신문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