협상 테이블에 나온 트럼프와 시진핑…'위안화 절상폭'은 - [국제경제읽기 한상춘]

입력 2018-08-20 09:37


미국 중심의 세계경제질서가 재현되는 시대(2차 대전 이후 ‘팍스 아메리카나’에 대비해 ‘네오 팍스 아메리카나’라 부른다)에 한 나라 최고통수권자가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과의 관계설정은 경제뿐만 아니라 모든 면에서 중요한 문제다. 베네수엘라, 이란, 터키, 파키스탄, 필리핀에서 겪는 바와 같이 마찰을 빚으면 금융시장이 불안하고 실물경기는 침체된다.

출범 이후 달러 약세, 고관세 부과, 첨단기술개발 통제 등으로 옥죄어 왔던 트럼프 정부의 숨가뿐 통상압력에 중국은 정면으로 대응해 왔다. 중국 중심의 ‘팍스 시니카(중국몽)’ 구상을 해왔던 시진핑 정부로서는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다. 일단 밀리면 중국몽은 한동안 멀어지기 때문이다.

결과는 중국 경제가 심상치 않다. 올 들어 상해지수가 20% 이상 급락했다. 지난 2월초 달러당 6.2위안선까지 강세를 보였던 위안화 가치가 이달 들어서는 6.8∼6.9위안대까지 떨어졌다. 상반기 성장률 목표(6.5∼7%)를 지켰던 실물 경기는 4분기에는 6.2%대로 떨어질 것으로 보는 예측기관이 늘어나고 있다.



이달 22일부터 열리는 미국과의 협상 테이블에 중국이 나온다. 지난 6월 이후 중단기간이 길어져 ‘루비콘 강’을 건넌 것이 아닌가 하는 비관론이 나오는 상황에서 협상이 재개되는 만큼 의미는 있다. 하지만 ‘정상’에서 ‘차관’급으로 격하된 데다 실무 회담이 이틀만 열린다는 점에서 큰 의미를 부여하기는 어렵다. 앞으로 전개과정이 더 중요하다는 의미다.

앞으로 미중 간 무역협상은 ‘낙관론’과 ‘비관론’이 공존한다. 전자는 이번 협상재개가 ‘트럼프 압력에 시진핑 굴복’이라는 시각에 근거를 두고 있다. 일단 승기를 잡으면 그대로 밀어붙이는 트럼프 대통령의 협상방식을 감안하면 미국의 의도대로 중국과의 무역협상을 주도해 나갈 것으로 예상된다.

후자는 현 상황에서 크게 변할 것이 없을 것이라는 시각이다. 세계 경제 주도권 싸움은 그 자체가 ‘타결’ 혹은 ‘합의’와는 거리가 먼 이분법(dichotonomy) 문제인데다 양국 간 경제발전단계 차이가 워낙 커 어떤 방식을 동원한다 하더라도 미국의 대중국 무역적자가 줄어들기는 어렵다는 근거에서다.

양 극단론 속에 절충점은 없는가 여부다. 장기간 지속되고 있는 ‘트럼프 리스크’에 대한 피로증후가 누적되면서 11월 중간 선거를 앞두고 공화당 지지도가 민주당보다 10% 포인트 이상 뒤지고 있다. 미국과의 무역 갈등 부담이 커지면서 중국 내부에서는 시진핑 주석의 리더십이 흔들리고 있다. 트럼프, 시진핑 모두 절충 필요성은 절실하다.

한동안 잠복했던 ‘제2 플라자 합의’ 논쟁이 고개를 들고 있는 것도 이 때문이다. 플라자 합의란 1980년대 초 국제수지 불균형의 주범인 미국과 일본 간에 엔화 강세를 유도하기 위한 합의를 말한다. 10년 동안 지속됐던 플라자 체제에서 엔·달러 환율은 240엔대에서 79엔대로 폭락했다.

