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로화 사라진다?…이탈렉시트 우려에 흔들리는 EU - [국제경제읽기 한상춘]

입력 2018-06-04 09:44


(▲ 사진 = 마테오 살비니 이탈리아 부총리 겸 내무장관)

한동안 잠잠했던 이탈리아가 다시 유로존의 문제아(問題兒)로 떠오름에 따라 ‘2011년 유럽 재정위기 데자뷰’를 우려하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이 때문에 길게는 100년 역사를 자랑하는 유럽통합의 앞날에 먹구름이 몰려오지 않을까 우려가 확산될 것으로 예상된다. ‘유로존 위기 1.0’에 이어 ‘유로존 위기 2.0’다.

유럽연합(EU)와 유로존은 각각 초기 7개국, 11개국으로 출발해 그동안 ‘확대(enlargement)’ 단계를 거쳐 현재 28개국(영국 탈퇴시 27개국), 19개국 체제로 확립했다. 하지만 2년 전 영국의 브렉시트 국민투표를 시작으로 작년에는 극우 세력 약진, 올해 3월에 치러진 이탈리아 총선에서 오성운동과 동맹당이 약진하면서 균열 조짐이 봉합되지 않고 있다. 유로존 붕괴 위험을 나타내는 센틱스 유로존 균열 지수는 이탈리아 총선 이후 상승세로 전환돼 최근에는 브렉시트 국민투표 직후 수준까지 급등했다.

EU집행위원회가 회원국을 대상으로 진행한 설문조사를 종합해 보면 회원국들은 글로벌 금융위기 당시보다 유럽통합 앞날과 EU, 유로랜드 존속 여부에 대해 더 비관적으로 바라보고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 회원국 별로는 핵심국(good apples)보다 비핵심국(bad apples) 국민일수록 더 비관적으로 나타났다.



이탈리아 사태를 계기로 근본적인 결합이 다시 노출됨에 따라 유럽 통합 앞날은 ① 현 체제 유지(muddling through) ② 유럽통합 및 유로화 강화(bonds of solidarity) ③ 유럽통합과 유로화 동시 붕괴(bonds of solidarity) ④ 유럽통합 질서회복(the collapse) 등의 네 가지 시나리오를 상정할 수 있다.

가장 가능성이 높은 ‘현 체제 유지 시나리오'는 유럽통합에 대한 회의론 확산에도 불구, 근본적인 변화 없이 지금 상황이 지속되는 경우다. '유럽통합 및 유로화 강화’는 유럽위기로 붕괴조짐을 보이는 유럽통합을 강화하기 위해 내부문제를 해결하고, 유로본드(E-bond) 도입, 유럽통화기금(EMF) 설립, 재정동맹 등 미완성 과제를 해결하는 시나리오다.

두 시나리오보다 가능성이 희박한 '유럽통합과 유로화 붕괴 시나리오'는 유럽위기 회원국이 독자통화 도입을 위해 혹은 국내외 정치적 압력에 의해 유로통합을 탈퇴해 유럽통합이 붕괴되는 경우다. ‘질서회복'는 특별한 조치없이 주변국의 경쟁력 회복과 재정개선 등으로 회원국 간 불균형이 해소되면서 유럽통합이 재정위기 이전 상황을 회복하는 시나리오다.

네 가지 시나리오 중 최근 재연될 조짐을 보이고 있는 ‘유로존 위기 2.0’을 해결하지 못하고 회원국 간 정치적 명분과 경제적 이익에 대한 유럽통합의 근본문제가 더 악화될 경우 세계경제와 국제금융시장은 또 한차례 홍역을 치를 가능성이 높다. 한국을 비롯한 세계 증시도 변동성이 크게 확대되는 속에 ‘숙취(hangover) 현상’이 재현될 것으로 예상된다.



유럽 통합의 붕괴 가능성은 유로화 가치를 약화시키는 요인이다. 1999년에 도입하고 2001년에 실제 생활에서 유통된 이후 유로화 가치는 한 때 유로당 0.8달러 이하로 떨어지는 등 위기를 맞기도 했다. 하지만 그 이후 ‘1유로=1달러’의 등가 수준 위에서 움직이며 비교적 견실한 움직임이 유지돼 왔다.

