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일 세상을 떠난 작가 최인훈(1934∼).
소설 '광장'은 남-북 간의 이념-체제에 냉철한 균형감각을 견지하면서 치열한 성찰을 보여주며 이데올로기의 허구성에 천착하는 결말로 당대 독자들에게 큰 카타르시스를 안겨줬다.
또 삶의 일회성에 대한 인식이나 개인과 사회, 개인과 국가 간의 긴장과 갈등, 인간 자유의 문제와 사랑과 같은 본질을 다뤄 세월이 흘러도 젊은이들에게 늘 추앙받았다. 특히 소설의 열린 구조가 끊임없이 재해석되며 무수한 비평가와 독자들을 문학의 세계로 이끌었다.
이렇게 기념비적인 작품을 남긴 최인훈 작가는 문학에만 몰두한 그의 삶 자체가 한국 현대문학 역사와 다르지 않다고 할 정도로 한국문학의 거목(巨木)이었다.
1934년 함경북도 회령에서 태어나 한국전쟁 발발로 월남한 그는 전후 전근대적인 상황과 양대 이데올로기의 틈새에서 부딪치는 세계를 제대로 인식하고자 치열하게 고뇌했다.
다채로운 형식의 소설과 희곡, 평론, 에세이들을 발표하며 한국 현대문학의 테두리를 확장했다. 그의 문학 세계는 오늘날에도 여전히 낡지 않은 문제의식과 세련된 양식의 전범으로 평가받는다.
문학계는 그를 "근대성에 대한 관심, 이데올로기에 대한 저항, 새로운 형식의 탐구를 바탕으로 '신이 죽은 시대, 신화가 사라진 시대에 신비주의와 소재주의에 빠지지 않고 자기의 방법론으로 개발한 내면성 탐구의 절정에 선 작가", "문학작품을 썼다기보다 차라리 '문학을 살았다'라는 표현에 적실한 작가"로 평한다.
불세출의 문학평론가 김현은 일찍이 그를 두고 "뿌리 뽑힌 인간이라는 주제를 보편적 인간 조건으로 확대시킨 전후 최대의 작가"라고 상찬한 바 있다.
그가 4·19 이후 1960년대 벽두에 발표한 '광장'은 당대 지식인과 독자들에게 깊은 감명을 줬고, 60년 가까운 세월 동안 꾸준히 읽히며 후배 문인과 젊은 독자들에게까지 큰 영향을 끼쳤다. 공산주의와 자본주의의 이항대립을 극복하려는 한 개인의 역정은 반세기가 넘도록 여전한 분단 현실에서 여전히 유효한 문제의식을 던진다.
이 소설은 출간 이후 현재까지 통쇄 204쇄를 찍었고, 고등학교 문학 교과서 최다 수록 작품이라는 기록도 있다. 2004년 국내 문인들(시인·소설가·대학교수·평론가 등)이 뽑은 '한국 최고의 소설'로 선정되기도 했다.
'광장' 이후에도 그는 인간과 시대를 통찰하는 많은 작품을 썼다. 전망이 닫힌 시대의 존재론적 고뇌를 그린 '회색인', 현실과 환상을 넘나들면서 파격적 서사 실험을 보인 '서유기', 신식민지적 현실의 위기의식을 풍자소설의 기법으로 표현한 '총독의 소리' 연작, 20세기 자체를 전면적으로 문제 삼으며 동시대인의 운명을 큰 시각에서 조망한 대작 '화두' 등이 대표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