위안화 평가절상은 트럼프 대통령이 학수고대해 오던 관심사이자 과제였다. 대선기간부터 중국을 환율조작국으로 지정한다고 약속을 해온 상태에서 지금까지 이 공약을 지키지 못해 부담을 느껴왔다. 대중국 무역적자가 줄어들지 않는 한 올해 11월 중간선거와 2년 앞으로 다가온 대통령 선거에 복병이 될 가능성이 높다.



중국도 위안화 절상의 필요성을 느끼고 있다. 시진핑 정부 출범 이후 위안화 국제화 과제, 국제통화기금(IMF) 특별인출권(SDR) 편입, 아시아인프라투자은행(AIIB) 설립 등을 통해 국제 위상을 높이려고 노력해 왔다. 중국 중심의 팍스 시니카 체제를 구축하기 위해서는 안전통화로서 위안화 기능이 높아져야하기 때문이다.

현재 국제통화제도는 1976년 킹스턴 회담(길게는 스미드소니언 체제 포함) 이후 시장의 자연스러운 힘에 의해 형성된 것으로서 국가 간 조약이나 국제협약이 뒷받침되지 않아 “없는 시스템(non-system) 혹은 젤리형 시스템(jelly system)"으로 지칭된다. 이런 여건에서는 미중 간 무역불균형을 조정하기 위해서는 ‘국가 간 조약’이 필요하다.

버락 오바마 정부 시절부터 미국 중앙은행(Fed)의 금리인상 등으로 위안화 가치가 대폭 절하될 때마다 ‘상하이 밀약설(달러화 약세-위안화 절상을 유도하는 묵시적 합의)’이 단골메뉴처럼 반복돼 왔던 것도 이 때문이다. 밀약설이 합의가 될 때에는 ‘협정’으로 변한다(플라자 밀약->플라자 협정).

관건은 트럼프와 시진핑 정부가 달러화 약세-위안화 절상폭을 어느 수준까지 받아들일 수 있느냐 하는 점이다. 무역적자 축소를 위해 국제적인 비난에도 보호주의를 지향해온 트럼프 정부로서는 대폭적인 달러화 약세 용인은 ‘득’보다는 ‘실’이 크다. 미국의 수출입 구조가 마샬 러너 조건((외화표시 수출수요 가격탄력성+자국통화표시 수입수요 가격탄력성)>1)을 충족시키지 못하는 한 무역적자가 더 커지기 때문이다

과도한 달러화 강세도 트럼프 정부로서는 한계가 있다. 2년 앞으로 다가온 대통령 선거에서 최후의 버팀목이 경기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Fed의 계량모델인 ‘퍼버스(Ferbus=FRB+US)’에 따르면 달러 가치가 10% 상승하면 2년 후 미국 경제 성장률이 무려 0.75%포인트(p)가 떨어지는 것으로 추정된다.

중국도 성장률이 목표 하단선인 6.5%에 근접한 상황에서는 대폭적인 위안화 강세를 수용하기는 어렵다. 반대로 위안화 약세를 과도하게 유도하다간 트럼프 정부와 무역마찰이 더 심화될 가능성이 높다. 현재로서는 ‘제2 플라자 합의’보다는 달러당 6.8위안 내외에서 ‘상하이 밀약설’이 그대로 유지될 가능성이 더 크다.

환율구조 모형 등으로 위안화 가치의 적정수준을 추정해 보면 달러당 6.8위안 내외로 나온다. 미국과 중국이 자국의 이익을 가장 잘 반영하는 스위트 스팟(sweet spot)으로 이 수준을 겨냥해 왔던 것도 이 때문이다. 지난 6월 이후 상관계수가 0.9를 웃돌 만큼 위안화와 동조화 현상이 심한 원달러 환율도 이런 각도에서 예상해 보는 것도 좋은 방안이다.





<글. 한상춘/한국경제TV 해설위원 겸 한국경제신문사 논설위원(<a href="mailto:schan@hankyung.com">scha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