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상춘의 지금 세계는] 미중 마찰에 따라 급등하는 VIX지수…세계 증시 20% 조정 되나?

입력 2018-06-20 10:26
미국과 중국 간 마찰이 갈수록 점입가경 국면으로 치닫고 있는데요. 이제는 투자자의 심리상태를 알 수 있는 VIX, 즉 공포지수마저 급등함에 따라 글로벌 증시가 본격적으로 조정국면에 진입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우려가 고개를 들고 있습니다. 국내 증시가 연일 하락함에 따라 코스피 지수가 이제는 2300선마저 내줄 위기에 몰리고 있는데요. 오늘은 이 문제를 긴급으로 알아보는 시간을 마련했습니다. 도움 말씀을 주기 위해서 한국경제신문사의 한 상 춘 논설위원이 이 자리에 나와 계십니다.

한 위원님! 안녕하십니까? 트럼프 정부 출범 이후 미국과 중국 간 무역마찰이 갈수록 심화되고 있는데요. 그 상황부터 말씀해 주시지요.

-트럼프, 대중국 무역적자 축소 최우선순위

-중국과 마찰, 게리 콘 사임 표명 후 심화

-1R 환율전쟁, 달러 약세->위안화 약세 대응

-2R 관세전쟁, 고관세 부과->중국도 맞대응

-3R 첨단기술 전쟁, 차세대 기술개발 억제

국내 증시도 삼성전자 주가 움직임이 최대 관심이 되고 있지 않습니까? 미국과 중국과 첨단기술 논쟁이 심화되면서 애플 주가가 크게 타격을 받지 않았습니까?

-미래기술 놓고 미중간 경쟁 갈수록 심화

-트럼프 정부, 중국 ‘제조 2025 계획’ 견제

-제조 2025 계획 연관 상품에 고관세 부과

-첨단기술 전쟁을 관세전쟁으로 연계, 복잡

-시진핑 정부, 그 어느 분야보다 강력 대처

중국의 반응이 나오지 않다가 2라운드인 관세전쟁부터 강경하게 나오고 있는데요. 왜 중국이 강경하게 나오는 것입니까?

-세계무역질서, GATT->WTO->뉴라운드

-트럼프 정부, 자무무역보다 보호주의 지향

-자유무역 동참했던 전통적 우호국가 반발

-중국, 자유무역 표방해 미국 위상 꿰찰 목적

-팍스 아메리카나->차이메리카->팍스 시니카

미중간 마찰이 지속됨에 따라 세계가치사슬이 약화돼 세계경기가 10년 동안 장기호황 국면이 마무리될 것이라는 시각이 급부상하고 있지 않습니까?

-트럼프발 보호주의 움직임이 가장 큰 요인

-트럼프 보호주의, 1R-동북아국, 2R-우방국

-중국 등 맞대응, 세계가치사슬 연계 약화

-세계가치사슬 약화로 세계무역 감소 원인

-한국 등 수출지향 신흥국일수록 타격 심해

그렇다면 앞으로 미중 간 통상협상이 과연 타결될 수 있느냐 하는 점인데요. 과거에는 어떻게 됐습니까?

-미국 중심, 팍스 아메리카와 브레튼우즈

-중국, 팍스 시니카와 위안화 국제화 모색

-중국 아킬레스건, 미국 무역적자 절반 차지

-갈등과 보복, 양국 포함 세계경제에 충격

-미중 관계, ‘갈등과 화해’ 간 스네이크 형태

미중 간 마찰이 지속됨에 따라 최근에는 공포지수인 VIX 지수마자 빠르게 올라가고 있지 않습니까?

-주식시장, CBOE의 VIX 지수 널리 알려져

-외환시장, CVI=Currency Volatility Index

-채권, MOVE=Merrill Option Volatility Estimate

-19일 VIX 지수 15% 급등, 올해 2월 악몽 재현

-올해 2월과 달리 VIX, CVI, MOVE 동반 상승

방금 말씀하신 2월 악몽이란 무엇인지 그리고 최근 VIX 지수가 급등함에 따라 시장에 미치는 영향이 2월과 다르다고 하는데요. 어떤 점이 다른지 말씀해 주시지요.

-2월, 물가와 국채금리 우려->VIX지수 급등

-VIX 지수 급등했지만 타 시장 영향 안 미쳐

-글로벌 증시, 평균 10% 조정 후 반등 국면

-6월, 미중 무역마찰 심화->VIX 지수 급등

-외환 등 타 시장도 영향->원달러 환율 주목

더 우려되는 것은 미중 간 무역마찰에 따라 세계 경기 등 펀더멘털에 영향을 줄 뿐만 아니라 다른 요인 때문에 주가에 더 큰 영향을 주지 않습니까?

-VIX 급등->종전보다 주가가 더 빨리 하락

-VIX와 연계된 각종 레버리지 상품이 문제

-알고리즘과 로드바이저 부작용 노출 계기

-가보지 않는 ‘유토피아’ 국면에 새로운 현상

-세계 증시 거품 붕괴론 부상->조정국면 진입

지금까지 한국경제신문사의 한 상 춘 논설위원이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