급성 암을 두 차례 이겨내면서 투혼을 발휘해온 호주의 젊은 프로골퍼가 암과의 3번째 싸움에서 결국 무너져 호주인들이 안타까워하고 있다.
이 골퍼는 그동안 건강한 사람에게도 육체적으로 힘겨운 프로생활을 꿋꿋이 해내 용기와 투혼의 상징이 돼온 데다 이른 나이에 어린 두 딸을 남기고 떠나 슬픔을 더해주고 있다.
9일 ABC 방송과 AAP 통신 등 호주 언론에 따르면 백혈병으로 투병하다 전날 밤 끝내 사망한 제러드 라일(36)은 아내 브리어니를 통해 짧은 마지막 말을 남겼다.
라일은 자신을 지지해 준 세상의 많은 사람에게 고마움을 전하고는 "내 인생은 짧았지만, 사람들이 암으로 고통받는 가족들을 생각하고 그들을 위해 행동하게 하는데 기여했다면 바라건대 헛되지 않았을 것"이라고 전했다.
AAP 통신은 "호주 골프팬들에게 지난 15년 간 최고 뉴스는 라일이 마스터스 대회나 브리티시오픈, 다른 대회에 참가한다는 소식이었다"며 다시는 이를 기대할 수 없게 됐다고 아쉬움을 전했다.
아마추어 골프 유망주였던 라일은 17세 때인 1999년 급성 골수성 백혈병 진단을 받았다.
2년간 투병 생활을 하고 일어섰고 2004년에는 프로로 전향했다. 이듬해 미국프로골프(PGA) 2부 투어인 웹닷컴 투어에 입문한 뒤 2007년에는 PGA투어 선수로 본격적으로 활약했다.
2008년 웹닷컴 투어에서 2승을 따냈으며, 2012년에는 로스앤젤레스에서 열린 PGA 투어에서 공동 4위에 올라 생애 최고 기록을 냈다. 첫 딸도 봤다.
기쁨도 잠시 그해 백혈병이 재발, 투병 생활에 들어갔지만 약 2년 후 다시 털고 일어나 필드에 복귀했다.
2015년과 2016년에는 20개 이상의 PGA 투어대회에도 참가했다.
그러나 암세포는 그를 놓아주지 않았다.
지난해 7월 기침 때문에 병원을 찾았다가 암이 재발한 사실을 발견했고, 다시 기약 없는 투병 생활에 들어갔다.
잠시 회복 조짐이 보여 골프 해설가로도 나섰지만, 악화한 병세로 이달 초 병원치료 중단과 함께 집에서 말기환자 간호를 받다가 1주일 만에 세상을 떠났다.
2015년 호주 자선대회에서 하루에 홀인원을 두 번 하는 진기록을 세우기도 했으나 병마와의 싸움에서는 그같은 운이 따르지 않았다.
라일은 지난주 후반 음성 메시지를 통해 많은 사람이 나 자신과 나의 투병에 관심을 보여준 만큼 "난 가장 운이 좋은 골퍼라는 생각이 든다"고 말했다.
큰 체구의 라일은 끊임없이 암 공포에 시달리면서도 미소와 너그러운 마음가짐을 잃지 않아 팬들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투병 중에는 2살과 6살의 어린 두 딸과 정겹게 지내는 모습을 종종 전하기도 했다.
그의 사망 소식에 많은 골프 동료들과 팬 등 전 세계로부터 추모의 메시지가 줄을 이었다.
호주골프협회는 "매우 슬픈 날"이라며 골프계뿐만 아니라 호주 전체에도 깊은 슬픔을 주고 있다며 애도했다. 메이저 대회 4회 우승자 로리 맥길로이는 "그가 투병 과정에 보여준 용기는 우리 모두에게 영감을 주었으며, 세상을 더 좋은 곳으로 만들었다"고 추모했다.
9일 개막하는 PGA 챔피언십 롱드라이브 콘테스트에서 우승한 브라이슨 디섐보(미국)는 우승상금 2만5천 달러(약 2천800만 원)를 라일 가족을 위해 기부했다.
라일은 골프선수로는 꽃을 피우지는 못했지만, 골프를 넘어 그 이상의 것으로 기억될 것이라고 AAP통신은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