'유로존 위기 1.0'에도 불구하고 유로화가 등가 수준을 상회할 수 있었던 배경 중 하나로는 EU가 전 세계지역무역협정 중에서도 역내교역 비중이 높아 유로화에 대한 꾸준한 수요가 뒷받침되었기 때문이다. EU의 역내교역 비중은 70%에 육박했던 반면 북미자유무역협정(NAFTA), 동남아자유무역협정(ASEAN)은 각각 40%대, 20%대에 머물고 있다.

유로존 경제도 회복세를 보이고 있다. 지난 2년 동안 유로존 성장률은 2%대다. 예상 밖의 결과다. ‘미국 경제가 유일하게 좋다’는 선입견과는 대조적인 흐름이다. 양적완화, 초저금리(마이너스 금리제 도입)로 상징되는 유럽중앙은행(ECB)의 일관된 금융완화정책의 힘이 가장 큰 요인으로 지적되고 있다

물가상승률은 ECB의 물가 목표치인 2%를 달성하기가 당분간 어려울 것으로 예상되지만 최근 들어 상승하는 추세다. 올해 들어서는 국제유가 상승과 경기회복으로 ECB의 물가목표치에 근접하고 있다. 이탈리아 사태 직전까지 ECB도 테이퍼링(금융긴축)을 고려해야 될 때가 되지 않았느냐는 요구가 나온 것도 이 때문이다.

실업률도 2013년 중반 12.1%를 기록한 이후 감소 추세에 들어서며 올해 들어서는 10% 밑으로 떨어졌다. 하지만 유로존 실업률은 미국, 일본 등 주요 선진국의 실업률에 비해 여전히 높은 수준이다. 회원국별로도 독일, 프랑스와 같은 핵심국인 10% 밑으로 떨어졌으나 이탈리아, 그리스, 스페인과 같은 취약국은 여전히 20%에 근접해 편차가 심하다.



유로화 사용은 유럽 재정위기 이후 심화됐던 국가별 경제적 불균형 현상에 대응해 구제금융 지원과 금융완화 정책을 펼치는데 용이하게 했던 것으로 평가된다. 앞으로 유로랜드 회원국 간 결속력이 약화되는 과정에서 유로화 사용 수요와 필요성은 감소하는 대신 독자통화 도입 요구는 높아질 것으로 예상된다.

단일통화 유로화 도입은 1999년 노벨 경제학상 수상자인 로버트 먼델 교수가 제기한 최적통화지역이론(Optimal Currency Area Theory)에 근거를 두고 있다. 최적통화지역이란 단일(통합) 화폐를 도입하면서 얻는 이득이 자국 화폐 주권을 활용하는 비용보다 커서 단일화폐가 도입되기 이상적인 지역을 의미한다.

먼델 교수는 EU와 같이 △상품과 서비스 △금융 및 물리적 생산요소 △노동인력의 자유로운 이동이 보장되는 지역에서는 단일통화 도입이 적합한 것으로 판단했다. 하지만 지난해 6월 이후 브렉시트 결정, 정치적 포퓰리즘 확산 등 유럽통합에 대한 부정적 전망이 빠르게 확산되는 가운데 유로화 사용에 따른 이익과 필요성은 감소되고 있다.

하지만 작년 9월에 치러질 독일 총선에서 앙겔라 메르켈 총리의 입지가 약화되면서 유로화 가치가 하락세로 돌아서고 있다. 이탈리아 정치적 혼란과 이에 따른 남유럽 위기가 확산될 경우 EU는 물론 유로화 존속에 대한 우려가 점차 증가할 것으로 예상된다. 이에 따라 달러·유로화 환율 전망치를 보면 올해 안으로 등가 수준으로 다시 하락할 것으로 보는 투자은행이 늘어나는 추세다.



<글. 한상춘/한국경제TV 해설위원 겸 한국경제신문사 논설위원(<a href="mailto:schan@hankyung.com">schan@hankyung.com)>